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4
여름이면 늘 후줄근한 티셔츠 다섯 장을 번갈아 입어야 했고, 그 티셔츠들이 더러워지기 전에 서둘러 빨래를 해야만 했다. 그리 넓지 않은 숙소에서 더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찬물로 빨래를 하곤 했는데, 그 차가운 물이 봄이나 가을철에만 해도 남수의 손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이 물로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따듯하게 물을 데우거나, 온수를 나오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모두가 군말 없이 썼기 때문이다. 겨울철이나 되어서야 온수가 나왔다. 고시원에서도 온수는 마음껏 쓰게 하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었지만, 그런 불평을 관리소장은 흘려듣곤 했다. 이곳에서 방세 없이 그리 박하지 않은 월급까지 받았으니 불평을 더하기도 그랬다. 무엇보다 봄철과 가을철에 온수가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자니 어쩐지 군색한 느낌도 들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곳에서는 모두가 큰 불만 없이 묵묵하게 받아들였다. 나름대로 이곳만의 규칙이 있었던 셈이다. 사소해보이지만 분명한 규칙이었다.
그런 예를 또 들자면, 남수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마을 회관의 관리소장에게 허락을 맡지 않으면 나갈 수 없었다. 특히 일요일이라면 관리소장에게 평일에 미리 말하지 않는다면 웬만해서는 붙박이로 있어야 했다. 둘 중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는 지침 때문인데, 아주 특별한 경우, 응급 상황 등에만 믿을 만한 삼촌에게 잠시 총무 일을 맡기기는 하였다.
‘관리소장하고 총무만 있는데, 뭔 장이여, 장은.”
그렇다고 박소장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을 소장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일에도 맡은 바 전문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직함이라고 했다.
남수는 꼬박꼬박 소장이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자신이 굳이 외출하려 하지도 않았다. 온수는 좀 상시적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외가에서도 온수는 잘 나오는 편이었다.
이곳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외가에서 지내지는 않았다. 심지어 한동안 외가에 이곳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 했다. 물론 그건 불가능한 시도였다. 어차피 좁은 마을에서는 금방 소문이 돌 것이란 걸 알았으니까. 정말로 하루가 지나자 외할머니가 남수를 찾아와서는 “잘 왔다”며 남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이곳은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고, 외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그가 좋아하는 음식 냄새가 그를 환영했다.
“넌 왜 집에 안 들어오고 여기서 자냐?”
이곳으로 돌아와서 들은 외할머니의 첫마디였다. 그 목소리가 종종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외할머니나 읍내에 사는 이모는 종종 반찬거리를 싸다 주시곤 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잔소리를 하기는 했다.
“젊은 녀석이 도시에 나가서 힘 있게 살아야지. 돈도 많이 벌고.”
“내가 뭘 해서 돈을 많이 벌어? 그리고 거긴 돈이 많이 들어.”
“아니, 젊은 녀석이 그런 게 겁나서 어쩐담.”
사실 무엇이 겁나는지 잘 모르겠다. 겁나던 것을 잊었다. 어쩌면 잊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나 이모는 더 다그치지는 않고 반찬이나 다 먹으면 빈 그릇 챙겨오라고 말하곤 했다. 남수는 그리 자주 찾아가지는 않았다. 외할머니의 걱정하는 잔소리가 마음 쓰였지만, 그렇다고 외가도 딱히 그를 반길 만큼 공간이 충분한 곳은 아니었다. 방은 세 칸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가끔씩 시골을 다녀가는 이모의 방문을 염두에 두고 비워두었다. 그런 이유로 외가에 머무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장 오래도록 살았고 외가가 자기 집이라 해도 무리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의 짐이 있었다. 그래서 늘 떠나고 싶었다. 원래 자신의 집으로. 그러나 이곳 말고 자신이 마음 편히 거처할 곳도 없다는 것을 언젠가 깨닫기도 하였다.
자신의 물건은 일부 외가에 맡겼으나 소소한 물품은 자신조차 이곳의 총무 락커에 넣어두었다. 총무의 락커만큼 물품이 없는 락커도 없었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어디엔가 정착할 만큼 짐을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다. 남수 역시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이곳을 환승역 삼아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5
남수는 창고에 물건을 넣을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그를 외가에 잠시 맡긴 채 “금방 다녀오겠다”며 떠났던 그날.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교통사고였다. 결국 남수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이자 남수의 외할머니에게 맡긴 것은 물건이 아니라 남수 자신이었다.
남수는 한동안 엄마와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들려온 이야기는 그들이 미국으로 해외 파견근무를 나갔다는 것이었다. 너무 급하게 떠나야 했다는 말만 남긴 채, 그들의 부재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남수는 그들이 바쁜 일정 속에서 언제나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크리스마스 즈음, 부모님에게서 크리스마스카드가 도착했을 때 남수는 더욱 그 믿음을 굳혔다. 카드 속에 적힌 몇 마디의 인사는 그가 그리워하던 따뜻한 손길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건 외할머니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었다. 그 마음 그대로 드러난 글자가 엄마의 목소리로 어린 남수에게 와 닿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남수는 그들이 멀리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그리 먼 곳에 있다고만 믿었던 남수는, 그들이 사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남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삼촌들이 남긴 물건들, 그들이 떠난 후에도 버려지지 않은 흔적들은 남수에게 희미한 희망을 남겼다.
물론 그저 삼촌이라 부르게 된 삼촌들은 남수가 기다려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수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이유를 물건 속에서 찾고 있었다. 그 물건들이 단순히 버려진 것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올 구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남수는 그것이 단순한 집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느낌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남수에게는 이 물건들이 바로 그 믿음의 작은 조각이었다.
#6
비가 오는 날 남수는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를 가져다가 창고 앞 처마에 놓아두고 비를 감상하며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공동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김치를 조금 꺼내다가 컵라면을 들고 와서는 앉아서 먹었다. 비는 슬레이트 처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일요일 오후였다. 일부는 외출을 나갔고, 일부는 2층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외출을 나갔던 삼촌들이 모두 돌아오지는 않을 수 있었다. 가끔은 그랬다. 숙소에 남은 삼촌들은 뜻하지 않은 조촐한 만찬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물을 마시려 공동 주방에 들어왔던 삼촌들이 컵라면을 하나씩 뜯어서 물을 붓고는 남수처럼 식탁에 김치와 라면을 두고는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비 오는 날에는 컵라면에 소주가 제격인데.”
그러다 보면 미리 사다둔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음 맞는 이들끼리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들은 돈을 벌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향에 돌아가면 어떻게 살 것인지 서로에게 그 꿈을 풀어놓았고 서로에게 덕담을 했다. 남수는 잠자코 듣다가 웃어 보였다. 남수에게 이곳은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시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낙향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남수는 삼촌들처럼 어느 날 되도록 조용히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어쩌면 영영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곳은 비록 완전한 고향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물렀고 가장 익숙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완벽한 종착지라고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문자 그대로만 본다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어린 시절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서울로 대학교를 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수는 자신이 태어나서 살던 동네, 엄마 아빠의 흔적이 묻은 동네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자신이 기억할 따뜻한 어떤 것이 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대단한 어떤 동기가 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그저 아파트 단지만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예전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저 단지 밀집 지역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오래된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는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뿐이었다. 그곳을 놀이터 삼아서 운동장을 뛰놀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는 고향의 흔적을 찾았다고 할 수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곳이었고, 오래도록 남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그냥 남의 동네였다. 어쩌면 고향이나 다름없는 외가의 동네조차 남수에게 그렇게 기억될지도 몰랐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삶이었다. 청년에게 삶이란 너무도 많이 남았으므로 더더욱 장담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삼촌들처럼 짐을 정리하고 떠날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남수는 여전히 이곳에 머물며 잊히지 않은 기억과 물건들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무심히 스쳐가듯 문자 한 통이 왔다. 삼촌들이 저마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남수는 무심코 휴대폰을 들었다.
“야, 잘 지내냐? 그동안 돈 못 갚아서 늘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계좌 번호 다시 한번 불러줄래. 그리고 대충 소식은 들었다. 한 번 놀러가려고 하는데, 이번 달 마지막 토요일 어때? 창식이랑 희연이랑 경수랑 선영이랑 그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려고. 혹시 불편한 사람 있으면 오늘 안에 말해주고. 그날은 내가 쏠게.”
남수는 휴대폰 문자를 여러 번 읽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풀어냈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남수도 그랬다. 남수의 시간이 손가락 끝에 얼얼하게 맺히는 듯했다. 남수는 담담히, 그러나 기어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