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기웃거리고, 머뭇거리는

인식과 추론(162~163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인식과 추론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73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162~163프레임에 해당합니다.






“유보하면서 글을 쓴다는 건 말이죠, 기웃거리고, 머뭇거리는 글쓰기 같아요. 말을 뱉으면서 삼키는 글쓰기고, 자기 의견을 정면에서 다시 거부하는 시각으로 충돌시키는 다성적 발성의 글쓰기 같아요. 스테레오 식이고, 모순적 대치를 통해 여러 의견이 동시에 존재하는 피카소식 구성이 아닐까도 싶어요. 잡담하다가 원래 말하려던 걸 잊거나, 목적지에 이르기를 잠시 잊고 산책하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글쓰기 같고요.

잡담으로 할 말을 다하는 브레인스토밍 같은 글쓰기고, 잉여로 남을 것조차 콜라주 하듯 배치하는 글쓰기죠. 그것을 깔끔하게 잘라내고 단일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라면, 또 정확하게 인식의 제한을 통해 아주 좁은 지점에서 간략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성적인 요소를 치열하게 뱉고, 매기고 받으면서, 동시에 배치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너무 복잡하거나 장황해질 수 있으니 짧게 끊어주면서 다양한 형식이나 의견으로 드러내는, 이를테면 매거진 구성의 글쓰기 같은 게 떠오르네요.

갈팡질팡 하면서도 목적지를 잊지는 않고 어쨌든 북극성을 보며 방향을 잡는 시민의 글쓰기 같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걸 의심하면서도 적어도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는지 기억하려는 인간적 글쓰기요. 끊임없이 모순을 감지하고 흔들리면서도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선택하여 행동하는 거죠. 이때 자신 없는 지점은 솔직히 인정하고 말을 삼키면서,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죠.”






“딜레탕트가 글을 쓰는 방식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으로는, 과거에는 있었지만, 전문가와 학술적 글쓰기가 상당히 정돈된 근대 서구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면에서 니체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향을 줄 만한 단서를 지녔고요. 짧은 글쓰기, 논리적 흐름만을 따르는 글쓰기라는 특징이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자체는 천재 엘리트가 쓴 것이겠죠.

물론 19세기 말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몽테뉴와 에세이 형식을 검토할 수 있는데, 사실 에세이 형식으로 문학적 사유로 접근하는 것은 지금도 장벽 자체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죠. 소재나 분야의 확장을 위해서 전문 분야에서 아마추어가 말하는 방식을 검토하다 보면, 아무래도 니체가 떠오르죠.

또 동양 철학의 글쓰기 자체도 참고할 만해요. 너무 단정적으로 교조적으로 명제를 제시한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요. 그것이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 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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