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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n 26. 2024

지금의 교육으로 양성된 시민

인식과 추론(77~79F)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77~79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삼천포로 빠지기: 지금의 교육으로 양성된 시민

지금 교육으로 양성된 시민이 지성을 갈망하다 보면 일단 권위에 억눌린다고 해야 할 만큼 순응적인 면을 보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일정 기준에서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터무니없는 의견을 고집하며 잘못된 권위를 추종하는 면모도 보인다. 순응적으로 수용한 가치를 경직되게 추종하다가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너무도 엉뚱하고 퇴행적인 주장이 진실처럼 포장되기도 하고, 선동적인 언사로 현혹하는 사람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 대개 그 기준이라는 것이 세계 인권 관점에서 퇴행적일 때도 있다. 다양성에 인색한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기 가치관이 틀렸다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바람에 내집단 구성원끼리 잘못된 가치관을 옳은 것으로 맹신한다. 그렇게 다양성을 배제하고 빈약한 지성으로 무장하면, 아무리 잘 살아도 금세 위태로워진다. 때로는 대상을 자기 틀에서 편견을 가지고 왜곡되게 요약해 놓고 그것을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라 믿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오도록 질문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오답의 흐름이 완성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된 확신을 주며 지지를 교환하고 신념을 강화한다. 지금은 온전한 목적으로 양성되지 못한 시민이 지성을 반지성적으로 활용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보는 것 같다. 

원래 올바른 방향이라면 아마추어 시민은 권위를 자기 건설적으로 수용하려 한다. 이를 위해 비판적인 거리두기를 하면서 검증을 거치고, 전문가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려 하면서, 전문가의 장점을 나름대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늘 오용을 조심하면서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그대로 전문가의 의견을 추종하지도 않는다. 지식의 틈새에서 자기만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상상력의 여백을 찾아내고는 합리적 추론과 적극적 몽상을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성의 충격적 출현을 인내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식을 많이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늘 익숙하지 않은 것, 나를 아프게 하는 것에 움츠러들곤 한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으로 간신히 마음을 열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경청을 중시하는 교육’ ‘집요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교육’, ‘끈질긴 비평적 피드백을 통해 서로 부서지면서 성장하는 것을 격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자기 객관화 입체화 훈련이요, 자기를 부수는 데서 오는 자부심을 배우려는 노력인 셈이다. 그렇게 비판적 상상력을 갖춘 시민을 양성할 때 더 나은 시민 문화가 가능할 듯하다. ‘글로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배우면 좋고, 글쓰기가 가장 효율적이라 믿지만, 꼭 글만이 수단일 필요는 없다.


“우리 교육은 한마디로 ‘똑똑하고 숙련도 높지만 조직에 순응하는 기능적 엘리트’를 양산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려면 그러한 지점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늘 새로운 가치는 우리가 파묻혀 있지 않고 그것에서 조금 벗어나야 보이는 법이니까요.
집요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피드백을 통해 점검하는 거죠. 그러려면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하고 요약해야 하고, 질문해야 하죠.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서울대생 중 장학금을 받는 상위권 학생을 조사한 결과, 미시간대 학생들과 달리 필기왕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좀 충격적이었어요. 암기 위주와 학종으로 입학했다는 것으로 순종적인 면을 수용해야 하는 교육 현실은 알았지만, 또 필기왕이 어떤 건지도 아는데, 그게 특이한 사례일 줄로만 알았지만, 필기왕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거든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유학생은 토플 점수를 만점 받고 해당 미국 대학교에서 이미 유명해진 상태로 입학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를 한마디 못했다는 것이라든지, 교수님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점수를 잘 받는 것으로 거론된다든지 하는데, 미시간대학교에서 한 교수님은 자기 말 그대로 잘 쓰면 B나 B- 학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어째서 있는 그대로 썼는데 그 학점이 나오느냐고 이의신청을 오면 ‘내 말을 그대로 써서 그렇다’고 말한다더군요. 어쨌든 서울대에도 분명 천재가 될 만한 재원이 있을 텐데, 또 질문도 많고 자기 생각으로 비판하는 학생도 있지만, 서서히 지친다더군요. 분명 어떤 손해가 있는지 계산될 테니까요. 더구나 사회에서 손실할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절대로 도전적인 선택을 하기란 어렵죠. 섣불리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회복도 어렵죠. 딱 그 시점에만 기회를 부여받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문화, 나이에 따른 사회적 기대치가 너무도 촘촘하게 선명한 문화에서는 똑똑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모험이 정답’이라는 판단을 할 수 없겠죠. 그런 점에서 천재란 어쩌면 기회비용이 제로인 상태,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 해내는 것으로 보는 게 과장이 아닐 수 있어요. (웃음)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 없는 사람이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래도 그걸로는 인정을 조금이라도 받으니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요. 또는 인내하고 무시 받는 걸 감내하는 무모한 용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천재일 거예요. 우리 시스템에서는 서울대생이 천재가 되기엔 여러 방해 요소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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