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삼촌 → 촌락 → 락커 → 커서 → 서산 → 산삼 → 삼촌
어떤 단어들은 유년기 때와 다른 느낌으로 남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게는 삼촌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모호한 위치에 있다. 유년기에는 친근한, 어쩌면 조금은 든든한 단어였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낯설고 머쓱한 단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삼촌에게도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나, 그 시작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자주 보지 못한 삼촌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부터 나는 삼촌들이 ‘손윗사람’이라는 경계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 자연스레 거리감이 쌓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 어색함이 풀리기는커녕 더 깊어지기만 했다. 여기에는 나의 개인주의 성향도 한몫했다. 명절 때도 잘 찾아뵙지 않는 날이 쌓이면서, 나는 스스로 친척들로부터 멀어진 사람이 되었고, 그런 삶이 자연스러웠다.
이때 삼촌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라지만, 어찌 보면 살가운 성격의 누군가가 손님이나 동료를 부르는 호칭보다도 서먹한 단어일 수 있다. 서로가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공감대를 쌓지 못하고 관심사도 다른 채 서로가 공유하는 목표마저 없는 채로, 각자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친척은 남보다는 조금 나은, 혈연이라는 생각도 했다. 모여야 할 때 모이는 최소한의 끈으로 연결되었고, 그게 어쩔 때는 불편하지만, 또 어쩔 때는 고맙기도 한 느낌이었다.
물론, 유년 시절의 추억과 달리 삼촌이란 단어가 서먹해진 건 내가 사회성을 띠지 못한 탓이 크다. ‘살갑지 못하고 의무방어전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성격은 꼭 다른 데서도 단점으로 작용했다. 대학에서 친분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는 것, 그 뒤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지속되는 교우 관계가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지낼 때는 무난하게 잘 지내는 편이지만 먼저 다가서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삼촌이라는 단어가 서먹해진 것도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명절에도 잘 찾아뵙지 않는 성향, 남들처럼 부드럽고 살갑게 친척들과 어울리지 못한 성격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이 그다지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다. 어쩌다 한 번 모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별다른 얘깃거리 없이 곧 다른 화제로 돌리거나 다른 용무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요즘, 문득 나도 언젠가는 조카에게 그런 삼촌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질 않는가. 지금은 아직 어린 조카와 친밀감이 있는 편이지만, 세월이 지나며 우리가 각자의 삶에 더 집중하게 되면 나 역시 조카에게 서먹한 존재가 될지 모른다. 조카가 커서도 살갑고 다정한 성격일지는 모를 일이다. 성장할수록 나처럼 아이 역시 누군가와 억지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동생은 나와 달라서, 조카도 나와 다를 것이란 기대쯤은 한다. 그나마 가까운데 살아서 공감대가 형성될 기회는 좀 많은 편이다. 그건 다행이다.
요즘 따라 삼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겹쳐져 어색한 기분이 든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그 사이에 쌓인 거리감이 삼촌이라는 호칭을 통해 반사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