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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n 09. 2024

유한한 인생을 잠깐이나마 무한으로 확장하기

콜라주 & 빌드업

고전문학을 많이 읽다 보면 마음의 양식을 쌓는다고 하지만 이걸 믿고 열심히 읽어도, 는 건 빚뿐이었다. 세금 적게 내는 법조차 알려주지 않아서 상식이란 게 없는 놈이 되었다면서, 고전문학에 빠질수록 실용성 없는 교양을 쌓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설령 도움이 되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잠깐 여운을 지니는 정도의 효용을 위하여 불확실한 투자를 하는 것 같은, 이를테면 손실이 예정된 장사 같았다.

모종의 음모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세상에서 고전하길 원하던 누군가가 르포르타주처럼 고전적으로 사서 고생하던 놈들의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모아서, 고전을 읽고 세상에서 알아서 고전하라고, 자본주의의 노예들에게 풀어놓았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도 합치될 수 없을 양 갈래 길에서 소모적인 고민이나 하라며, ‘그래서 니들이 노예인 것’이라며 비웃을 준비라도 하는, 어떤 사람들이 슬쩍 보인 것도 같았다.


그럼에도

마우스를 클릭하며 인터넷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시집을 담았다. 광주리에 해초를 담는 아낙네처럼 연일 깊어지는 물을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햇볕 머금고 반짝인 채 푸르게 출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듯했다. 맨발이 닿은 모래가 반사된 햇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순간에 물이 빠지고 바싹 말라버린 모래였다면, 아마도 황무지라 불러야 했을 것이다. 여러 권의 번역된 황무지라는 엘리엇의 고전 시집을 결제하면서, 아무리 유명한 출판사의 책으로 골랐어도, 아마도, 그 시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시절과 별다를 바 없이, 영영 완독하지 못한 채 이런저런 이유로 다 읽지 못한 많은 책과 함께 책꽂이에 오래도록 꽂혀 있을 것을 알았다. 그럴 때면 살짝 망설이기도 했으나, 유한한 인생이란 한 순간의 지점에서 뜻밖에 무한하기에, 그립지 않아야 할 곳에서 뜻밖에 어처구니없이 그리움을 느끼는 난처한 경우를 기대하며, 시집을 들이기로 했다.


※ 콜라주 재료
[삼행시]고전문학 읽고 고전하라
[삼행시]유한한 인생이란 한 순간의 지점에서 뜻밖에
           ("시집은 다 읽어도 늘 다 읽은 것 같지 않아서"에서 '황우림' 삼행시)
[삼행시]광주리와 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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