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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26. 2024

옷과 신발을 오래 곁에 두다 보니

원피스 & 고흐


 솔직히 몇 년 동안 하나만 신으며, 그보다 더 오래된 신발은 장마철에나 꺼냈기에 남자로선 소개팅에 신고 나갈 신발이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데에는 비교적 관대하게 돈을 쓰고, 가족들이 되도록 돈 걱정을 안 하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라도 돈 없는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잘 안 쓰는 데가 있었는데 옷이라든가 신발에 관해 그랬다. 이상하게 심하게 낡거나 망가지지 않는 한 줄곧 입거나 신는 편이어서, 대개 두세 벌을 돌려 입었다. 유니폼과 같아서 차라리 양복을 입는 편이 나았겠지만 남자가 일하는 데서 양복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내가 옷이나 신발을 사자고 해도, 귀찮다면서 늘 안 사곤 하였으니 결국 참다 못해 아내가 선물로 사는 것을 입거나 신기는 하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취향은 아내의 것이기는 하였으되, 남자는 그게 싫지 않았다. 물론 그런 버릇 탓인지 아내와 헤어진 뒤에도 아내의 취향은 고스란히 남은 셈이었다. 그런 걸 갈아치우자고 돈을 쓰기는 아까웠으므로, 그냥 그대로 담담하게 집안 곳곳에 전 아내의 취향이 남아 있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서 친구가 여자 한 분을 소개시켜준다고 하였을 때 마지못해 예의상 나가야 하는 자리였는데, 어쩐지 머뭇거려지긴 하였다. 어쩐지 아내의 흔적을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것 같아서 좀 애매했다. 옷과 신발을 보고 있자니, 정말 이번에는 새로 다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낡을 때까지 쓰지 말고, 취향이라는 것을 배워서 조금씩 꾸준히 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늘 그랬듯 그런 건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이번만큼은 꼭 습관을 고치자고 오랜 만에 다짐이란 것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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