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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n 27. 2024

필기왕과 파시스트 양성 교육

인식과 추론(79~80F)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79~80프레임에 해당합니다.






“<서울대생 중 장학금을 받는 상위권 학생을 조사한 결과, 미시간대 학생들과 달리 필기왕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좀 충격적이었어요. 암기 위주와 학종으로 입학했다는 것으로 순종적인 면을 수용해야 하는 교육 현실은 알았지만, 또 필기왕이 어떤 건지도 아는데, 그게 특이한 사례일 줄로만 알았지만, 필기왕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거든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유학생은 토플 점수를 만점 받고 해당 미국 대학교에서 이미 유명해진 상태로 입학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를 한마디 못했다는 것이라든지, 교수님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점수를 잘 받는 것으로 거론된다든지 하는데, 미시간대학교에서 한 교수님은 자기 말 그대로 잘 쓰면 B나 B- 학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어째서 있는 그대로 썼는데 그 학점이 나오느냐고 이의신청을 오면 ‘내 말을 그대로 써서 그렇다’고 말한다더군요. 어쨌든 서울대에도 분명 천재가 될 만한 재원이 있을 텐데, 또 질문도 많고 자기 생각으로 비판하는 학생도 있지만, 서서히 지친다더군요. 분명 어떤 손해가 있는지 계산될 테니까요. 더구나 사회에서 손실할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절대로 도전적인 선택을 하기란 어렵죠. 섣불리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회복도 어렵죠. 딱 그 시점에만 기회를 부여받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문화, 나이에 따른 사회적 기대치가 너무도 촘촘하게 선명한 문화에서는 똑똑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모험이 정답’이라는 판단을 할 수 없겠죠. 그런 점에서 천재란 어쩌면 기회비용이 제로인 상태,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 해내는 것으로 보는 게 과장이 아닐 수 있어요. (웃음)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 없는 사람이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래도 그걸로는 인정을 조금이라도 받으니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요. 또는 인내하고 무시 받는 걸 감내하는 무모한 용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천재일 거예요. 우리 시스템에서는 서울대생이 천재가 되기엔 여러 방해 요소가 있죠.”


“얼마 전에 <한국 교육은 파시스트를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내 방에서 만나는 일상의 인문학’이었나 그랬죠. 교수님이 참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그것도 결국 우수한 성적을 받는 서울대생들이라면 그 똑똑한 재원들이 필기왕이 되어 녹음까지 해서, 농담까지 상황 정리 메모하겠죠, 답안지에다가 교수의 생각에 거스르지 않게 쓴다는 거니까요. 사실 논술도, 인문학도 어쨌든 모범답안을 외우는 거겠죠. 어쩐지 논술 교육을 해본 입장에서 전혀 이질감이 없고 당연한 현실이라 느끼니 씁쓸하죠. 감히 질문할 수도 없고. 교수의 성향을 분석하고 가치관을 외운다니요? 그러나 우리는 또 습관처럼 창의적인 발상, 개성, 도전과 젊음을 관용구처럼 말하잖아요.

그러면서 우리는 이걸 주입식 교육의 다른 버전으로 교양이라 수용해요. 그냥, 수용하죠. 그냥 버릇이 된 거죠.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위해 기계처럼 연습을 하고, 특별한 거부감 없이 일단은 등단을 하고 학위를 취득하려고 하죠. 예전에 40살 전에 책을 내면 선배 교수님들에게 건방지다는 말을 듣는다는 우스개소리인지, 실화인지 하는 얘기를 들을 적이 있었죠. 스승을 넘어서려면 한참 뒤에 나중에 이래저래 학계에서 그만한 권위가 섰을 때나 조심스럽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서울대생들이 자기의 공부 습관이 이미 굳어져서 딱히 그것 말고는 떠올려 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이미 쌓은 것이 많아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그 시점에 굳이 모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대개는 젊은 시절의 치기로 치부하고 현실에 만족하겠죠. 모두가 적절히 상찬해 주는 결과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엘리트들부터 필기왕이니 그들의 제자도, 그들의 부하직원도 왕까지는 못 되더라도 필기 총리, 필기 영의정 정도는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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