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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Nov 16. 2021

우리의 시선, 월식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

사람의 시선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지지만

곧 본성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잘해줘도

눈빛에 다친다.


2018년 어느 날

꽤나 지쳐있던 나의 글  





담백하고 거짓 없는 순수했던 때 생겨난 글이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 시를 썼던 정확한 날짜와 시간, 이유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의 내가 느끼던 감정들은 아직도 내 뼈 마디마디에 서려 몸을 울린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치유받지 못한 감정들, 그럼에도 사랑하고 이어지고 싶어 했던 욕구들이 가득하던 어느 날 태어난 글일 것이다.


믿었던 이가 떠나가고, 내가 사랑했던 이가 사실 단 한순간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들이 줄을 이었었다. 정신의 문제였고 세상을 향한 외침의 문제였다. 지금의 나였더라면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을 만한 일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졌는지. 중요하지 않는 관계들 속 스쳐 지나가며 생기는 생채기가 나에게는 세상이 침몰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었던 나를 구해주기는 커녕 손을 짓밟아 떨어트리려 했던 그들의 욕심과 의지는 나에게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는 제 때 아물지 못해 지금까지도 많은 여운을 남기곤 한다. 월식과 같은 인간의 감정, 순간에 희열을 느끼고 순간에 자신의 치욕스러움을 내뿜는 감정, 이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긴 빛의 순간들은 꽤나 날카롭게 이리저리 흩날렸다.


아팠겠구나. 많이 아팠겠구나.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 누군가의 선의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흘려 길바닥에 쓰러질 만큼 그대는 아팠겠구나. 감사하다. 버텨주어 감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주어 감사하다. 세상의 온갖 악함 가운데 손을 내밀어 준 그들의 온기에, 믿음의 탑이 무너진 벌거벗은 나의 어깨에 요를 덮어준 그들의 애틋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의 내가 추락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때의 내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절망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욕구와 행동들이 되려 나에게는 바닥에 칠해진 기름이 되고 올라올 만하면 미끄러지기를 반복했지만 그러면서 내 두 다리에는 단단하게 근육이 들러붙었다. 그때 희미하게 보이던 빛을 이제는 온기를 느낄 만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칠흑같이 까맣던 고통은 이제 점차 흐려져 잡히지 않을 만큼 멀어져 갔다.


몸을 웅크린 것은 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함이었다. 추락의 경험은 나에게 추락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 줄 용기와 자긍심을 주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절벽 끝에 발을 딛고 서도 가뿐히 숨을 쉴 수 있다.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아픔이었기에. 이제 누구를 만나도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어떤 말로 발길질을 당해도 그 짓눌림 아래서 생명의 꽃을 틔울 수 있게 됐다.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고 있는 고통의 시간들이 훗날 그대를 살릴 날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이 모든 순간들이 상처가 아문 뒤 새로운 치료제가 되어 재생하는 진물을 말끔히 닦아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깊게 쌓인 늪을 헤쳐나가고 있다. 다시 없을 오늘은 가장 젊을 내일의 거름이 되어준다. 지금의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면 밤하늘의 별에 대고 무식하게 소리를 질러 보자. 내 소리가 닿지 않을 누군가에게 내가 품은 기억들을 내던져보자. 혹 누군가 받아주지 않더라도, 당신의 외침은 어둠 구석에 자리를 마련해 머지않은 미래에 밝은 빛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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