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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Mar 04. 2022

배에서 내려야 세상을 밟을 수 있다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생존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 있을 시기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두 땅 사이를 잇는 거대한 강, 유일하게 두 땅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배 한 척, 그리고 그 배를 움직이는 두 명의 뱃사공, 아이는 그 뱃사공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잠에 드는 시간을 제외하곤 전부 뱃머리에 서서 노를 저어야 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아이는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배와 함께였다. 


   아이가 자라 처음 노를 잡은 건 6살이 되었을 즈음, 그 무렵 아이의 부모는 마을에 장을 보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바람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죽음의 개념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배를 타러 온 사람에게 부모의 소식을 건네 듣곤 달이 하늘을 꼬박 가로지를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 뒤로 아이는 두려움에 배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매일 노질만을 했다. 


   그렇게 26년, 아이는 작은 손에 흉이 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노를 저었고 시간이 무색해라 곧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성인이 되었다. 뱃값을 낼 삯이 없어 대신 건넨 빵조각과 과일 몇 알로 근근이 심장이 뛰는 걸 유지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만이 둥둥 떠다니는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갔다.


   그런 뱃사공에게도 삶의 낙은 존재했다. 하루에 적으면 한 명, 많으면 서너 무리의 사람들까지 배에 태워야 했기에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결혼한 집안이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부터 지난 삶을 후회해 강을 건너는 몇 시간 동안 눈물을 훔치는 사람까지 별의별 사람을 태우며 그는 자신의 부모가 살아생전 연명하던 곳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그려낼 수 있었다. 


   자신의 시간에 대해 소리치는 사람들, 개중에는 쉽게 보기 힘든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장군을 태운 적이 있다. 그는 어떻게 그들의 군대가 승리할 수 있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자랑스러운 마음을 무척이나 인정받고 싶어 했다. 또 며칠 뒤에는 검은 천조각을 푹 뒤집어쓰고 아무 말 없이 배에 올라탄 사람을 태웠는데 그는 배가 출발하고 한 시간쯤 지나자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쳤다고 털어놓았다. 


   극단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뱃사공은 단 한 차례도 충격받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세상에 제대로 나가본 적 없는 그였기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뱃머리에 앉아 승객들이 침을 튀겨가며 하는 말에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다가 반대쪽 뭍에 도착하면 정확하게 같은 값의 뱃삯을 요구할 뿐이었다. 


   가끔 남의 질타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과 한 배에 타게 된 승객들이 뱃사공에게 불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을 배에 태우냐고, 왜 저런 인간에게 호의를 베푸느냐고 말이다. 뱃사공은 이해하지 못했다. 호의가 무엇인지, 저 사람과 이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조금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소리치는 승객의 눈을 한참 동안 지긋이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돌리고 노를 젓곤 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그는 시간의 존재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승객 중에는 강에 빠져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난간이 없는 배 끄트머리에 다리를 내놓고 온갖 여유로운 척을 하다가 이내 삐끗하고 강물로 떨어지는 경우인데 뱃사공은 무심하게 노를 쭉 뻗어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타고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왜 그런 무식한 행동을 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싸우다가 친구를 미는 경우, 얕은 줄 알고 무턱대고 헤엄치러 들어갔다가 발이 닿지 않자 당황하며 도와달라고 손을 휘젓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어느 화창한 정오, 뱃사공은 손님 한 명을 강 건너편에 내려주고 다시 노를 저어 반대편으로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었다. 왠지 모를 고요함. 바람 소리도 숨죽이며 달리는 듯 세상이 전부 침묵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루 종일 손님도 한 명밖에 없었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평선 너머로 해는 떨어졌고 때에 맞춰 붉게 쏟아지는 빛을 받아 모든 풀과 강물이 저마다의 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떨림 속에서 배를 운전하던 그는 저 멀리 수면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빛을 발견했다. 저도 모르게 노를 배 안으로 끌어다 놓고 낮게 누워 그 빛에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빛은 분명 강물에 햇빛이 비쳐 생긴 건 아니었다. 빛은 생명체가 꿈틀대듯 두껍고 투박하게 물 위에서 춤을 췄고 매혹적인 자태에 뱃사공의 눈망울은 이미 하염없이 짙어졌다. 그는 무릎을 조금 세운 채로 허리를 굽혀 빛을 향해 손을 쭉 뻗었지만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빛은 닿을 듯 말 듯 거리를 유지하며 배 주위를 맴돌았다. 오기가 생긴 그는 온 힘을 다해 한번 더 손을 뻗었고 제대로 조절을 못한 탓에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첨벙. 다리를 세차게 저으며 배에 올라타려 했지만 뱃머리는 생각보다 높았다. 발로 물을 수십번을 걷어찼지만 택도 없었다. 물이 턱까지 차올라 슬그머니 아랫입술을 타고 들어올 때쯤 그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고개를 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강물 안으로 본 검은 깊이에 처음 경험하는 혼란이 정신을 지배하는 걸 느꼈다. 소름이 끼쳤다.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배에 올라타기 위해 아등바등거렸고 배의 갑판에 부딪혀 손톱이 전부 부서졌다. 한참을 해가 지는 강물과 씨름을 하다 삐져나온 정박줄을 부여잡고 간신히 올라온 그는 가득 삼켜버린 공포를 한 움큼 토해내고 그대로 쓰러져 숨을 내쉬었다. 


   생존의 희열을 느낀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엔 지금껏 그가 구해주었던 승객들이 떠올랐다. 사람을 해한 범죄자부터 나라를 구한 왕족, 가족을 먹이기 위해 달려가는 어머니와 고향길에 오른 누군가의 아이. 그때 그는 신념과 확신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사소한 사실에 가닿았다.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고민에 손을 내민 것이다. 고개를 숙인 강물 안에서 바라본 검은 깊이가 주었던 공포심을 이겨내고 그는 세상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 자신의 분절에 대해서.


    '나를 구해줄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구나. 하긴, 난 세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아는 사람도, 아는 진실도, 아는 규칙도 없으니 강물에 빠지면 홀로 죽는 게 당연하지.' 


   그는 한평생을 세상을 연결해주는 삶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세상의 피부와 하나의 결을 맞댄 적이 없었던 것이다.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계속해서 흐르고 또 흘렀다. 지금까지의 생을 후회하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일찍 여읜 부모를 그리워하는 눈물이었을까. 살아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혼에 담긴 모든 눈물을 쏟아내는 사이 배는 뭍에 다다랐다. 그는 다 해진 옷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조촐한 하나의 생이 탄생한 이래 처음으로 세상이 땅이라 부르는 땅에 발을 내디뎠다. 움푹 들어가는 느낌이 당혹스러웠지만 그에게 그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뭍에 박힌 말뚝, 자신을 만들어낸 이들의 소멸 이후 하루도 건드리지 않았던 말뚝에 정박줄을 단단히 동여매고 그는 우두커니 서서 높게 솟은 풀 사이로 좁게 난 흙길을 바라보았다. 


이미 해가 지고 달빛에 숨을 쉬는 대지 위에서 그는 한참을 세상을 바라보았다. 


   "기실 나는 한 번도 살아있지 못했던 거야. 단 한순간도. 죽음의 눈꺼풀 위에서 춤을 추는 살가죽일 뿐이었지."


   잠시 숨을 고르더니 그는 말했다. 


   "그래."


   낮게 웅얼거린 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데리고 온 이들이 걸어간 그 길을 따라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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