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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행시는 놀이글과 함께 비중이 큰 #1

스타일 Part1 (110~112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1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48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110~112프레임에 해당합니다.










삼행시의 경우엔 광의의 놀이글로서 내가 검토하는 유형 중에선 놀이글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주력 스타일로 놀이글과 삼행시를 꼽을 정도로 삼행시는 다양한 방식이나 형식과 연결된다. 무엇보다 삼행시는 사람들이 폭넓게 손쉽게 활용했기에 그 규칙이나 형식을 두고 이질감 없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협의의) 놀이글로는 이론적 배경부터 출판의 걸림돌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확실히 삼행시의 경우 정통 순수시를 추종하는 심리적 거부감만 제외한다면 외부의 걸림돌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그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놀이글을 대체할 완벽한 형식처럼 보였다.

우선 팬질글의 습관을 이으면서 상호 반응성을 유지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가상 상대의 인스타그램 문구를 운자 삼아서 삼행시를 지을 수 있었다. 즉, 상호 반응성에서도 이미지 인용과 같이 민감한 저작권 초상권 문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제한된 규칙을 뚜렷하게 두어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상호 반응을 하다 보면, 가상 상대의 우연한 반응에 따라 과정을 함께 창작한다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협업하여 집단 창작에 적용한다면 과정의 의미가 생길 텐데, 그럴 순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처럼 보였다. 그 느낌을 알고 나니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글쓰기에 탄력적인 자극을 받아서 기계적으로 많은 습작을 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인 훈련법이었다. 놀이글 이미지 저작권 때문에 허송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삼행시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독립적이기 위해서 눈에 띄는 책의 제목, 감흥 있게 들은 노래 제목을 운자로 떼서 삼행시를 짓기도 했다. 다만 어느 시점엔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서 운자로 떼는 것 역시 허락을 받아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래 제목, 시 제목 등으로 운자를 떼다 보면, 짧은 문장과 표현에도 민감한 시인이나 작곡자가 어떻게 보아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개는 괜찮을 것이라 여겼지만, 전면적으로 그러한 운자로 세로글을 받아 쓴다면 설령 그것이 삼행시 본 내용과 다르더라도 독자와 저작권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출판을 위해 원고를 구성하면서 과거에 썼던 삼행시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추리는 동안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동일한 출처의 시 문구만을 딴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여러 출처에서 딴 것이라면 비록 세로 글자여도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허용한다고 해도, 언제나 원작에 대한 부담을 지우기 어려웠다. 만일 그러한 인용조차 허락받지 못한다면, 그 모든 삼행시 운자를 풀어서 산문처럼 퇴고하는 것도 고려할 정도였다.

당장은 아니었지만 얼마 안 있어 삼행시에서 놀이글 쪽으로 무게중심이 넘어가면서 삼행시로 고민한 지점들이 놀이글 프레임의 그림 소설에서 주요한 내용의 산문으로 정리되면서 운자를 다 풀기도 했다. 삼행시의 창작 의도를 고려한다면 다소 아쉬웠지만, 관점을 바꾸니, 그림 소설에서는 유의미한 콜라주 재료로 쓰일 수 있었다. 어쨌든 삼행시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던 당시에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또 다시 문구조차 저작권 침해 문제가 마음에 걸리자, 자의적으로 보이는 문구를 정해서 운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 방식에는 큰 흥미가 일지 않았다. 노력을 잔뜩 하면서도 팬질글로는 ‘쓰는 보람’조차 없는 채로, 삼행시가 애매하게 남아버린 듯했다. 상호 반응의 장점도 없고, 그렇다고 저작권 등에 대한 부담이 완전히 해소된 상황도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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