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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들은 친삼촌들이 아니었다

엽편소설

by 희원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삼촌들은 친삼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나희가 아빠라 부르기엔 젊지만, 오빠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이 동네에서 그들을 부를 적당한 말이 필요했기에, 삼촌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았다. 친근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유지되는 그 이름, 삼촌.

어떤 이들은 낯선 나라에서 먼 길을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여기까지 흘러왔고, 이 동네에 정착한 그들은 새로운 일상을 꾸렸다. 그들의 손에는 낯을 내려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눈가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가게 앞에서 피워 물던 담배 한 개비로, 그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잠시 되찾곤 했다. 또 다른 이들은 트럭에서 무거운 짐을 내리다가 허리를 펴며 잠시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하루를 채워가는 사람들이었다.

나희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마다 그 삼촌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마치 하루의 일과처럼 "잘 갔다 왔냐?"고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그들의 어눌한 발음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친근함이었다. 어렸을 적 나희는 삼촌들의 말투를 따라 하다가 아빠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저 삼촌들이 재밌어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쓴 말투는 세상 곳곳에서 흩어져 온 고향 말이었다. 각자의 고향이 그들의 입에 머물러 있는 셈이었다.

삼촌들이 왔다던 고향 이야기는 거의 없었지만, 그들이 건네는 말 속에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나희는 그런 삼촌들이 어떤 세월을 살아왔는지 궁금해지곤 했지만, 삼촌들은 언제나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야."


삼촌들이 나희에게 다가오는 방식은 자연스러웠다. 그들에게는 강요도, 거부감도 없었다. 나희는 어릴 적에는 그게 '권위 없는 삶에서의 생존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런 표현조차 모른 채 막연하게 그런 식으로 생각했지만, 어쨌든 나중엔 그게 지혜라고 여겼다. 타인을 평가하거나 통제하려는 사람들보다는, 남을 자연스럽게 곁에 두는 법을 아는 편이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다. 때때로 예의 없이 남을 평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희는 그보다는 조금 더 자신감이 없어도,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며 사는 법을 배운 삼촌들의 방식이 더 현명하다고 여겼다.

삼촌들은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희에게도 이름을 묻거나 그녀의 이야기를 캐묻지 않았다. 그저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무언의 동지애가 있었다. 각자의 삶을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단지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조용히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날도 나희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늘 그랬듯이 동네 골목으로 들어서자 삼촌들이 보였다. 삼촌들은 구멍가게 앞에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 삼촌,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나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잘 갔다 왔냐?"

늘 듣는 인사였다. 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갔다 왔어요."

삼촌은 뭔가 생각난 듯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가, 작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했다. 삼촌은 그걸 나희에게 내밀며 말없이 웃었다. 나희는 잠시 망설였지만, 삼촌의 얼굴에 떠오른 기대감을 보고는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이거 고맙지만… 왜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삼촌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웃음을 지었다.

"그냥, 너 학교 잘 다니니까. 응원하는 거야."

나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삼촌들은 이런 식이었다.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거나,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희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희는 자신이 딱히 응원받을 게 있나 싶었다. 아직 중학생이어서 학업 스트레스가 엄청난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서울로 대학 가는 것은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응원받을 게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되물어볼 만한 소재도 아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희는 사탕 봉지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들이 준 건 단순한 사탕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말로 다 하지 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삼촌들은 큰 소리로 표현하진 않지만, 이렇게 작은 행동들로 마음을 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나희는 책상 위에 놓인 사탕 봉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냥, 너 학교 잘 다니니까."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삼촌들이 사는 우리 동네는 그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들에게는 고향을 대체할 수는 없어도 잠시 머물다가 갈 곳, 그러면서 제법 오래 여운을 지닐 만한 곳이었다. 이를테면 삼촌들에게 우리 동네는 작은 고향이었다고 나희는 믿는 편이다. 그런 믿음을 지녔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삼포 가는 길>이라는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없어진 고향이 삼포라는데, 개발 호황을 타고 고향의 모습이 너무 바뀌었다는데, 그래도 남은 고향처럼, 우리 동네가 있다는 상상을 했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고, 부당함으로부터 멀어져서 조금은 안도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삼촌 이모들이 우리 동네로 찾아들 때면 약간의 자부심을 지니고 환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얼마 전 아침 뉴스를 볼 때도 그랬다. 서울 강남의 고시원에서 사라진 두 명의 필리핀 언니들도 어쩐지 우리 동네로 흘러들 것 같았다. 대개는 그렇게 돌고 돌다 오는 곳이라는 말도 있었으니까. 한 명은 휴대폰을 갖고 나갔지만 연락 두절이고, 휴대폰은 꺼져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아예 휴대폰을 놓고 잠적했다고 했다. 나희는 돌보미 일이 돈도 적게 받고 열악한 조건인가 싶었지만, 그보다는 휴대폰이 없어도 찾을 수 있는 동네가 우리 동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곧 우리 동네로 흘러들어 오겠네.”

이제는 익숙해진 어눌한 말투로 삼촌 중 하나가 말했다. 그런 동네였다. 우리 동네는.

“저걸 아깝게 저기 두고 와? 휴대폰 들고 오면 내다팔 수도 있는데.”

“팔 데는 알고?”

“모르지.”

다른 삼촌들이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모두가 따라 웃었다.

아침마다 삼촌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구멍가게 앞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서로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다 보면 뉴스를 화제거리로 삼기도 하는데, 필리핀 언니들의 소식은 그들과도 무관하지 않아서 그런지 쉽사리 화제에 올랐던 것이다.

물론 그 후에는 각자 일터로 향했다. 공사장에서, 트럭 운전석에서, 가게 안에서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자신들도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때면 다른 이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 잠깐 모여서나 휴식 시간에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저마다의 현실과 미래를 공유하곤 했다.


나희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다 삼촌들을 지켜보았다. 삼촌들은 늘 구멍가게 앞에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나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삼촌들은 그저 거기에 있었고, 나희는 그들을 지켜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희는 삼촌들을 흘낏 바라보다가 눈에 익은 꼬마들이 골목 끝에 모여 있는 걸 보았다. 그들은 어딘가 수상해 보였다. 그 중 한 아이가 새총을 들고는 삼촌들을 겨냥하는 흉내를 냈다. "푱푱!" 소리가 들리자, 삼촌들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다시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그 장난이 나희에게는 심각해 보였다.

나희는 순간 화가 나서 골목을 뛰어갔다.

"야!"

그녀가 소리쳤다. 꼬마들은 놀라서 나희를 보더니 순식간에 도망칠 준비를 했다.

"너희 뭐하는 거야? 삼촌들한테 새총 쏘는 흉내를 내면 어떡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꼬마는 잠깐 멈칫하더니, 새총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나희는 그 장난감을 뺏어 들었다.

"이거 내가 가져간다."

나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꼬마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 하지 마. 삼촌들이 뭐 잘못했어?"

나희는 그들을 혼쭐내고는 새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그 꼬마의 엄마가 나희네 집에 찾아왔다.

"저희 애가 새총을 잃어버렸다는데 혹시 아세요?"

그녀는 나희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나희는 잠시 주춤했지만, 결국 새총을 내놓았다.

"다시는 삼촌들한테 장난치지 않겠다고 하면 돌려줄게요."

꼬마의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희에게 넌지시 한마디 했다.

“우리 아이가 잘한 건 아니지만, 어차피 멀어서 쏘아도 맞히지 못했을 거고, 심지어 쏘지도 않았잖니? 거기에 돌멩이라도 얹어져 있었니?”

나희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새총은 돌려줬고, 그 뒤로 나희는 더 이상 새총을 압수하지 않았다. 약간 억울한 마음만 들었다.

“괜찮아. 애들인데 뭘. 나중에 알 거야. 걔들도. 그리고 고맙다.”

나중에 이 사건을 안 삼촌들은 개의치 않는다며 나희를 달랬다.

그 이후로도 나희는 삼촌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삼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아이들도 더 이상 새총을 겨누지 않았다. 나희는 지나치다 그 아이들을 만나면 주시하고 있다는 듯이 그들에게 신호를 주곤 했다. 아이들은 불편한 듯 자리를 피하곤 했다.

나희는 그들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새총을 겨눈 게 나쁘다는 것을 나중에는 깨닫게 될까. 저절로 깨닫게 된다는 게 가능한 걸까. 그 아이들이 새총의 고무줄을 힘껏 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한쪽 눈으로 조준할 때 아이들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나희가 본 것은 삼촌들의 표정이었다.

삼촌들은 휴식 시간에는 함께 모여 앉아서는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곤 했는데, 때로는 피곤한 얼굴로 벽에 기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가장 큰 모습은 묵묵히 견디는 힘이었다. 삶의 무게에 지쳐 보이면서도, 그들은 늘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솔직히 나희도 아직은 견딘다는 것, 버틴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고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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