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성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 은둔해 살고 있었다. 어쩌면 여전히 성경에 올라가 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은둔하고자 하면서도 성경에서 멀리 떠나지는 못하였다. 물론,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정말이지 맹세코 성경으로 올라가 급제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오히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에 지쳐 있던 터라 그러한 권력이나 출세에 큰 미련이 있는 것 아니었다. 더구나 그곳을 떠나온 이유도 그곳의 끊임없는 다툼과 소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성경이 다윗왕의 시대처럼 평화롭고 정의로운 곳이라 믿었지만, 내게는 폭군 아합왕의 시절과 같았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자리는 없었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자들만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환멸을 느꼈다.
한때 나도 성경으로 올라가 대의를 실현해 보려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와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성경의 성문을 지키는 이들은 나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런 데서 뭘 하려는 거지?"라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 내가 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성경은 내가 생각한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진실보다 거짓이, 공정함보다 이익이 우선시되고 있었다. 그렇게 난 돌아섰다.
그 뒤로는 두문불출하며 내 작은 집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아침이면 안개 낀 강가를 따라 천천히 산책을 나가고, 길가의 들풀을 만지작거리며 자연의 기운을 느꼈다. 오후에는 해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며 차를 마셨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작은 정원을 돌봤다. 나는 도시의 소란과 다툼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고요 속에서 날을 보내곤 했다.
때로는 낡은 책을 펼쳐들고 먼지를 털어내며, 그 속의 낱말들을 음미했다. 성경의 구절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갈증도 사라졌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겼다. 나무 아래서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다"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싶을 때면, 마을 시장에 들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곤 했다. 그날도 장터에서 말들이 역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역병이 성경에서 시작되어 피바다를 이루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결국 올 것이 온 것뿐이지."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으레 있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쯤인 줄 알았다. 조류 독감쯤일 줄 알았다. 하다못해 코로나19보다 심하겠느냐 싶었다. 말에게는 어떤 병이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말을 키워본 적은 없었으나, 말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요긴한 교통수단이었다. 말을 이용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이를 수 없었다. 말을 빨리 낫게 하지 않으면 참으로 낭패라는 정도쯤을 생각하며 가벼운 걱정을 하였다. 그때는 말이 사람을 물 수 있다는 것을, 말 때문에 모두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사는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천천히 흘려보내고 있었다. 도시의 광기와는 무관하게, 강가의 물은 여전히 흐르고, 들풀은 바람에 흔들렸다. 그런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의 고요한 삶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태도를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점점 소문은 괴이해졌다. 말들이 죽었다가 되살아나서는 도무지 말같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을 공격하여 물어뜯는다는 것이었다. 말이 두 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말이 사람의 말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욕도 한다는 것이었다. 저주의 흉측한 말을 퍼부으며 뚜벅뚜벅 걸어와 자기보다 두 머리쯤 작은 인간의 머리를 물어뜯는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만 소문은 사방에서 들렸고 그 내용은 일관된 면이 있었다. 구약동은 원래 말로 유명한 동네였는데 말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며, 그뿐 아니라 성경이 온통 피바다가 되었으며, 저주와 비명의 욕밭이 되었다고 했다. 성경 바깥의 사람들은 성경의 성문을 막고는 바깥에서 버티며, 안의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한다고도 했다. 성경을 모두 불 지르지 않으면 이 역병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절규 같은 말도 들렸다.
솔직히 그런 소문까지 들리는 것을 보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괜히 쓸데없이 호기심이 화를 부를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그토록 구체적인 소문이 압도적으로 사방에서 들린다면 어쩐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적어도 현실적으로 합리적으로 소문을 바꾸어 성경에 변고가 생겼다고 보면 그것만큼은 수긍할 만했다. 성경이 이제 위험한 곳이 되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어디서 직접 보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어쩐지 어느 날 꾸었던 꿈처럼, 소문을 넘어서 이것이 꿈이 아니었다고 할 만한 강한 심증마저 들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가끔 서늘해지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서 목덜미에 생긴 큰 상처를 더듬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꿈을 꾸었다고 해야 맞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궁금한 마음에 성경에 가고자 했던 마음이 지어낸 환상이라 하여도 좋다. 나는 조금은 공허하게 그때의 환상 같은 꿈속으로 배회할 때가 있다. 지금도 종종 그때에 머문 꿈의 환상이 전면에 드러나고, 지금의 일상이 속으로 잠겨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