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단편소설

by 희원이
영원히 사는 새
1부. 안녕 (2003년 8월)
2부. 에반게리온의 죽음 (2003년 8월 이후 어느 날)
3부. 어느 이상한 아이에 관한 동화 (2003년 8월 이후 어느 날)





나의 머리엔 항상 한 아이가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그렇게 특별한 사건을 벌이지도 않으면서 나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는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간혹, 어떤 날에, 예컨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나 이야기, 혹은 비슷한 사건들이 마음을 훑어갈 때면, 아이는 쭈뼛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워, 나의 머리 속을 헤집어 놓고는 자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오랜만에 그 아이를 털어 내었다.

아이는 지금 혼나고 있다. 남자는 위태롭게 앉아 한쪽 손으로는 회초리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무릎을 툭툭 친다. 아이를 무섭게 쳐다보며 앞으로도 그럴 건지 안 그럴 건지 반복해서 물어보고 있다. 다그친다. 아이는 울먹인다. 자못 험악한 분위기가 주위를 압도한다.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파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약한 날개를 힘껏 너울지하며 주위를 어지럽게 만든다. 어느덧 아이의 눈은 파리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고개도 파리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그러자 잠시 후 가느다라면서 탄력적인 것이 아이의 목을 훑고 지나간다.

아프다.

남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어서 말하렴.”

울음소리에 놀란 여자가 다가와 아이에게 말한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여탕을 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란다.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며 방에 들어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한다. 아이는 저린 다리를 두드리며 일어난다.

“사내녀석이…….”

남자는 한심해서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젓는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남자로부터 조심스럽게 멀어져간다. 막혔던 숨통이 트여온다.

상쾌하다.

아이는 방의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연 다음 다시 닫는다. 손잡이를 원위치로 돌려놓고 조용히 손을 뗀다. 그리고는 소매를 손가락 끝까지 끌어내서 다시 손잡이를 잡는다. 손잡이에 아직 배어 있을 지문과 온기를 닦아내고는 다시 소매를 끌어올린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녀는 언제나 소리 없이 웃는다.


우리는 지금부터 그 소녀를 차차라고 부르기로 하자. 아이가 예전 저녁 무렵에 텔레비전 앞을 지키고 있으면 늘 아이를 반겨주었던 소녀, 그녀의 이름은 차차였다. 빨강망토를 둘러 입고 동그란 얼굴에 금새 사라져버리는 비누방울처럼 연약한 기운을 머금은 눈망울을 지닌 소녀는 엉뚱한 소리와 요술로 아이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과 함께 있는 소녀를 차차라 불렀다.

'너는 늘 이런 식이야.'

아이는 자신이 곤란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주변의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나면 모습을 나타내는 그녀를 책망하며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차차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않은 채 아이가 하는 일을 유심히 관찰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깨끗한 눈망울로 아이를 또렷이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간혹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빠뜨렸다고 생각되면 조용히 다가와 그것을 바로잡아 주곤 한다.

'리모콘은 텔레비전을 사용한 후 반드시 제자리에 놔야 해. 커튼을 치고 나면 모든 깃들이 수직이 되어야 한단다. 이불을 갈고 나면 정확히 각이 잡혀 있어야 하고.'

정리정돈은 항상 필수이다. 만일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다면 남자는 아이를 질책할 것이며, 때로는 아이가 아끼는 물건을 버리기도 할 것이다.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면 아이는 울고, 차차는 위로한다. 차차, 너는 언제나 따스한 품으로 아이를 끌어당겨 살포시 안고 등을 두들겨준다. 말을 하지는 않는다.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필요한 말 이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네가 언제부터 아이의 곁에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건 차차, 네가 아이와 함께 한다는 사실! 네가 있던 그 때부터 너는 아이에게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남자의 말을 따라, 순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고 있는 아이를 보고도, 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상황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좀체 속을 드러내지 않는 애매한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아이가 땀을 흘리며 팔을 비틀고 몸을 비비꼬며 얼굴을 찡그리자, 비로소 너는 살며시 웃어 보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다가올 때면, 혹은 문이 열릴 때면 책상의 틈이나 형광등 고정판 사이로 숨어버리곤 한다. 그와 동시에 잠시나마 꾀를 부리던 아이는 잽싸게 꼿꼿한 자세로 바꾸어 벌을 선다. 남자는 결코 알아 챌 수가 없다. 이들의 숨바꼭질 놀이를…….

파리는 남자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고는 간간이 날개를 휘저으며 스스로를 알린다. 아이의 방으로 스며들어오는 더운 기운은 아이의 몸을 감싸고는 끈적끈적한 땀을 뽑아낸다. 아이는 숨을 쉰다. 작은 파장이 인다. 어느새 책상의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는 무릎을 턱밑에 바짝 갖다 대고 두 팔로 정강이를 감싼 차차는 아이를 보며 변함없이 웃고 있다. 여전히 서로는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차소리와 물소리, 거실로부터 들어오는 남자와 여자의 인기척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다. 아차차차, 아이와 차차의 숨소리도.


'바퀴벌레 소리가 들려.'

남자가 아이를 타이르고, 팔을 주무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뺨을 두서너 번 정도 가볍게 두드렸다. 남자가 아이를 용서하는 방식이다.

'그래, 맞아, 책장 뒤쪽에서 한 마리가 뒷다리로 소리를 내고 있어.'

차차의 대답은 남자의 목소리에 눌린다.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 다 큰 사내대장부는 모름지기 고추를 자랑스러이 여겨야 한다.

아이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의 드넓은 가슴을 응시한다. 러닝셔츠만을 입고 있는 남자의 양 가슴전체에는 세밀하게 갈라진 근육덩어리가 옹골지게 들어차 있다. 가슴근육은 어깨근처까지 뻗어 삼두근과 이두근을 만난다. 다시 삼두근과 이두근이 내달려 팔꿈치근을 지나 팔뚝 부근에 튼실하게 자리 잡은 굴근과 심근의 군(群)에 이르면 남자는 근육이 실어다 준 힘을 손목을 통해 매끄럽게 받아 아이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가볍게 비벼댄다.

"넌 사내대장부야. 아빠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쯤 되면 아이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한 절차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아이는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차차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중으로 밀폐된 유리창으로 빛이 쉴 새 없이 흘러 들어온다. 꿉꿉해진 공기가 어색하고 조용한 기운을 가지고 놀다가 제풀에 지쳐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던 차였다. 차차는 방문을 여는 대신 어떠한 소리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창문을 열어제친다.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창문을 열기 전에도 바깥소리를 유심히 느꼈다. 창문 주위를 맴도는 모기와 파리의 날갯짓 소리, 아이가 사는 아파트 뒷마당에 자리 잡은 풀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그리고 맑은 물을 머금은 강이 제 갈 길을 재촉하는 소리, 친구들이 노는 소리, 아파트 경비병이 근무 서다가 가볍게 기침하는 소리 등. 아이와 차차는 다양한 소리를 포착하여 신경계로 밀어 넣어 온 몸으로 소리를 질주하게 한 후에 새로운 환상으로 바꾸어 내뱉을 준비를 하였다. 차차가 창문을 완전히 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리듬에 맞추어 아이가 사는 아파트가 신기루처럼 휘어지고 스러져 어느덧 바닥으로 붙어버린 것일까? 아이가 사는 4층이 어느덧 지면 위에 바짝 밀착해 있다.


'우와!'

'늘 있는 일이잖아.'

자주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남자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마냥 신기한 듯이 남자와 여자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리고 차차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아이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창문은 마치 대문처럼 바닥에 바투 접해 아이와 차차는 창문을 넘는 수고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선다.

바깥은 짙푸른 풀들이 촘촘히 들어박혀 길조차 나있지 않았다. 바람에 자신들을 내맡기며 나부끼는 동안, 노을의 잔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짙푸름이 불그스름한 빛깔을 드리우고, 아이야, 차차야, 너희는 주변이 온통 숲으로 변해가는 광경을 목격한다. 차차의 희고 온기 서린 손이 아이의 가느다란 손목을 부여잡는다. 연약해 보이는 두 다리를 사뿐히 밀어 올리는 학처럼 도약하여 노을을 등에 지고, 온 지면에 풀어놓은 야생마처럼 거침없이 퍼져가는 숲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자. 행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퍼져버린 숲 속 사방에서 빛을 머금기 위해 뛰쳐나오는 사슴들의 선량한 호의를 받으며, 때로는 그들 중 하나의 등에 올라타 빛을 머금고 숲을 내지른다고 하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도 한다는 사슴이 암컷의 무리로 오건 수컷의 무리로 오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르는 발정기가 올 때까지는 조용할 테니……. 그들은 너희 눈의 아래쪽에 있는 눈밑샘[眼下腺], 발가락(발굽) 사이의 제간샘[蹄間腺], 얼굴과 다리에 위치한 냄새샘[臭腺]에서 배어 나오는 분비물을 감지하여 너희를 동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면 몸에 털이 없다고 해서, 첫째발가락이 있고 셋째발가락과 넷째발가락의 발가락뼈가 서로 붙지 않았다고 해서, 또한 둘째발가락과 다섯째발가락은 퇴화하지 않았으며, 발굽이 없다고 해서, 행여 주눅 들지 말고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려라.

그들은 너희를 말없이 숲 속에서 거닐게 할 것이며, 향기로운 전설 속 향수를 떠올리게 해 줄 물가로 안내하게 된다. 흐르는 물 속에는, 아이야, 차차야, 너희 모습이 떠오를 테고, 어쩌면 잠시라 할지라도 무언가에 취한 듯이 사슴의 무리를 따라 슬픈 모가지를 쭉 뽑는 형상을 하고 먼 어딘가에 들어 찬 산 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어찌하랴. 너희는 곧 너희의 형상을 비추는 물이라는 것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강의 한 지류임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거대한 함성과 함께 사내의 무리가 강 건너편에서 강으로 뛰어들 태세다. 그들의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독려하는 남자가 보인다. 아이를 혼내던 남자다.

'아빠다, 아빠…….'

차차는 아이를 바라보며 살며시 아이의 손을 잡는다. 사슴의 무리는 한가롭다.


와아!

박수소리와 함께 바쁘게 상황을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장정구가 8회 KO로 지명방어전을 성공했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 남자는 계속해서 통쾌한 듯 웃는다. 그 소리는 거실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냉혹하게 갈려서 흩뿌려진다. 먼지며, 빛이며, 더위도 팬의 위력에 맥을 못 추고 철저히 굴복당한 채 주위의 어둠 속으로 숨는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빛은 간 곳 없고 어둠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모기는 힘차게 날갯짓 소리를 만들며,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다가 빛이 자리한 곳을 찾는데 분주하다. 바퀴는 절대 눈에 띄지 않는 천부적인 잠복술을 쓰며 미세하게 흔들리는 다리의 진동을 뿜어낼 뿐이다. 여자의 발소리가 아이의 방으로 가까워진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얼굴을 빠끔히 내민 여자가 아이를 보며 말한다.

"성현아, 밥 먹을 시간이다. 할머니 오셨으니까 나와서 인사 드려라. 그만 자고."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서 투정을 부리듯 칭얼댄다. 자고 싶어요, 더 자고 싶다고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소리는 입안에서 맴돌다가 사라진다. 차차는? 주위를 둘러봐도 언제 사라졌는지 차차는 보이질 않는다. 여자는 부엌에서 밥상을 분주히 차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아이에게 소리를 낸다.

"이 잠보야, 얼른 일어나. 할머니도 오셨는데, 착한 아이는 그러면 안돼."

아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선다. 어느새 여자가 갖다 놓았는지 아이가 누웠던 자리에는 얇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있다. 아이는 계속해서 조그만 손바닥으로 눈을 후비듯이 비비며 주위를 돌아보다가 방에 걸린 거울에 시선이 멈춘다. 거울 속에 머리를 엉클어진 남자아이가 서 있다.

"성현아,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라고 엄마가 몇 번 말했지?"

거실로부터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자못 위엄있게, 혹은 위협적으로 아이의 귓속으로 날아든다. 아이는 마치 반사적으로 음향이나 빛이 퉁겨나가듯이,

"네."

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발은 거실로 향한다. 아이가 웃으며 달려가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부서질 듯이 꼭 끌어안고 몇 번을 좌우로 세차게 흔드는 늙은 여자가 있다. 아마도 남자와 여자가 말하던 할머니인 듯하다. 어이구, 우리 애기 잘 있었어? 어디 고추 잘 있나 보자. 늙은 여자는 주름진 손을 아이의 팬티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시늉을 한다. 순간 아이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늙은 여자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으며 옆으로 살짝 비켜선다. 늙은 여자는 이러한 반응을 접하고 호쾌하게 웃는다. 인석, 다 컸다 이거구나. 아이고, 예쁜 것. 늙은 여자는 아이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빼어 아이의 양 뺨에 두 손을 대고 부드럽게 비빈다. 여자는 거실로 상을 들고 와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상을 놓고 식사하자고 말한다. 그들과 아이는 둘러앉아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한다. 아이가 몇 번 숟가락질을 하고, 어설픈 젓가락질을 할 때 늙은 여자는 식사할 생각도 않고, 아이의 밥그릇에 아이가 좋아하는 갈치를 발라서 올려놓고 김치조각을 얹어준다. 어머니, 진지 드셔야죠. 어, 그러마. 이러한 대화가 두 번 정도 흘러가고야 늙은 여자는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멀리까지 웬일이에요? 남자의 물음에 늙은 여자는 말한다. 어디 통 볼 수가 있어야지. 손주 운동회도 한다고 하니 이참에 한번 내가 와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러 말들이 오간다. 다양한 말들이 의미모를 소리가 되어 아이의 귓가를 치고 간다.

"어머니, 저 남자예요. 제가 아까 말한 요새 잘 나간다는 탤런트."

모두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옮겨간다. 그 안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에는 키 크고,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을 가진 남자가 깊은 눈빛을 띠며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제법 잘생겼다. 여자는 제법 예쁘다. 저녁 시간대쯤 늘 텔레비전 속에 들어있는 여자는 항상 수줍어하거나 발랄한 편이다. 이상하게도 텔레비전 속의 여자들은 백사장이 깔려있거나 밤이거나 골목길에 있을 때는 어김없이 똑같아진다. 백사장에 서 있는 여자도 그러하다. 진지한 시선을 시종일관 남자의 깊은 눈에서 떼지 않는다. 두 사람의 눈 속에 바다가 들어차 있다. 노을이 들어차 있다. 남자가 최대한 깊이 울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지켜줄게."

두 사람은 격렬하게 몸을 맞대고 입을 맞춘다. 내가 지켜줄게? 아이는 서툰 젓가락질로 갈치의 몸통을 후벼파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있다. 내가 지켜줄게?

'내가 지켜줄게.'

어둠으로 온 몸을 감싼 아이는 옆에 누워있는 차차에게 무심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빛 한 자락조차 남지 않은 자리를 꼼꼼하게 채워버린 어둠이 이불 속에 도사린다.

'뭐?'

'내가 지켜준다고.'

'뭘?'

'글쎄…….'

막상 생각해보니 차차의 물음에 아이도 말문이 막힌다. 진짜……, 뭘 지켜준다는 거지? 아이가 차차의 손을 잡고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차차, 너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에서 너의 손을 빼내고 이불을 들추어낸다. 방 한구석에서 선풍기의 팬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어둠과 팬소리가 무겁게 울리는 때를 틈타 바퀴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다리의 진동은 빛이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먹이감을 찾아 헤매는 모기의 애타는 날갯짓 소리가 더욱 선명하다. 차차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천진스럽게 웃는다. 아이도 따라 웃으며,

'왜 일어섰니?'

차차, 너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손가락으로 창문 밖을 가리킨다. 마치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이와 동시에 빠르게 돌아가는 선풍기의 팬이 숨겨놓았던 빛을 토하듯이 마구 뱉어댄다. 빛이 아이와 차차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 창문 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차차도 밀려나간다. 아이도 따른다. 창문 밖은 습하다. 바닥은 사각형의 타일이 촘촘히 박혀있고, 물기가 곳곳에 배어있다. 물방울이 머리위로 떨어진다. 여전히 힘차게 들려오는 팬소리의 진원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유려한 곡선을 과시하는 여체들을 본다.

'어머, 사내아이네. 귀엽게 생겼구나. 몇 살이니?'

'7살이요.'

'어머, 다 컸네. 여탕에 오는 게 부끄럽지 않니?'

'거봐, 넌 다 큰 거야. 이제 어른이잖니. 어른은 여탕에 오는 게 아니야.'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아이에게 속삭이는 여자를 커다란 눈망울에 담고서는 빤히 서 있을 뿐이다. 여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스치듯이 지나 온탕으로 빨려 들어간다. 뜨거운 김이 피어올라 여자의 나신을 촉촉하게 해주다가 이내 방울로 변해 유려한 등줄기를, 풍만한 가슴을 타고, 가느다란 허리에 맺혀,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다른 여자가 빨려 들어간다. 또 다른 여자가, 또 다른 여자 옆에 있던 여자도……. 물방울 튀는 소리가 소라껍질 속에서 울리는 공명처럼 습기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이내 팬소리와 얽혀 습기를 촘촘히 엮는다. 빛은 빠르게 돌아가는 팬 사이를 뚫고 욕탕으로 스며들어와 맑게 퍼져나가 습기에 닿는다. 협소한 장소는 뜨거운 물과 인체의 온도로 후텁지근하다. 간간이 냉탕에서 튀는 물방울만이 차다.

'들어오렴. 아주 기분이 좋아.'

아이는 망설인다.

'들어와 봐.'

온탕을 중심으로 아이의 맞은편에서 여자아이가 망설이고 있다. 아이야, 너의 짝꿍이다. 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빛은 아이와 아이의 짝꿍을 비춘다. 수증기는 가득하다. 물기는 여전히 아이의 발바닥을 가로지르고, 물소리는 끊임없다.

'안……, 안녕'

아이와 짝꿍은 서로가 어색한 듯 뻣뻣하게 마주보다가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짝꿍은 큰마음을 먹은 듯 인상을 찡그리며 온탕으로 들어가면서 아이의 말을 받는다.

‘그래, 안……, 안녕.’

아이는 보았다. 가슴은 똑같이 편평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작게 돌출된 수도꼭지가 짝꿍에게는 없다는 것을. 짝꿍은 어색한 인사 뒤에 애써 아이의 시선을 피하는 듯하다.

‘들어와 봐.’

부드러운 나체를 지닌 사람들이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의 여자는 온탕에 몸을 담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여자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짝꿍의 얼굴도. 아이는 그만 뒷걸음질치기 시작한다. 타일이 촘촘히 들어 찬 틈 사이로 물기가 배어서, 미끄럽다. 팬소리가 요란하다. 빛은 온탕을 비추며 습기와 어우러져 여체들을 뿌옇게 만든다. 온탕의 후끈한 기운이 온 욕탕을 매워간다. 아이는 뒤돌아 뛴다. 미끈거리는 바닥 때문에 엉거주춤 하면서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 마침 욕탕에 들어서던 여체의 유려한 풍만함을 스쳐 빠르게 빠져나간다.

물기가 온 몸에 묻어 축축하다. 아니다, 얼마나 뛰었는지 온 몸이 땀으로 배어있다. 문을 열고 막 들어선 아이의 어정쩡한 모습을 뒤돌아 바라보는 아이들과 아이의 여자와 비슷한 정도의 나이로 보여지는 여자. 뿔테 안경을 끼고 회색세미정장차림을 한 여자는 뿔테안경을 오른쪽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들어올리며 아이를 바라본다.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성현이, 또 늦었구나. 그래도 평소보다는 일찍 왔네.’

수업시간마다 15분 정도 늦게 들어오던 아이에게 여자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아니, 어쩌면 정말 기특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사실 화장실에서부터 교실까지는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3분이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아이는 손으로 벽을 세밀히 훑으며 몇 번이고 왕복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질리거나 만족된 느낌이 있을 때라야만 교실에 들어서곤 했다. 대개는 땀에 살짝 젖은 채로. 어쨌든 여자의 소리를 듣고 킥킥대는 녀석들도 있고, 무신경하게 책을 보거나 공상에 빠진 녀석들도 있다. 10분밖에 안 늦었어요! 개중에 짓궂은 녀석이 정확한 시간까지 아이들과 여자에게 상기시킨다. 남자이이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크고, 목소리도 제법 굵은데다 머리가 아이의 남자처럼 짧은 녀석은 주변의 아이들을 이끄는, 말하자면 골목대장과도 같은 역할을 맡은 놈이다. 그는 항상 아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편이다. 계집애 같은 놈, 이것 봐, 대들지도 못하잖아, 라고 자주 비아냥대던 녀석은 아이를 곤경에 빠뜨리는 걸 지상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처럼 아이를 못살게 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녀석이 으레 아이에게 창피를 주려고 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못된다. 아이는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숙이고 교실 맨 앞, 그러니까 여자가 열변을 토하다 보면 침이 튀길 수 있는 거리 정도에 위치한 책상까지 걸어간다. 짝꿍이 보인다. 애써 아이를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책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이를 외면한다. 아이에게 비교적 친절한 여자아이였다.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도 하였으나, 짝꿍에 대한 배려나 간단한 대화 정도는 성실히 해주던 그녀였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간단한 인사치레를 한 후부터, 아이의 짝꿍은 정말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장난처럼 그어놓은 책상 중간의 선을 그때 이후로는 철저히 지키며 서로가 서로의 자리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짝꿍일 뿐이었다. 아이는 책상서랍에서 공책과 바른생활 교과서를 꺼낸다. 짝꿍은 고개를 한번도 돌리지 않은 채 교과서의 책장만 넘긴다. 여자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박자에 맞추어 바퀴벌레 소리가 들린다. 교실 바닥 밑에서 힘차게 다리를 움직인다. 빠르게 전진한다. 다리가 공기와 강하게 마찰한다. 교실 앞에서 여자가 여전히 쉴 새없이 말한다. 혀와 입천장이 쉴 새 없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파리가 교실 주변을 맴돌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교편을 탁자에 툭툭 치고 있다. 수업시간이 끝났다는 종이 울리면 짓궂은 녀석은 몇몇 무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아이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 것이다. 너 따위가 어떻게 우리 반 이어달리기 대표냐, 말도 안돼. 하기야 빠르긴 빠르지. 그래도 시합하면 긴장해서 어떤 멍청한 짓을 할지 몰라. 담장으로 달려가서 손으로 벽을 훑을지도……. 주위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아이의 귓가로 달려들 것이다.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따르르르르릉!

아이는 잠에 취한 채 시계를 찾으려고 손으로 주변바닥을 더듬는다. 바퀴벌레는 더 이상 소리 내지 않는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안방에서 울린 시계소리와 함께 남자와 여자가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김없이 6시다. 창문을 경계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파리는 아직 소리 내지 않는다. 파리는 어디로 갔지? 아침은 모든 것이 밤과는 달리 정리되어 있다. 남자도 그렇다. 항상 똑같은 아침이다. 단지 다르다면, 양말이나 옷이 달라지고 아침밥이 달라지고, 리모컨이 정확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져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커튼의 결이 흩어져있다.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수건을 전과는 다른 위치에 놓는다. 이를테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남자는 언제나 이 시간에 조깅을 한다. 아이도 조깅을 해야만 한다. 대충 옷가지를 챙겨입고 남자를 따라나서는 아이. 차차는 어디에 있지? 밖은 뿌옇다. 그래서 차차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어젯밤 이후로 차차가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아침의 기운을 가리고 있다. 달이 숨어버렸다고 해마저 지레 자신도 그래야 되는 줄 알고 따라 숨은 모양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끼었다. 짙은 안개가 낀 도로 위를 헤드라이터를 켠 자동차가 간간이 지나간다. 도로가를 달리던 남자는 꽤 오랜 시간을 가서야 집을 향해 방향을 돌려 뛰기 시작한다. 집으로 향한다. 아이도 바지주머니에 양손을 낀 채 하품을 하며 건성으로 따른다. 단지 중간에 위치한 구멍가게에서 참새구이를 먹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괜찮은 정도의 시간 낭비다. 간혹 운이 나쁜 날이면 남자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산다. 그러다가 가끔씩 가게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참새를 통째로 요리하는데 남자는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참새구이를 먹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의 남자가 생각하는 바이다. 참새가 번개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기운에 노릇하게 익어 냄새가 사방으로 퍼질 때면 남자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아이는 지레 겁을 먹는다. 예전에 개고기를 먹다가 체해서 토하던 기억이 아이의 머리를 휘감는다. 부엌에서 커다란 통에 구겨진 채 입을 벌리고 퀭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개의 대가리 그리고 노릇하게 구워져 주둥이를 벌리고 더 이상 눈동자를 굴리지 못한 채 눈을 멍하게 뜨고 있는 참새 대가리.

“오늘, 1등 하려면 영양식을 해야지?”

남자는 아이에게 투박하게 말을 던진 후 잘 익힌 참새 한 마리를 그릇에 덜어 손으로 살점을 한 조각 찢는다. 기름기가 듬뿍 배어 있는 손이 아이의 입에 바짝 다가오면 아이는 입을 벌리고 살덩어리를 받아먹어야 한다. 차차는 어디에 있지? 방에 있을까? 분명히 어젯밤 창문으로 나간 뒤부터 보이지 않았어. 입을 억지로 오물거리는 아이의 머리 속엔 온통 차차 뿐이다.

“그래, 잘했어. 잘했어. 그렇게 먹는 거라고.”

남자가 허허거리며 이성현 파이팅! 이라고 말한다. 운동회가 시작되었을 때도 이성현 파이팅! 이라고 우렁찬 소리가 학부모석에서 울렸다. 늙은 여자와 아이의 여자가 외칠 때도 있었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역시 가장 두드러진다. 무용을 할 때도, 공 던지기를 할 때도. 간혹 어리바리하게 주춤거릴 때면 두 가지 소리가 동시에 날라든다. 하나는 남자의 이성현 파이팅! 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이를 끔찍이도 괴롭히는 녀석의 소리, 저 쪼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 녀석의 비아냥거림은 이어달리기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더욱 노골적이다. 이 쪼다야, 우린 너 때문에 질 거야. 하여튼 지면 넌 알아서 하라고. 나름대로 어른들의 폼을 흉내내려고 하는 모양으로 한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가볍게 흔들면서 눈을 부라리는 녀석은 최대한 위협조로 말하려는 듯, 텔레비전에서 어른들이 할 법한 말투를 본뜨고 있다. 마지막 음절을 파도처럼 위아래로 음높이를 변형시키며, 길게 내빼고 있는 중이다. 멀리서 이성현 파이팅! 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타원형의 라인을 정확히 이등분한 두 지점에 같은 팀 멤버가 하나씩 선다. 경쟁자는 한 라인에 5명이다. 녀석은 반의 첫 번째 주자다. 아이는 마지막 주자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둘은 친하지 않다. 같은 편이지만 어차피 그건 일시적일 뿐이다. 녀석은 아이를 경멸어린 눈으로 뇌까린 후 출발선 상에 섰다. 그가 라인에 서자, 우리 반 아이들은 열광하는 듯한 과장된 포즈를 취한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꼬봉들을 중심으로 해서.

탕!

화약냄새가 풍겨오면서 일제히 함성소리가 들리고 선수들은 급하게 앞으로 내딛는다. 먼지가 일고 열광적인 응원소리가 들린다. 녀석은 앞으로 질주한다. 반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가장 커진다. 다음 선수가 배턴을 이어받는다. 녀석은 으쓱해하며 터벅터벅 걸어서 아이에게 다가온다. 봤지? 으쓱해하며 거만하게 말을 던지는 녀석은 곧이어

“네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리는 줄은 모르겠다만, 쪼다, 새가슴, 실수하면 각오해라.”

라고 말한다. 그는 각오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는 알까. 이런 의문을 품는다 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차례가 돌아오고 있다. 중간에 한 선수가 배턴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이의 반은 3등으로 쳐져 있었다. 아쉬움의 탄성이 들리고, 아이가 라인에 선 채 준비한다. 이성현 파이팅! 아이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늙은 여자, 여자, 그리고 남자. 차차는 없다. 아이는 라인 뒤쪽에서 달려오는 선주자를 바라본다. 오른쪽 손을 뒤로 내밀고 천천히 앞으로 뛰기 시작한다. 이성현 파이팅! 쪼다, 새가슴, 실수하면 각오해라. 드디어 아이가 배턴을 잡았다. 앞으로 힘차게 내딛는다. 두 명의 주자가 아이의 앞에 있다.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끌어올린다. 숨소리가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발 디딤이 세차진다. 배턴이 곡선을 그리고 위아래로 움직인다. 앞에 한 명이 있다. 함성소리는 더욱 커져간다. 얼마 안 남은 곳에 테이프가 펼쳐진다. 누군가 저것을 먼저 끊고 들어갈 것이다. 이성현 파이팅! 쪼다, 새가슴, 실수하면 각오해라. 심장은 더욱 힘차게 펌프질을 한다. 몸 안에서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기운을 쏟아 시선을 테이프에 향한다. 앞에 아직 한 명이 있다. 거리가 좁혀진다. 점점 좁혀진다. 앞의 주자와 숨소리가 하나가 된다. 조금 더 빨라야 해. 그래야 해. 환호성이 들린다. 아이의 반쪽이 아니다. 앞의 주자는 두 손을 치켜들고 승리를 자축한다.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무릎에 손을 얹고 땅바닥을 쳐다본다. 녀석은 온갖 음흉한 음모를 숨긴 듯한 얼굴로 건들거리며 다가와, 어색하게 텔레비전의 탤런트를 흉내내는 듯한 자세로 비죽거린다.

“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쪼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난 실수하지 않았다고. 거친 숨소리에 묻힌 말마디는 소리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의 반은 종합 2위를 한다. 녀석을 계속해서 툴툴대며, 자기가 마지막 주자를 해야 했다고 불평한다. 쪼다, 새가슴이 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난 실수하지 않았다고. 아이는 고개를 수그리고 끝끝내 입을 다문 채 소리를 잠자코 듣는다. 교장의 연설이 끝나고 해산을 알리는 선생들의 말이 덧붙여진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찾으러 운동장 한복판으로 들어온다. 아이도 남자와 여자, 늙은 여자에게 다가간다. 남자는 아이를 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1등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딱딱하게 수고했다는 말을 던지고는 운동장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녀석이다.

“저 녀석이 괴롭히니?”

의외의 말에 당황한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한다.

“……, 아, 예.”

“이기고 와.”

“예?”

“이기란 말이야. 사내대장부가 비겁하면 안돼. 이기고 와.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저녁에 각오해라.”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볼래?”

“이기고 가야 해.”

녀석과 녀석의 꼬봉들은 키득거린다.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반응이다.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또 말끝 흐린다. 이 나약한 자식아. 너 같은 놈은 괜히 괴롭히고 싶어져.”

녀석은 아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여기는 네깐 녀석을 때려눕히기에는 너무 멋진 장소란 말이야. 알간?”

하기야 씨름장은 정식으로 싸움을 하는 곳이니,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되는 상대끼리는 올 수도 없는 자리이긴 하다. 그 곳에 아이는 절박한 심정을 녀석을 불려 들였다. 아마도 녀석은 이런 상황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아이가 화장실 같은데서 무릎 꿇고 빌 줄 알았겠지. 그런데 결투라니. 녀석은 어이없다는 듯이 계속 킥킥대면서 딴에는 멋있는 줄 알고 목소리를 내리깐다. 그래봤자 어색할 뿐이었지만.

“사과해, 그럼 봐줄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생각한다. 차차가 싫어할 거야. 싸우는 걸 알면……. 지금 차차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방안에서 조용히 앉아있겠지. 때로는 문 밖의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을 수도……. 그래 봤자 늘 들려올 남자와 여자의 소리 정도가 대부분일 테지만……. 이상한 점은 같은 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면서도 여자와 남자는 차차, 너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네가 언제부터 아이의 곁에 있었는지 모른다. 너의 얼굴도, 성격도, 목소리도, 전체적인 느낌도 확연하게 다가오는 듯하다가 이내 신기루가 된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자꾸만 네가 빨강망토를 입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며 요술을 부리는 조그마한 아가씨라고 생각하는 건 왜일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네가 잘못한 거야, 알간? 쪼다야.”

아이가 생각하는 동안 무언가 열심히 주절거리던 녀석은 이렇게 나름대로 멋지게 결론을 마무리했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동의를 요구한다.

“응? 그런데 알간이 뭐야?”

녀석과 녀석의 꼬봉들은 자지러진다.

“어이구, 이 등신. 것두 모르냐? 알았냐고, 알았냐는 뜻이지.”

어디서 배워왔는지 기이한 말들을 마구 뱉어내면서 꼬봉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녀석은 이번에도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를 향해 싸울 가치도 없다는 뜻의 손사래를 내저으며 씨름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안돼. 사과해, 아니면 내가 이겨야 해.”

너보다 아빠가 더 무섭다고……. 이겨야 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집어내며 아이는 주먹을 꽉 쥔다. 녀석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녀석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에게 주먹이 날린다. 피할 새도 없이 그것은 아이의 얼굴을 정확히 가격했다. 순간 밀려온 충격이 온 몸을 흔들었다. 녀석은 심하게 투덜거리며 상소리를 해댄다.

“너 똘아이 아냐?”

녀석의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몸에 먼지라도 묻은 양 계속해서 옷을 털며 무심히 말한다. 아이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잽싸게 녀석의 턱을 향해 달려든다. 이마로 정확하게 녀석의 턱을 가격한다.

“어, 이것 봐라.”

턱을 움켜쥐고 의외의 반격에 놀라고 있던 녀석은 약이 바짝 올랐는지 눈을 부라리며 각오하라고 소리치더니 주먹을 날리려고 한다. 아이는 틈을 주지 않고 온 몸으로 녀석의 허리를 움켜쥐고 힘껏 밀어댄다. 순간 녀석은 중심을 잃고 나뒹군다. 모래가 사방으로 튄다. 아이도 그와 한 몸인 것처럼 나뒹군다. 한동안 모래가 튀고 녀석과 아이는 정신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녀석의 꼬봉들은 녀석을 응원하다가 어느새 대못이 벽에 박힌 것처럼 뻣뻣하게 서서 씨름장을 응시한다. 아이는 녀석을 아래에 깔아두고 미친 듯이 그의 얼굴을 가격한다. 어느새 뺨을 타고 흐르는 코피가 먼지 묻은 녀석의 얼굴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녀석이. 그의 꼬봉들은 그들의 대장이 초라하게 우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너보다 아빠가 더 무서워. 이겨야 해. ……, 미안해.


“그래, 잘했어. 잘했어.”

남자가 허허거리며 웃는다.

“주먹을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되지만 결코 비굴해서도 안 되는 거야. 2등을 한 건 잘못이지만, 그건 용감했어.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우리 아들 아주 장하다고, 장해.”

남자는 기분이 좋을 때면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이를 바라보면서 허허 웃으며 그런 버릇을 드러내고 있다.

“애한테 참 좋은 거 가르치네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9시 12분이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있다. 창문을 경계로 파리의 날개 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모기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날은 이미 충분히 어두워졌다. 바퀴벌레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저녁상은 이미 치워지고 있다. 텔레비전의 소리는 높아진다. 평소대로라면 정확한 발음을 지닌 여자나 남자가 네모난 수상기 속에서 말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늙은 여자가 틀어놓은 채널에 등장하는 예쁜 여자와 잘 생긴 남자가 티격태격하는 따위 말이다. 그건 부엌에 있는 식기들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고, 냉장고에 음식이 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용히 일어서 아이는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어느 정도 줄어든다. 바퀴벌레는 어지럽게 원을 그린다. 파리는 불안하게 날갯짓을 한다. 차차는……. 바퀴벌레가 가느다란 다리로 바쁘게 소리낸다. 모기가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날개를 흔들어댄다. 바람이 분다. 커튼이 조용히 흔들린다. 요란하게 바퀴벌레가 울고 풀벌레가 운다. 바람이 끊임없이 소리내고 모기가 처절하게 저항한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바퀴벌레의 다리가 정신없이 소리낸다.

그래, 그래, 용케도 덫에 걸리지 않았구나. 어디서 왔니? 너는 헤매고 있어. 어디로 가니?

차차는……, 방 어디에도 없다. 곧 나타나겠지. 문을 닫았으니까. 곧 나타날 거야.

아이는 차차를 기다린다. 기다린다고 해봤자 가만히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소리를 수집하는 것뿐이지만……. 차차가 없는 방안의 소리는 차다. 소리가 거의 일정한 리듬으로 파도처럼 넘실댄다. 바람을 타고 날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바람에 실리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다니는 것들이 툭툭 음향을 만든다. 소리가 차다. 아파트 바깥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조용히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물결소리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아이의 몸속을 빠르게 도는 피가 흰자를 툭툭 치며 소리낸다. 무서워하지 마.

이때 이질적인 소리가 난다. 가끔씩 이런 유형의 소리가 흔한 소리와 함께 들려오기도 하는데 지금 그보다도 더 이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아니, 굉장히 익숙한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때에 들린다. 차차, 너의 소리다. 아이는 고개를 든다. 책상에 웅크린 채 아이를 웃으면서 바라보는 너는 분명 차차다. 날아오르듯이 튀어 올라 아이에 앞에 서는 너는 아이에게 너의 조그마한 하얀 손을 내민다.

‘무서워하지 마.’

온 몸에 피가 빠르게 돈다. 목 주위가 긴장되었다. 핏줄기가 솟는다. 얼굴이 빨개진다. 흰자가 충혈 되고 있다.

‘네 잘못이 아냐.’

차차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이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물결소리가 쉴 새 없이 아이를 치고 지나간다. 바퀴벌레소리가 어지럽게 들린다. 파리의 날갯짓도, 모기의 그것도…….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니?'

아이의 아파트 근처에는 강이 있을 뿐 바다는 없다. 아이는 그것을 안다.

'바다는 여기서 멀어.'

불협화음.

“성현아, 잠깐 나와 봐라.”

남자의 굵직한 소리가 방으로 스며든다. 차차의 손을 잡고 일어선 아이는 잠시 소리를 잡는다. 다시 차차를 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무서워하지 마.’

바람은 공간을 자유로이 흐르며 멀리까지 갔다가 때로는 다시 흘러온다. 주변에 풀이 촘촘하다. 바람에 나부낀다. 풀이든, 차차와 아이의 머리카락이든, 그들의 웃음소리든. 먼 곳으로 귀를 쫑긋하면 파도소리가 선명하다. 바다에는 물결이 끊임없는 무늬를 만든다. 아이와 차차, 너희는 바다위로 불쑥 솟아오른 절벽에 있다. 하늘을 제법 청명하다. 아니, 티끌하나 없는 맑은 날씨다. 구름은 하얗다. 절벽까지 와 닿은 초원은 흔한 표현으로 드넓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이와 차차는 손을 꼭 붙잡고 절벽 근처를 뛰어다닌다. 공기가 깨끗하다. 바퀴벌레도, 파리도, 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도 잠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접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리라. 바람의 파동은 적절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그것도, 역시 적절하다.

“성현아!”

불협화음. 기묘한 총성은 아이와 차차의 손에 정확히 명중한다. 이윽고 손바닥에서 화약 냄새와 함께 파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아이는 구멍이 난 손을 움켜쥐고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나뒹군다. 차차, 너는 이것을 지켜보며 까르르 웃는다. 심통이 난 아이는 차차를 돌아보며 투덜댄다.

‘뭐가 그렇게 우습니?’

‘이것 좀 봐.’

아이의 말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고 차차는 신기한 듯 손을 앞으로 쭉 뻗고 손등에 뚫린 구멍을 바다 쪽으로 향해 내민다.

'아이, 바다가 어쩜 이렇게 똥그라니?'

아이는 차차가 하는 자세를 똑같이 따라한다.

'정말! 바다가 왜 이렇게 똥그랗지?'(*조향의 <에피소드> 변용)

너희는 신기해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파도소리가 자꾸만 가까워진다. 파도소리는 서서히 바다의 내부로, 내부로 침잠하여 새로운 소리로 변해간다. 이쯤에서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갈매기 서너 마리쯤은 날아다니는 걸로 하자. 아마도 기묘한 총성에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갈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갈매기를 없는 것으로 하고, 그도 부족하다면 절벽도 없애도록 하자. 하얀 백사장에 간간이 흘러 들어온 조개껍질의 파편이 묻혀있고, 한가로이 게들이 노니는 근처 등대에서 아이와 차차가 있었다고 해도 좋다. 나무 한그루가 뜨거운 햇살아래 있어도 좋고, 전망 좋은 거대한 바위에서 아이와 차차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해도 좋다.

단, 당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아이는 차차를 따라 바다로 몸을 던진다. 손바닥 구멍으로 바다를 바라보던 차차가 바다 속으로 풀쩍 뛰어내리므로.

급한 속도로 바다를 향해 치닫는, 너, 희.

'어디로 가니?'

'네 마음속으로.'

'언제 올 건데?'

'…….'

'오지 않을 거니?'

'아마도.'

풍, 덩.

작은 소리.

풍, 덩.

그들이 온 몸을 던져도,

그들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작다.

사방의 익숙한 소리가 사라지고 파란 곳의 새로운 것들은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낸다. 차차, 너는 자꾸 아래쪽으로, 아래쪽으로 잠수한다.

‘거기로 가지 마, 나는 못 간단 말이야. 정말로 가려는 거니?’

숨이 차오른다. 심장의 박동소리는 빨라진다. 물결은 빠르게 속도로 아이의 몸을 치고 지나간다. 온 몸에 피가 빠르게 돈다. 목 주위가 긴장되었다. 핏줄기가 솟는다. 얼굴이 빨개진다. 흰자가 충혈된다.

‘난……, 혼……, 자란……, 말……, ……, 야.’

차차의 말인지 아이의 생각인지 모를 소리가 분명히 차차와 아이 사이에서 맴돈 듯하다. 무……, 서……, 워……, 하……, 지……, 마……, 라고.

숨이 자꾸 막혀온다. 아이는 허둥대며 위로, 위로 오르려 했으나, 엉키는 기억을 어쩔 수 없다. 빛나는 진홍과 금빛의 깃털, 아이는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것을 본다. 처음 들어보는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소리가 물결처럼 다가와 아이를 감싼다. 바다의 깊은 아래 어딘가부터 심하게 요동치듯 일어나는 소요는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빛을 만들어 따뜻한 깃털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화음을 이루며……, 차고 오른다. 날아오른다. 무서워하지 마. 튀어 오르는 물결에서 풍기는 향기는 마치 영원불멸한다는 새의 깃털 같았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지점까지 뻗어나가는 소리는 소라껍데기 안에서 울리는, 아니, 언제나 아이를 따뜻하게 해주었던 기억들에 담겨진 소리, 아니, 그보다 더 구체적인, 그러니까 차차의 웃음소리다. 차고 오른다. 날아오른다. 무서워하지 마. 따뜻한 소리가 아이를 감싼다. 거대한 힘은 아이를 부드럽게 끌어올려 어디론가 지치지도 않고 날아간다. 그 힘이라는 것이 서서히 기력을 다 할 즈음에 적막한 바다에 떠있는 섬에 갇혀버린 아이. 이것을 깨달았을 때 주변에 익숙한 것이라곤 없다.

‘차차야, 차차야, 어디에 있니?’

정신을 추슬러 차차를 불러보았지만 너무나 먼 곳까지 와버린 뒤다.

‘차차! 대답 좀 해봐, 대답을 하란 말이야.’

소리가 울릴 뿐이다.

“이 녀석 어디 갔지?”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

“성현아, 이성현.”

아이는 고개를 수그리고 훌쩍인다.

'안녕, 차차.'

차차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꾸 눈물을 훔친다. 바다 위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섬, 아무도 살지 않는 섬. 그 곳에 홀로 선 아이는 자꾸만 소리를 낸다. 울지마, 울지마. 너는 이성현이니까……. 그래, 그래. 나는 이성현이니까, 이성현.

소리는 바다와 하늘과 섬 사이를 횡행하며 메아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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