소설
[소개글]
- 삼행시, 놀이글 등을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여 그림 소설로 빌드업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콜라주 재로로는 1)[삼행시]전력을 다하여 삶을 사랑한다니 / 2)[삼행시]원서 읽기와 번역기 돌리기 / 3)[놀이글]희미했던 그 순간이 조금은 맑아지고, 잠자코 등입니다.
“전력을 다하여 삶을 사랑한다니, 그건 지치는 일 같았죠. 하지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리운 당신의 얼굴처럼.”
하- 자 없던 삶이 그립다며
얼- 굴이 반듯한 시절을 떠올리려 했다.
빈- 궁한 것이 무슨 죄겠느냐마는
전- 력을 다하여 사는 곳에서는 다 갖춘 것으로도 모자라,
여- 분의 것이라도 착실히 쟁여놓질 않으면
빈- 속에 소주를 들이붓는 것 같아 두려웠다.
무언가 비어있는 것을 좋아하죠. 그때와는 다르게요. 저녁의 빈 하늘에 잠깐 채워지는 노을도 사라지는 것이라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곳의 풍경에는 있을 게 있어요. 해는 해인 채로, 산은 산인 채로, 들판은 들판인 채로, 그저 있지요. 그 안에 마을은 마을대로 있고, 전봇대와 전깃줄과 담장과 밭이 있고요.
먼 타지에 와서 생활할 것을 결심한 것도 조금은 조용하고 희미한 삶을 원했기 때문이니까요.
나로서 의무가 너무 많은 것을 부담스러워 했었죠. 하지만 이곳이라고 호락호락할 리는 없었죠.
말이 통하지 않고 배운 것도 여기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더군요. 어디든 완벽하게 딱 좋은 곳은 없으니까요. 하나를 희생하고도 충분히 있어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것뿐이잖아요.
얼마 전에 도심에 나갔다가 책을 한 권 샀어요. 이곳에서 한참 잘 나가는 순수문학 작가라더군요. 당연히 제가 알 수 없는 문장이 가득했죠. 그 말의 무덤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력감은 오히려 홀가분함 같은 것이더군요. 그 정도로 무지해지는 기분도 기억에는 없으니까요.
하나씩 타자를 쳐서 번역기를 돌려보았지요. 텍스트를 번역기를 돌려가며 영문으로 바꾸고, 그걸 다시 한국어로 바꾸어서 해독하곤 하였지요. 번거로운 만큼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들여야 했고, 그만큼 읽기는 느려지더군요.
그런데 한국어 번역기를 돌려보지만, 알잖아요. 순엉터리라는 걸요. 특히 문학책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현지어를 가르쳐줄 한국인이 많지 않았어요. 선교사님과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날 수 있었고요.
“기도도 해야 했어요. 선교사님 만나면. 저는 어린 양이 되어야 했지요.”
혼자 있을 때 서툴더라도, 간간히 한 문장씩 읽어요. 잘 안 읽혀서 자주 책을 덮지만, 울적할 때면 가끔 읽어요.
그러다 보면 한 페이지씩 넘어가고 있더군요. 노를 뺀 쪽배라 만지작만지작 뱅뱅 돌면서도요.
그대는 잘 있나요?
어제 우체부가 왔다가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시 들고 갔다던 소포를 이제야 챙겼어요. 당신의 이름을 듣고 읍내에 나간 김에 제일 먼저 우체국에 들렀답니다. 하얼빈에서 온 소포에는 오래 전 일지가 들어 있더군요. 언제 찍었는지 가물가물한 여자의 사진도 한 장 있더군요. (웃음) 제가 비교적 어릴 때의 사진이었어요. 그걸 지금까지 챙겨놓고 있었더군요.
기억나지 않는 어떤 순간을 들추려는 무의식이 요동치는 것 같았어요. 그것은 어쩌면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외로우며 조금은 자신이 끈질기게 늘어붙어 버티던, 그리하여 어찌했든 자신이고자 했던, 어떤 황량한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때 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요? 볼 때마다 바뀌는 그 표정을 자신조차 알 길이 없지만요.
어쩌면 그 애매한 기억의 그림자를 되짚어보려다 보니, 어쩐지 지금의 사진도 한 장 찍고 싶어지더군요. 그때도 지금만큼 그럭저럭 괜찮았을지도 몰라요. 그때는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지금은 희미하죠.
지금 찍은 이 사진을 보고도 지금 하는 말을 훗날 하게 될까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짚으면서요. (웃음) 이곳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동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