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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02. 2024

비전문가의 입장에서라면, 분류는 유력하고 효과적인 방법

인식과 추론(87~89F)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87~89프레임에 해당합니다.






“아마추어 애호가, 오타쿠, 마니아, 딜레탕트라고 하나요? 전문가가 아니라 비전문가의 입장에서라면, 분류는 유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죠. 요약과 질문에서도 이미 무의식적으로 분류로 가치를 치는 방식을 쓰곤 하죠. 그것만으로 이미 분류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죠. 상시적으로 대상을 요약하고 거기서부터 올바르게 질문해서 더 먼 사유의 세계로 출발하는 것이니, 거기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는 분류라는 방법은 사유의 출발점이라고까지 할 수 있어요. 누군가는 ‘개념 정의’가 그렇지 않겠느냐, 또 누군가는 ‘적절한 규칙과 범위 등의 설정’이 우선 아니겠는가 하지만, 사실 이건 전문가에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죠. 철학적 세계라면 우선 그것에 정의를 하면서 시작하거나 논리 게임이라면 게임의 규칙과 범위와 개념을 설정할 수 있겠지만, 보통은 현상을 보다가 특기할 만한 것이 있어서 관찰하고 그러다 보니 현상의 유형을 분류하고, 거기서 필요한 개념을 추출해서 더 명확하게 정의하는 단계를 거치곤 하니까요. 그러고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니, 많은 경우 그 선행 단계, 빅뱅보다 더한 사건이 도사리는 것이죠. 이것도 지금의 우리 우주, 바로 이전 단계에서 빅뱅 직전까지의 사건으로 분류하겠네요.”


“아, 여기서는 구분, 구별, 분류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보고 말할게요. 구분은 여러 임의적 기준으로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구별이 차이에 따른 인식, 분류가 보편적 기준에 따른 같은 종류의 묶임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제 경우에는 여러 기준으로 헤쳐 모여 하면서 새로운 분류도 다양하게 시도하니까요. 구별이 되어야 같은 것끼리 분류되고, 분류가 되면 각 분류군끼리 구분되고 구별되죠.
국립국어원 의견을 기반으로 하면서 일상에서는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쓴다는 점을 주로 수용했어요. 즉 제 경우에는 개념 분리에 대해 특별히 실익이 없어서, 혼용해서 쓰고자 하는데 실제로는 되도록 분류란 표현으로 통합해서 쓰죠. 여담이지만 구분의 경우 ‘하나의 커다란 대상이 있고 그것을 나누는’ 개념이라는 의견도 있고, 분류의 경우 ‘여러 대상 중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대상을 묶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죠.”






“이러한 분류 자체는 전문가에게만 접근이 허락된 방법도 아니죠.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나 분류의 인식 과정을 거치니까요. 다만 그 분류를 전문 영역에서도 날카롭게 해낼 수 있으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예를 들어 반도체에 관해 전문지식이 없다면 반도체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어요. 작은 반도체, 중간 반도체, 큰 반도체로 나누는 건 그리 의미 있는 분류가 아닐 가능성이 있죠. (웃음) 분류를 하기 위해 기준을 정하려면 어떤 기준이 유의미한지도 알아야 하는데 그것부터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그리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분야에서는 전혀 배경지식이 없어서 분류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그래도 분류의 영역에서는 제법 유의미한 지점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전문적 분석의 시도보다는 비교적 열려 있어요. 다른 방법보다는 훨씬 관대한 면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운 좋게 보통 전문 분야에서는 통용되지 않지만, 다른 방향의 접근을 해서 어쩐지 뭔가 유의미한 성과를 끌어낼 분류를 할 수도 있어요. 즉 인지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에서 어디까지 직관적으로 특성을 볼 수 있는지 살피면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때 요약과 분류가 적용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음악을 작곡하거나 음의 진행을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보컬이 있어서 노래하는 작품과 그렇지 않고 연주만 실린 작품을 분류할 수도 있겠죠.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아서 활용하는 작품과 음악적 선율을 활용하는 작품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거고요. 또 이야기 장르를 문학으로만 한정해서 소설, 시, 수필 등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문학, 영화, 웹툰, 만화 등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오래도록 형식적 변화가 적었던 것으로만 여겨졌던 분야가 사실은 굉장히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인식을 바꿀 수도 있을 거예요. 꼭 전문 지식을 많이 습득해야 분류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죠. 분류와 분석 과정에서 자기가 자신 있는 관점을 끌어올 여지가 있어요. 그게 잘 맞아 떨어지면 비전문 영역에서도 날카로운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고 믿죠. 그걸 인정받느냐 하는 것은 관례적인 면이 있기에 달리 보아야 하지만, 적어도 딜레탕트가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닌 셈이죠.”


“반면 정의를 하고 전문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전문가의 영역이죠. 딜레탕트는 자기가 분류한 성과를 바탕으로 감당할 만한 분석을 하기 마련인데, 대개 분류마저 참신하지 않다면 전문가의 성과에 대한 열화된 버전이라고 해야겠죠. 사실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 공인된 분류 체계를 들고 와서는 보통 세부 지점을 찍고 거기에 더 세밀한 전문적 분석 작업을 수행하잖아요. 같은 분류로는 이미 특징적이지 않고, 분석의 수준이나 신뢰는 전문가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대개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나아가려 하고 흉내내려 하죠. 객관적인 분야의 전문적인 언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요.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아카데믹한 과정을 밟아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곤 해요.

그러면 큰 문제는 없어요. 다만, 여기서는 그러한 전문가의 글쓰기를 반복하자는 말은 아니니, 글을 쓰는 전문가와 글에 관심 없는 일반인 사이에서 아마추어가, 지성을 갈망하는 시민이, 독특하고 지엽적인 관심을 표출하면서 아카데믹하지 않은 소재를 붙든 오타쿠가, 모든 것을 자기 관점과 방식대로 정리하고자 하는 딜레탕트가 전 방위적으로 글을 쓰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거죠.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단순한 이유기도 하지만, 요즘 한국을 보면 지성으로 포장한 반지성, 잘못된 권위를 추종하고, 쉽사리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상품성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상황도 만연하다는 점을 들고 싶어요. 결국 우리가 성장하지 않으면, 고급 독자도 없고, 훌륭한 민주 시민도 줄어들겠죠. 그냥 치열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배워서 서로 피드백하는 대화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더 깊이 읽기 위해 쓰려 한다면, 그게 좋다면, 뭐, 틈새의 글쓰기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어요. 촘촘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게 해 놓는다면, 비주류 스타일에 강점이 있더라도 억지로 주류 스타일에 맞추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선택하면 되니까요.

사실 우리는 항상 99%의 모든 분야에서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 모든 것의 전문가가 되기는 불가능하니, 그 모든 것에서 비전문가로서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무엇으로 쓰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하는 것도 좋겠죠. 자신의 상황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럼에도 써야 할 것이 있거나, 간절히 쓰고 싶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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