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Part2 (89~104F)
글쓰기 외전: 스타일 Part2
◑ 전체 원고 콘셉트 및 진도 상황
- 매거진 방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다양한 저자를 섭외하지는 않고 단독으로 작업하였습니다. 매거진에서 다양한 글에 다양한 필자가 있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다중 정체성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고흐 이미지를 배치하고 여러 스타일의 글과 함께 구성하였습니다. 픽션 매거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매거진 놀이로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 원고의 경우 전체 흐름에선 사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되 종종 일관된 방향성을 띠되 원활한 개진을 위하여 허구적 설정을 삽입하였습니다. 대체로 경험적 정보로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 총 127프레임으로,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뀔 수 있습니다. 현 발행글은 90~104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슬픔을 그린다는 건 누군가의 삶이 되기도 하고>는 90~100프레임에 해당합니다.
◑ 창작 노트: 희원이-겨울락 듀오 스타일과 메타픽션적-창작일지적 에세이
놀이글 프레임에 얹은 번호글, 그 안의 속성을 살피면 다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을 통해 인터뷰이의 말을 관찰하는 감독이 드러난다. 그러한 설정 속에서 감독은 무엇인가를 추적하고 우연히 인터뷰이의 말에서 예상치 못한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소용돌이 치게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건과 주장을 담아낼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이 정도의 스타일이라면 장르적인 기본 요건을 갖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최적화된 형식을 찾아낸 듯했다. 이것은 대개 메인 화자가 발언하는 것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주변으로 말풍선을 달고 여러 인물이 주장을 추가하거나 반박한다. 전체적으로는 단일한 화자의 세력이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이것을 싱글 스타일로 불렀다. 한마디로 이야기꾼 하나가 전체를 장악하고 핵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사이로 많은 인물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 상황에서 아직은 감독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인터뷰이의 말을 제시하는 설정이다. 다큐멘터리 인터뷰 동영상 미편집본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감독을 전면으로 끌어내고 그와 대비되는 주류 화자를 하나 더 추가하는 방식도 구상한다. 기존 방식에서는 다큐 형식의 한계상 미래와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야 하고, 판타지적인 설정을 할 때도 한계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민기자로서 감독 겨울락이 다큐 형식의 수행자로 인터뷰이 바깥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기록비평가이자 시민예술가로서 소설가 지망생인 희원이가 내면적 몽상으로 그 사건과 결이 맞는 인물을 창조해서 메타픽션적으로 관여하는 구조를 시도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정교한 노력이 요구되어서 굳이 이미지가 필요한가 싶어 아예 구어체를 없애고 이미지도 없애고 철저하게 문어체의 에세이 형식으로 메타적 탐색을 해보자는 구상이 매타픽션적-창작일지적 에세이였다. (생략)
◑ 인용글: 피에르 바야르 (출처: 위키백과)
피에르 바야르는 1990년대에 주로 정신분석 이론을 문학 작품에 적용하는 기존의 정신분석 비평의 방향을 틀어서 문학 작품이 정신분석 이론과 다른 인간 심리의 모델을 제시하는 양상에 주목하였다. 2002년 작 『Qui a tué Roger Ackroyd? (한국어 번역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부터는 비평과 허구가 혼합된 '이론적 허구'를 개발하여 비평가가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추리 소설의 다른 범인을 찾아내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수정하거나,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등 유머러스한 상황을 설정하여 작가의 위상, 독자의 역할 등 문학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제기하고 탐색한다. 이런 비평 방식을 본인이 "개입식 비평"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책 『Comment parler des livres que l'on n'a pas lus? (한국어 번역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에서는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을 재치 있는 전개와 문체를 통해 선보인다.
“희원이-겨울락 듀오 스타일을 떠올릴 때는 순수문학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처럼 역시 그런 스타일도 있었죠. (웃음)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격언이 떠오르더군요. 괜히 복잡해지기만 했죠. 이때 땅콩집 복층 서술 구조로 이야기를 겨울락, 겨울락의 인터뷰이, 희원이, 희원이가 구상한 가상 인물 등의 네 가지 결로 이야기를 수행하려 했는데, 듣기만 해도 엄청 복잡하지 않나요? 당시에는 간결하게 그걸 표로 나누어 이야기를 따로 정리하려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 살펴보니, 제가 봐도 생경하더군요. 그러면 실패한 거죠. 창작자도 모르는 아이디어라니요? (웃음)
어쨌든 그게 복잡한 듯해서 땅콩집처럼 둘로 나누는데 복층을 단층으로 바꾸는가 하면, 수직 이분할해서는 (웃음) 결국 실패했다는 소리죠. 그래도 어쨌든 구상을 이어보려고 애쓰면서, 저자가 일관되게 전지적으로 이를 진행해볼까 했더니 문어체가 적격이더라고요. 이미지는 복잡하니 떼어버리자 싶었죠. 메타픽션적-창작일지적 에세이라고 뭔 희한한 명칭을 다 갖다 붙였죠. 역시 나중에 메모한 걸 읽어보니 내가 뭐한 건가 싶더군요. (웃음)
이 아이디어들은 굳이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괜히 쓸데없이 복잡하고 다음에 쓰지 않을 확률이 높은 거니까요. 원래 창작의 기조를 ‘simple, small, superb’로 잡는데, 단순하고 간결하게 적게 써야 간신히 최상의 결과물을 가끔 얻어 걸리듯 뽑아낼 만한 작자가 저인데, 복잡하고 정교하고 방대하게 쓰려 하면 아무래도 망하겠죠.”
“시민 참여적 글쓰기를 위해 다양한 소재를 비평적이면서 이야기적으로 풀어보는 형식을 찾으려 했는데 과욕이었어요. 더구나 이것은 약간 모순적인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죠. 출판은 하고 싶고 그러려면 모두를 단 한 번에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하나의 상징적인 스타일을 엄청 재미 있는 이야기로 소개하여 대중에게 스타일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몽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망상이라고 해두죠. (웃음) 그건 아무래도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아서요.
그런 바람을 위해 너무 힘을 준 것도 문제인데, 심지어 문법이 정형화되고 조금 단순화된 글쓰기 방식을 도입하여 다양한 소재의 결을 포괄하려고 한 것이죠. 시민 참여적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하고 싶다면서 말이죠. 그래 놓고 더럽게 복잡한 것을 들이미는 꼴이었어요. 나가도 너무 나갔죠. 힘을 준 채 뒤뚱거리면서요.
다행히 세밀한 구상만 하다가 노트를 서랍에 넣어버렸죠. 오랜 만에 꺼내 읽는데, 낯이 화끈거리더군요. 그때는 정말 이것이야말로 정답이라고 여겼거든요. 결론적으로 ‘단 하나의 스타일’로 실패작이었을 뿐 아니라 ‘각자의 방식대로’ 한다고 해도 이 스타일은 시민 참여적 글쓰기와도 먼 속성이어서 아마도 서랍 속에 계속 있어야 할 듯해요. 삼행시 콜라주만 해도 겉으로 보기엔 가독성이 떨어지고 복잡해 보여도 사실 면면을 따로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편이었거든요. 조립되어 잇는 글쓰기 방식이었고요. 그에 비해 ‘희원이-겨울락 듀오 스타일’이라든지 ‘메타픽션적-창작일지적 에세이’는 단행본 분량으로 정교하게 이야기를 구축하는 방식이라 제가 그동안 찾아온 맥락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죠. 그래서 이 아이디어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 생략했어요.
물론 이런 구상과 시행착오를 할 때에도 관성적으로 놀이글 프레임에 바텀업 콜라주 작업을 거친 이야기를 얹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