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자. 최근 일주일 동안, 혹은 근 몇 달간 내가 원해왔던 건 무엇이었나?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아마 대부분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과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세상에 대한 기여도 등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행복은 본질적으로 굉장히 동일한 가치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행복으로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선택과 결단을 통해 내가 목표하는 그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현재 나 사이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이 모든 길 위에서 지금부터 집중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미래의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행복을 위한 선택들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많은 경우에 바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서도 외적으로는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때로는 그것에 해로운 행동들을 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는 스스로를 한탄하고,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나태의 벽, 정신과 실제 사이의 혼돈을 해소하려면 먼저 이러한 현상들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이유들에 대해서 나열하고 설명할 예정이다. 자기의 케이스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내용과 관련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바란다. 이후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지하기 위해 나 자신은 평소에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나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해보겠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삶을 살면서 최근에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며,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어느 한순간에 나의 정신이 내뱉는 말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와 민감한 주제로 대화를 하던 도중 말을 끊기 위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멈추고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할 때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으나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스스로의 생각을 감출 때도,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고 존중하지 않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선점해 하나의 역할을 수행해나가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 내에서의 위계질서가 뚜렷하게 잡혀있는 우리 문화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활동을 위해 오로지 원만환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를 기반으로 자신의 의견을 희생하고 남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때의 문제점은 단순히 나의 의견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정신이 거부하는 어떠한 행동을 외적으로 동의하는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됐을 때에는 내가 상대하는 타인에게 무의식 중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적대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데 있다. 나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그리고 그것들을 변명하기 위해 상대가 나의 의견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는 상상을 하며 그에게 분노를 느끼고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깊은 상처가 된다.
이처럼 환경과 사람은 나의 자아가 내뱉는 말들에 지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부분들까지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내가 하는 말이 환경이나, 내 앞에 놓인 사람, 혹은 과거의 경험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 본래의 생각과는 다른 형태로 입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에 놓여있을 때 겪었던 일이나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 보면서 어디에서 자신의 솔직함이 드러났어야 하는지, 그때 나의 기분은 어땠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적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스스로의 목표가 꾸며진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라.
이제 막 무언가를 꿈꾸며 나아가거나 학습하는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마다 꾸준히 계획서에 하루 일과를 적어놓는 사람들, 나는 내년에 특정 무언가를 이루겠다 다짐하는 사람들 또한 마주하는 오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을 일찍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실제 자신의 생각보다 더 얕은 위치에서 자신의 의견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검토할 여력이 생기기도 전에 결정을 내려 마치 그것이 나의 온전한 결정인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짜 맞춘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꼭 다이어트를 해야지.” “내년에는 자격증을 딸 거야.”라고 했던 작년의 말들이 기억나는가?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 그 목표들은 얼마큼 이루어졌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들을 진짜 원하지 않았거나 (누군가의 암묵적인 강요에 의해서 스스로에게 압박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막상 그것을 이루려고 숙제를 앞에 펴놓으니 하기 싫은 것들이 가득해서 포기하게 된 것일 거다. 이렇게 장기적, 중장기적으로 내가 목표한 바들부터 진정 내가 원하는 것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상태에서 어떻게 당장 내일의 내가 목표하고자 하는 바, 지금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모든 큰 그림에서 내가 설정해놓은 원하지 않는 목표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쓰다 보면 하루의 일과마저 꼬이고 이것들이 반복되면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조차 잊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해결책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많은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대게 목표를 세우고자 할 때 종이에 생각이 날 때까지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들을 적는다. 그러나 이렇게 기억도 못할 목표들을 나열해놓는 것은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에서 많게는 두 개, 지금 당장의 나의 행동들이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고 나아가라.
두 번째는 단기적인 목표부터 세워 성취하는 기분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목표라고 하면 몇 달 몇 년에 걸쳐 이룰 큰 성공에 대해서 상상하곤 한다. 이러한 상상들이 나를 끌고 갈 원동력이 되는 한편 누군가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생각을 흘러들게 할 수도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보상에 대한 개념이 스스로에게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해도 진전이 없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가능성이 더 깊게 보이고,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결론들을 도피하기 위해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에 손을 올려놓게 된다. 그러나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자기 계발과 목표 달성은 사후성을 강하게 띤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성장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과 얘기할 때 한층 발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크게 빛을 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실행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목표는 당장에 결과를 볼 수 없으니 이번 주, 짧게는 오늘 내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뤄내는 것을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보상에 대한 감각과 함께 무엇을 해냈다는 기분에서 비롯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강해져 사회에 나가 사람을 대할 때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부분과 원하는 지점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확실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성공들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자신의 힘으로 성취해냈다는 대단한 사실을 남들과 비교했을 때 별 거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그렇게 넘기는 경우들이 발생하는 데 이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데 제격이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확실한 보상을 통해 나의 정신이 마땅히 느껴도 될 기분을 느끼도록 해줘라.
남들은 생각보다 당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을 대할 때 말을 조심하는 것은 정말 좋은 습관이지만 조심을 넘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 자체를 묵인하는 것은 굉장히 건강하지 못한 습관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숨기는 것이 생활화되면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애초부터 무엇을 원했는지, 어떠한 논점이 생겼을 때 자신의 의견을 떠올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들을 제때제때 분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 이걸 읽고 어떤 걸 행하고자 마음을 다잡은 생각들조차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것이 이 모든 과정의 끝이며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생각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층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 밑에는 뭐가 있을지, 무엇으로 인해 형성됐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해 온 경험들이 지금의 가치관과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말로 풀어낼 수 있게 된다면 즉각적으로 상태를 판단하는 데 객관성을 훨씬 더 많이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 타인의 힘을 더 많이 사용하던 시절과 그것들을 넘어 주체로서 세상에 일어서게 되는 타이밍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그러한 경험들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이러한 과거의 이력들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하지 못함과 불안함 등의 이유를 가까운 시간들에서 찾고자 한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모든 시간을. 나의 생각이 생각이 아니었던 때로,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나의 정신에 큰 변화를 안겨주었던 사건들이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 지금 내가 형성되게 된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 나의 선택들이 불확실한 데에도 분명 이유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만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거짓된 우리이기 때문에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눈을 감고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