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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주, 바텀업 방식과 톱다운 방식 (2/2)

스타일 Part2 (38~40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2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27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38~40프레임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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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삼행시편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계속 고민해야 했죠. 번호글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다 보니, 몇 가지 문제가 생겼거든요. 삼행시편이 번호글 간에 너무 많이 배치되면 번호글도 너무 길어졌죠. 2~3편만 있어도 어느 정도 분량이 나오는 상황에서 10편쯤의 삼행시로 번호글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면, 엽편소설이나 단편소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면 삼행시편의 배치 자체를 잊을 만한 긴 호흡이 번호글마다 생기겠죠. 삼행시 콜라주라고 할 때 삼행시를 중심에 두고, 번호글로 그 연결성을 환기한다는 목적까지 고려한다면 비중이 너무 깨진다는 문제가 도출되었어요. 심지어 삼행시편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오히려 중간에 몰입하려다가 삼행시편들이 호흡을 깬다는 기분도 들었죠. 각각의 파편적인 이야기를 10편쯤 읽어야 할 테니까요. 거의 이 정도라면 콜라주의 흔적마저 퇴색되고 삼행시를 인식의 마중물 삼아서 아예 새로운 번호글 형식으로 빌드업(다시쓰기) 했다는 느낌마저 들었죠. 그때는 그게 영 마뜩찮았어요. 관성적으로 삼행시 콜라주를 옹호하고 있을 시점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삼행시편 지점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깨달았죠. 막상 출판 시도를 하기 직전까지는 생각지 않았다가, 막상 출판사의 무반응이나 퇴짜 메일을 읽다 보니 다각도로 개선점을 찾으려 했던 것이죠. 실제로 그들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혹시나 문제가 될 만한 지점은 없었는지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았죠. 거절 메일은 의례적이곤 하니까요. 그 많은 투고 원고에 일일이 퇴짜 이유를 작성하는 것도 과중하겠죠. 그 점은 이해해요.

어쨌든 그때 마음에 걸렸던 것은 세로글로 인용했을 때 문구의 저작권 문제였어요. 특히 시의 제목을 따다 쓰거나 했다면 문장에 예민한 시인들이 문구 사용을 허락할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 정도는 그냥 인용 출처를 달면 될 듯했지만, 모든 삼행시편에서 그런 세로글이 있다면 어떻게 보아줄 것인가 하고 걱정했죠. 그것을 시간을 두고 줄여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연예인이 인스타그램에서 내뱉은 말은 저작권 저촉 여지가 적다고 해도, 뭔가 찜찜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대안을 마련하려고, 이미지를 두고 나 스스로 문장을 창작해서 세로글로 쓴다든지 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죠.”


“문제는 일단 쌓아놓은 삼행시 중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지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었죠. 삼행시의 상호 반응성을 살리려면 부득이한 면도 있을 텐데, 그 점까지 고려하면, 삼행시편의 수를 번호글 간에서 줄이고, 번호글의 강화하는 쪽으로 고려하게 된 것이죠. 마음에 들어서 콜라주 재료로 썼지만,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삼행시였다는 표식을 남기고, 그 편에 대해서만 산문으로 풀어서 기술할 것도 염두에 두었고요. 그러면 산문 스타일과 삼행시 스타일이 콜라주 재료로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죠. 그게 좀 보기 싫을 수 있어서 번호글 간의 삼행시편을 1~3편 정도로 제한하는 것도 검토하였고요. 이렇게 공개 제시된 삼행시편은 번호글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거나 앞서 진술된 내용과 호응하며 환기하는 역할도 하겠죠.

하지만 콜라주 투입 편수를 대폭 줄여서 연결고리용, 환기용으로 역할을 축소하는 방법을 쓸 경우, 바텀업 창작의 묘미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문제가 생겨서 일단 유보했죠. 또 번호글 확장 때 1~3편보다는 더 많은 삼행시편이 필요한 경우도 자주 생기는데, 이것을 제한하면 결국 번호글의 대부분을 그냥 창작하는 것이 되죠. 더구나 번호글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번호글에 삼행시가 주석처럼 붙은 꼴이었죠. 그러면 굳이 삼행시 콜라주라고 부를 당위성도 약해지잖아요. 그래서 ‘인식의 마중물’ 역할을 할,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삼행시편을 더 그러모아서는 보강하는 작업도 추가하였죠. 삼행시편 중에도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이 생기는 것이죠. 다만 이 역시 온전히 콜라주 작업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면 어정쩡한 타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다 싣거나 아예 떼어버리는 방법이 있을 텐데, 다 싣는 것은 이미 문제를 분명히 인지했다고 언급했고, 다 떼어내는 방식은 아직은 고려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예 삼행시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하자니, 최초의 의도가 사라지고 말죠. 삼행시의 기준을 명확히 하려고 번호글을 도입해 놓고 번호글만 남는 꼴인데다가, 탈락한 삼행시를 활용한다고 해놓고 전시되지 못하고 번호글의 마중물 역할만 하는 셈이었죠. 그러면 삼행시 콜라주만의 개성을 잃을 것이고, 새로운 개성을 획득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무위로 돌아갈 테죠. 그래서 고집을 부렸어요.”


“사실 삼행시편을 떼어내는 방안은 오히려 톱다운 방식을 적용할 때라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죠. 톱다운 방식은 바텀업 방식과 방향이 다르게 창작되고요. 위에서부터 아래로 창작된다고 해야 할까요? 바텀업 방식이 귀납적으로 다양한 자료를 일단 수집한 다음, 그 우연성에 기대어 재료에서 글감을 뽑아내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톱다운 방식에서는 일단 쓸 거리를 먼저 가지고 있죠. 그냥 단행본 분량의 글을 쓰는 것이죠. 그러면서 쉬어가는 코너처럼 삼행시를 번호글 간에 배치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 당연히 글 자체에서는 하나의 분명한 흐름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이음매가 있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진 않았죠. 그런 점에서 톱다운으로는 기존에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을 확보하고 있는 내용이라든가, 삼행시에서 잘 담아내지 않았던 이론적 사상적 특징을 보이는 글을 추릴 때 필요했죠. 삼행시로 바텀업을 한다면 원하던 내용으로 흐르지 않을 확률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삼행시편에서 비평적 이야기를 번호글로 뽑으면서 이론적 이야기로 흐른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요.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높죠.

그런데 사실 이렇게 확실히 단행본 흐름을 잡았다면, 굳이 삼행시 콜라주를 적용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곤 하는데, 맞아요. (웃음) 그냥 강박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뭔가 하나를 좋아하면 그것으로 통일감을 주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거든요. 삼행시 콜라주로 바텀업 작업을 해서 번호글로 이야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는, 이를 내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싶었던 거예요. 심지어 이미 가진 원고도 모두 삼행시 콜라주 스타일에 대입하려고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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