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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다운 방식에서 삼행시편은 장식적이다

스타일 Part2 (41~42F)

by 희원이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2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27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41~42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창작 노트: 톱다운 방식에서 삼행시편은 장식적이다

톱다운 방식의 매력은 일관된 이야기나 사유를 펼칠 때인데, 이럴 경우라면, 굳이 삼행시 콜라주로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삼콜이 과연 새로운 형식으로 그 합당성, 필연성,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겉멋처럼 전락할 수도 있었다. 톱다운에서는.

바텀업 방식으로 쓰려 할 땐 소재가 당연히 전혀 감도 안 잡히고. 자리 잡으면서도 계속 이야기의 톤이 바뀌고 인물의 결이 바뀌니, 콜라주 재료의 우연성 비중이 상당하다. 그만큼 어렵고, 그러니 어쩐지 전시하고 싶어진다. 과정의 흔적처럼. 나름대로 실용적인 면도 분명하다. 삼행시의 운자를 떼듯이 기계적으로 이야기의 파편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바텀업으로 해서 마중물로 끌어올린 이야기가 서서히 자체적인 힘으로 나아간다. 계속 삼행시편이 새로운 길을 잡아주며 강권하는데, 이를 적절히 에두르며 갈 수 있다. 그만큼 글밥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톱다운에서는 그런 매력이 사실상 없다. 톱다운 방식의 경우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백지를 한참 두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저 논리적 대비로써 바텀업에 상응하는 지점을 설정한 뒤, 톱다운 방식을 테스트해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콜라주 기법의 실익이 없다는 것을 경험하여 안 셈이다. 톱다운 방식의 장점으로 꼽을 만한 내용이 있다면 그건 그냥 단행본을 쓸 때 일관된 글쓰기를 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덕목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삼행시편의 중력에서 벗어나 번호글에 다양한 스타일을 적용하는 실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번호글의 개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구어체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어쨌든 톱다운 방식의 삼행시편을 떼어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삼행시가 장식적일 뿐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위해 어떻게든 그것의 긴요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던 시점이 있었다.






“만일 단순히 장식용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면 굳이 삼행시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죠. 그냥 관련 보강 정보를 <더 알아보기> 박스글로 배치하는 게 나아 보였거든요. 뭔가 어정쩡하게 개성적인 흔적을 남겨놓고자 하는 어설픈 시도라고 해야 할까요? 삼행시 콜라주 형식을 웬만해서는 부수고 싶지 않은 안간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맹장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기능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명확히는 자신도 모르겠고 전문가도 모르겠는, 뭐 그런 존재요. 좋은 기능보다는 거추장스러운 역효과가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일단 이런 스타일을 취하면서 단행본 두 편 분량의 글을 써내기는 했어요. 결국 하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보류하고, 다른 하나는 삼행시를 떼어내고 번호글 자체를 칼럼처럼 정리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톱다운은 딱딱한 이론적 내용을 과감하게 개진하는 글에 좋았고, 바텀업의 경우 소설적 상상을 펼치는 경향으로 드러나더라고요. 제 경우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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