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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품 보관 창고 (1/2)

단편소설

by 희원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1

락커를 당겨보았지만, 역시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세게 당겨보았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덜커덩 하는 소리만 요란했다. 걸쇠가 걸리면서 열리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소리였다. 남수는 준비해 온 마스터키를 열쇠 꾸러미에서 찾았다. 마스터키란 이름표가 견출지와 투명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곧 뜯겨나갈 것처럼 견출지의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락커에는 삼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이 남아 있기 일쑤였다. 락커가 잠겨 있는 채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인사조차 없이 여행 다녀오는 것처럼 야밤에 떠난 경우라면, 며칠이 지나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남은 외상값을 갚지 않고 떠난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을 때 락커를 마스터키로 열어야 했다. 어쩐지 허락받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여는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치면 삼촌들의 과거는 단출했다. 고작 락커 정도의 작은 공간에 웬만해서는 모든 짐이 다 들어가는 것이니 한 사람의 과거 치고는 단출하다고 표현해야 적절하다. 일부를 집어넣지 못하면 창고 등에 보관해두거나 침대 밑에 놓아두기도 했다. 중요치 않은 물품이라면 그냥 락커 위에도 올려 두었다.

남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락커를 비우고, 삼촌들의 물건을 치웠다. 낡은 옷가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이미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 주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이거나, 쓸모가 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쓸 만한 물건이 있어도, 대개는 이미 기한이 지나서 버려야 할 때가 많았다. 그들의 물건은 가방 하나에 겨우 담길 정도였다. 그마저도 필수품 정도였고, 그대로 유류품으로 남아버리곤 했다.

락커는 다시 비워져, 또 다른 새로운 삼촌을 맞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유류품으로 남은 물건은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여 보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잊히기 마련이었다. 창고 안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물건들은 서서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렇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삼촌들과 함께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버려졌다.


“돌아오지 않을 거면 왜 물건을 다 두고 갔을까요? 치우는 건 우리 몫이잖아요.”

가끔 남수는 한탄 섞인 말들로 돌아오지 않을 거면 애초에 물건을 모두 들고 갈 것이지, 그냥 놓아두고 일을 만든다며 투덜거릴 때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물건을 두고 가면 창고에 한 자리를 오래도록 채워두어야 했다.

“그냥 버릴 걸 알고 산 것들이겠지. 몸만 훌쩍 떠나서 다른 곳에서 또 구입할 있을 정도의 물건들 말이야. 오래 머물지 못하는 걸 알았겠지.”

관리소장은 으레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돌아와서 찾아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1년 정도는 유류품으로 보관해 두어야 했다. 그들의 남겨진 흔적을 보는 일은 익숙했다. 간혹 남은 삼촌들이 치우는 일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유류품을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씩 버려야 했다. 락커 속의 유류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들의 존재감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러나 가끔씩 돌아오는 삼촌도 있었다. 두세 달 뒤에 나타나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남은 돈을 갚고는 락커 속 물건을 꺼내 가곤 했다. 그들은 그렇게 물건을 챙기고 떠나갔고,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불확실함을 남겼다.



#2

남수는 삼촌들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에 앉아 있곤 했다. 물품을 정리할 때면 그 김에 창고의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쓸곤 했다. 그러고는 환기를 시킬 겸 창고를 지킬 겸 그곳에 앉아서는 컵라면을 먹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무실의 정적이 답답해질 때면, 그는 자연스럽게 창고로 발길을 옮겼다. 손에 들린 컵라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창고의 답답한 공기도 은근히 선선하게 느껴졌다. 창고는 졸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으나, 남수는 그곳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먼지가 코끝을 간질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 순간의 평화로움을 즐겼다.

“잠깐 회관 둘러보고 올게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비울 때면 휴식 시간이자 간식 시간인 셈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관리소장은 그런 그의 버릇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로운 시간에 굳이 그를 닦달하지 않고,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면 남수도 바깥일을 봐야 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많았다. 마을회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러 떠난 후에는 텅 비어 있었다. 1층의 경로당도 한가했고, 그곳의 어르신들은 낮잠을 자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일을 보러 나간다고 했을 때면, 가끔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창고로 숨은 것이었다.


창고는 먼지와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곳이 주는 고요함이 남수에게는 특별했다. 남수는 그곳에서 잠시 일상을 벗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먼지 쌓인 물건들과 폐기하지 못한 낡은 락커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 남수는 묘한 안정을 느꼈다. 창고에 앉아 있으면, 남수는 마을 소식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귀에 들려오는 착각마저 느꼈다. 마을회관의 총무로 일하며 많은 이들의 소식을 접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창고의 오래된 물건들처럼 그의 머릿속에 채워졌다.

창고는 떠난 이들이 남긴 물건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는 공간이었다. 삼촌들이 언제 돌아올지, 혹은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수는 그 물건들을 치우지 않았다. 창고 정리를 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버티다 보니 3년이 넘은 유류품도 있었다. 관리소장이 창고가 이게 뭐냐며 지적을 할 때면 비로소 치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소장 역시 그리 열성적으로 창고 정리를 하려는 쪽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 게으른 태도가 남수로서는 다행스러웠다. 자신이 게으른 만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굳이 일을 떠넘기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렇게 창고는 조금은 어지럽게, 이것저것 정처를 정하지 못한 유류품으로 가득했다. 남수는 오랜 시간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가끔씩 그들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 희망을 품을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런 기대를 했다. 삼촌들은 이곳으로 왔다가 어디론가 정처를 찾아 떠났다. 어쩌면 빚에 쫓기고,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갈 만큼 돈을 마련해서 떠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꼭 그랬기를 바랐지만 대개는 화려한 귀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은 여전히 어딘가를 헤맬 수도 있을 그들은 늘 일정만큼 자신의 짐을 버려두고 떠났다. 어쩌면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한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은 대개 자기 물건을 찾기 위해 되돌아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5년을 근무하면서, 유류품을 찾아가는 삼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겨진 물건들은 시간과 함께 창고의 한 구석에 묻혔다. 하지만 그는 그 물건들을 1년 정도는 치우지 않았다. 단순한 물건들이었지만, 때로는 그 물건들이 삼촌들에게 돌아오는 마지막 연결 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오래된 가방이었다. 삼촌 중 한 명이 남기고 간 것이었고, 그 안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며 남수는 그 삼촌이 언젠가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내 마지막 사진이야."

그가 말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가방을 창고에 그냥 두기에는 불안했다. 분실되거나 파손될 것을 염려한 남수는 그 단출한 가방을 마을회관 사무실로 옮겨, 가장 안전한 곳에 두었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가방만큼은 보관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안에 담긴 사진이 남수에게도 중요한 무언가를 의미했기 때문일까, 그는 끝내 그 물건을 버릴 수 없었다. 그 물건을 이제는 버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래도 창고에 조금 더 보관하다가 때가 되면 처리하자는 마음을 먹은 터였다. 한 달쯤, 아니, 일 년쯤은 더 기다려 보려 했다. 어차피 창고에서 버릴 물건은 차고 넘쳤다. 1년이 지난 물건도 많았다. 창고 정리하는 날에는 순번만 바꾸어도 상관없었다. 삼촌은 아마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수는 그 가방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삼촌이 다시 돌아올 마지막 이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3

남수는 언제나 생수를 마시곤 했다. 어렸을 적부터 생긴 습관이었고, 자기 돈을 벌면서는 꼭 부족하지 않을 만큼 생수를 사다가 냉장고에 쌓아놓고 했다. 500ml와 2L로 나누어 늘 비치해 두었고, 가급적 정수기도 쓰지 않았다. 오래된 냉장고 안에 가득 쌓인 생수병들이 그에게는 근거 없는 작은 위안이었다.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언젠가 희연은 말했다.

“그런 걸로 부자 같아진다면, 금방 부자 되겠네. 아닌가? 그런 걸로 만족해버리면 계속 지지리 궁상이려나?”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여겼는지 남수의 눈치를 보았었다. 남수는 못 들은 척하면서 라면을 끓였던 것 같다. 대학교 졸업하고 막 취직하였을 때, 그녀가 남수의 원룸으로 찾아왔던 날이었다. 같은 국문과 출신이었지만 서로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서 4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다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커뮤니케이션학의 교양 과목이었던 ‘언론과 테크놀로지’ 수업에서 우연히 함께 조별 과제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수는 언론 쪽에 관심이 있었고, 사실 그 수업에서 같은 국문과 학생, 특히 같은 학년을 만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조별 과제에 함께 참여했다. 그것이 계기였다. 그녀와의 관계가 발전하는 첫 만남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가끔 우리는 함께 어울렸는데, 취직으로 자취방을 회사 근처로 옮기고는 한동안 서로 사느라 바빠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곤 했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희연은 말을 돌리려 했다. 남수 역시 라면이 끓고 있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귀에 박혔지만, 곧 털어버렸다. 원래 가끔 말실수를 하곤 해서 빈정 상하게 했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는 것쯤은 알았다. 한두 번 모른 척 지나치면, 후회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남수는 희연과 하나만 남아 있던 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문득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상상을 했다. 야식을 먹으면서 하기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긴 했다. 희연을 못 알아보고 그녀를 물어뜯을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다. 가족도 못 알아보고 공격한다는데, 희연은 남이었으니 좀비라면 공격하지 않을 리 없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라면 국물까지 싹 비워 먹고는 그녀는 커피 한 잔까지 하고는 집으로 갔다. 냉장고에 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을 기약했지만, 그건 당시 남수의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수는 문득 좀비가 되어서는 정처 없이, 정처를 잊고, 정처를 찾을 생각조차 못하고 길거리를 배회해야 할 것 같았다.


신입사원으로 작은 프로덕션에 입사한 그였지만, 사수를 잘못 만났는지 일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선배가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야근은 일상이었다. 늘 퇴근 직전에 주어진 일에 단련된 것까지도 좋았는데, 예산까지 담당하다 보니 잦은 실수가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업무 추진비 말인데...”

상사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펑크 난 예산에 대해 시말서를 써야 했고, 생각보다 큰 액수라는 이유로 일정액을 월급에서 차감해야 했다. 고된 업무에 시달리면서 빚까지 저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 일이 남수 자신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희연이 집으로 불쑥 찾아오기 이틀 전에 사표를 쓰고 퇴사를 한 터였다. 차마 그 말을 희연에게는 하지 못했다. 다시 직장을 구하고 나면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운이란 들어올 때가 있는 법인지, 줄기차게 들어오던 기회도 갑자기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한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일용직 등을 하면서 고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희연에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했다. 자격지심이었다. 희연이 대기업 신입 생활에 바쁘게 적응하는 과정을 문자로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고백할 자신이 사라졌던 것이다.

일단 남수 자신의 처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어차피 스쳐 지날 운명이고 친구로만 지낼 관계라면 그렇게만 두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생활비는 늘 빠듯했고, 코로나 시절까지 겹치는 바람에, 구직 시장은 얼어붙었다. 버티기 어려웠다. 한 달 중 고시원에만 있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급하다며 이틀만 쓰고 주겠다던 친구의 부탁에 돈을 부쳤다가 2천만 원이 공중에 떠버리고, 친구가 한동안 연락을 피하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던 때였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친구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서 일주일 뒤에 갚겠다고, 마침 갚으려고 했으니 내일 갚겠다는 식으로 약속을 매번 어겼다. 그렇게 정말 영영 돈을 받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직장이 있을 때 그랬다면 어떻게든 직장에 붙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직장도 그만두었으면서 뭘 믿고 친구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준 것인지 그 자신의 만용을 탓해야 했다. 최후의 순간을 위해 생활비로 아껴 쓰던 돈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증발한 셈이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남수는 지쳐 있기도 했다. 그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좁은 고시원 방에서 침대에 앉거나 책상에 앉은 채로 창문을 열고 건너편 교회를 바라보았다. 그곳으로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위안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곳에도 그냥 평범하게 일상의 법칙에 얽매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지쳐버린 마음이 의지할 곳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도, 그것을 실현할 힘도 없었다. 남수는 우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울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그랬기 때문에 우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장 다음 달 방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희연에게 방세를 빌려달라고 해볼까 망설였다.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마침 희연에게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흔한 안부 문자였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을 전혀 모르는지 문자는 평상시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수는 그 모름에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난처한 앎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남수는 며칠 뒤 이른 아침에 고시원 방을 비웠다. 자신이 고시원에서 나올 때도 가방에 미처 담지 못한 물건을 억지로 담기 위해 싼 짐을 다시 풀지는 않았다. 그렇게 크리넥스 휴지, 버릴까 고민하던 바지 몇 점과 신발 한 켤레를 그대로 놓아두고 나왔다.

그렇게 남수는 도시를 떠났다. 그가 다시 돌아갈 만한 곳은 외가가 있는 곳, 자신이 오래도록 자랐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엄마의 고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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