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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21. 2024

신발과 양말

원피스 & 고흐


 신발의 끈을 푸는 것이 고역일 때가 있다. 그런 신발을 신고 있을 때는 신발을 벗고 신는 게 귀찮기 마련이다.

 그날 남자가 그랬다. 여자가 어제 저녁부터 소식이 없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침에 그녀의 집에 들렀다. 집안에 들어서니 환기도 안 된 채 정리되지 못한 거실 그대로였다. 방안에 들어서니, 그녀는 겨우 그를 알아보며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일어서며 인사하려 했지만, 쉽사리 일어서진 못했다. 탁자에는 약국에서 지은 약봉투가 널려 있었고, 마시다 만 물병이 있었다. 병원부터 가자며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열이 꽤 올라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간신히 부축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들쳐 업었다. 그러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니, 신발을 제대로 신기보단 옆에 놓인 슬리퍼를 신는 편이 나았다.

 그날 남자는 근처 병원까지 여자를 업고 갔고, 온몸이 다 쑤셨다. 다음날 온몸에 알이 배길 게 뻔했다. 여자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고, 남자는 그녀가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동안, 그녀에게 죽이라도 사다가 데워주려고 슈퍼마켓에 들렀다. 아래에 진열된 죽을 고르려던 순간 슬리퍼에 빼꼼 내민 양말의 발가락 끝자락에 구멍이 난 게 보였다.

 “안녕, 발가락. 신발 때문에 미처 몰랐구나.”

 양말을 살짝 잡아당겨 발가락 아래쪽으로 밀어 내렸다. 구멍이 잠시라도 보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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