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촌락에는 삼촌들이 많았지만,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와 삼촌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모두에게 이모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이모가 아닌’ 이모들의 일손을 돕고, 마을 구석구석에서 자잘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들의 존재는 희미했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그들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일이 흔했다.
"그 삼촌이 안 보이네?"
하고 묻는 이가 있어야 비로소
"그러고 보니 며칠째 못 본 것 같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게 마을에서의 일상이었다.
삼촌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왜 떠났는지, 그 뒤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이 동네에서 삼촌들의 존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굳이 그들이 떠난 이유를 캐물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남긴 자리가 무거워질까, 말없이 조용히 그들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쁜 일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막상 도와야 할 일이 생길까 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에는 짧고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가 있었다.
삼촌들이 머물렀던 장소는 대개 동네의 마을 회관이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회관은 기숙사 역할도 한 셈이다. 삼촌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했다. 그곳에서 삼촌들은 조용히 숙식을 해결했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은 물건들을 회관의 한쪽 구석에 남겨두고 떠났다. 그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마을 회관의 침상에는 언제나 삼촌들이 누워 있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그들을 삼촌이라 불렀다. 이름을 앞에 붙이기도 했지만, 그러다 대개 그냥 다 삼촌이 되었다. 그들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또 깊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삼촌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논밭이나 과수원에서 일하고, 종종 이모들의 가게에서 나무를 쪼개거나 마당에서 자잘한 농기구들을 손봤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회관으로 돌아가 작은 짐들을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묵직한 삶의 흔적이 배어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캐묻지 않았다.
삼촌들은 마을에 스며들 듯 존재했고, 그러다 또 스며들 듯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떠난 삼촌에 대해 묻는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존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도 한 삼촌이 마을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떠난 삼촌은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또 다른 삼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었다. 마을은 그들의 떠남에 익숙했다. 삼촌들이 그렇게 흘러 들어왔다가, 또 사라지는 흐름은 마치 강물처럼 자연스러웠다.
회관의 숙소에 남겨둔 물건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작은 배낭 하나와 헐거운 신발 한 켤레.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자리를 다시 채울 삼촌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삼촌은 다시 스며들고, 떠나갔다. 마을은 늘 그랬듯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떠난 삼촌은 곧 잊힐 것이었고, 마을 사람들도 그 사실에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런 반복의 주기대로 어느 날, 마을에 또 하나의 낯선 삼촌이 나타났다. 이 마을에서 새로운 삼촌의 등장은 늘 그렇듯 평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듯 그를 바라보았고, 이모들은 잠깐 동안 그의 낯선 얼굴을 살펴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그렇듯 마을 사람들은 그 삼촌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또 하나의 삼촌이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마을 회관에서 묵기 시작했다. 그 삼촌 역시 그 규칙을 따랐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입가에는 오랜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또 어디서 온 사람인지에 대해선 아무도 묻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익숙해진 듯했다. 그는 매일 아침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손을 거들었다. 농작물을 나르고, 마당에서 나무를 정리하거나 농기구를 손보았다. 그의 일 처리는 항상 꼼꼼했다. 마당의 나무를 다듬을 때면 흙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물을 뿌려주었고, 고장 난 농기구를 고칠 때는 성급하지 않고 세심하게 손을 보았다. 그의 손은 거칠었고 주름이 많았지만, 그가 다룬 물건들은 새것처럼 다시 태어났다. 이모들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들은 그가 일을 할 때마다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삼촌은 그저 조용히 그들의 일을 돕고, 필요할 때 필요한 일을 찾았다. 그의 존재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모들은 그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눈을 마주칠 때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삼촌은 미소를 짓거나 짧은 인사말로 답하곤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와 이모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감이 어쩌면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매일 저녁이 되면 마을 회관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이모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했다. 그는 큰 소리로 웃거나,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이모들의 담소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 다른 삼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마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모들은 그가 길을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고, 가끔은 그의 옆에 앉아 함께 차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구멍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은 마을에서 일상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가 앉아 있으면, 다른 삼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의 분위기는 고요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삼촌은 담배를 피우며 먼 곳을 바라보았고, 가끔 이모들이 농담을 던지면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그 삼촌은 이모들이 모여 있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가게 문 앞에 놓인 꽃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그 꽃을 돌보지 않고 있었는데, 삼촌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더니 다시 길을 걷다가 잠시 후 돌아와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이모들은 그를 지켜보며 속으로 고마워했지만, 그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않았다. 삼촌은 물을 주고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며칠 뒤, 그 꽃은 다시 싱그럽게 피어났다. 이모들은 그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삼촌이 한 일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작은 행동이 마을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후로 삼촌은 가끔 그 꽃에게 물을 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모들도 더 이상 말없이 지나치지 않고, "잘 지내냐"며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삼촌은 그럴 때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루는 삼촌이 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한 이모가 옛 이야기를 꺼냈다.
"저 꽃,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가 키우던 거랑 닮았어."
다른 이모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추억을 나눴다. 삼촌은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이모들의 마음속에는 그가 묵묵히 마을을 도우며 보냈던 시간들이 겹쳐졌다.
시간이 흘렀다. 삼촌은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일하고, 담배를 피우고, 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어느 날, 삼촌은 작은 배낭을 메고 마을을 떠났다. 다른 삼촌들과 다르지 않게, 그의 떠남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저 또 한 명의 삼촌이 떠났을 뿐이었다. 작은 배낭에 몇 가지 물건을 챙겨 회관을 떠나는 모습은 그저 일상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며칠 뒤 이모들 중 하나가 삼촌의 부재를 깨닫고 무심코 말했다.
"그 삼촌이 안 보이네?"
다른 이모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그가 늘 가게 앞을 지나가던 모습이 익숙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못 본 것 같네."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그가 떠났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 삼촌, 언제쯤 돌아올까?“
이모들은 그 말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 질문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떠난 삼촌들이 다시 돌아오는 법은 없었지만, 이 삼촌은 왠지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의 존재가 무겁게 다가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의미 없지만은 않았다. 그의 부재는 어딘가 허전하게 다가왔다. 마을 한 구석, 그가 돌보던 꽃이 여전히 싱그럽게 피어 있었고, 그 작은 꽃이 삼촌의 흔적을 대변하는 듯했다. 삼촌이 남긴 것은 시들어가던 꽃 한 송이일 뿐이었지만, 이모들은 그 꽃이 오래도록 피어 있을 거라 믿었다. 마을을 떠난 삼촌은 이미 그곳에 남겨진 어떤 작은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누구도 삼촌이 떠난 이유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혹시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긴 것일까? 그런 걱정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누구도 그를 찾아 나서거나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삼촌들의 떠남은 늘 그런 식이었다. 갑작스럽지만 예고된 일, 늘 반복되던 일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떠난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보냈다. 마을 회관의 숙소는 그가 남긴 작은 흔적들로 여전히 가득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배낭 한 켠에 남아 있던 헌 옷과 낡은 신발. 누군가 가져갈지, 아니면 버려질지 모를 물건들이 회관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정리될 것이고, 삼촌의 존재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모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가게에서 담소를 나누었고, 그 삼촌이 떠난 사실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삼촌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삼촌들은 늘 그러했으니까. 마을에 머물다 떠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 누군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잠깐은 어색할 수 있지만, 그 어색함도 곧 사라졌다.
그러나 어쩌면 한두 명의 이모쯤은 그 삼촌의 이름을 한동안 기억하게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