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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Nov 17. 2021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더 홀가분하다

내가 가야했던 길을 가기로 선택한 순간의 성장에 대하여

외국에서 백신을 맞은 탓에 한국에 입국한 후에는 주변 보건소에 들러  증명서와 신분증을 보여주며 백신 접종 등록을 해야 했다. 들어온  주차부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뤄두고만 있었다. 지인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낼 때도,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어딘가를 방문할 때도  제약이 없이 모든  순조로웠기 때문에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사실은 운전면허가 없어 보건소까지 대중교통으로  시간을 가야 하는 나에게 꽤나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이전에 한 번 운이 좋게 주변에 갈 일이 있어 방문했다가 운영시간이 아니라는 말을 전달받고 집에 돌아오며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사실 허탈이라기보다는 한 번 더 이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냥 귀찮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 돌아오면서 '내일은 꼭 일어나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 들러야지' 생각을 했다. 이후 매일 한 번쯤은 이 생각으로 순간의 시간을 보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다.


지난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덕에 집에 돌아와 아주 깊게 잠을 청할 수 있었고 숙면에서 깨어난 내가 처음 본 시간은 11시 34분이었다. 이미 많은 아침 시간이 나의 잠에 흡수되어버렸지만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계획표를 작성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이전에 읽었던 자료들을 정리하며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집 앞마당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깥공기를 마시는 순간 이 공기를 뚫고 내가 해야 할 임무가 떠올랐다. 보건소에 방문하는 것. 사실 함께 사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위해 나왔지만 갑자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강아지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뒤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기 위해 자전거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집어 든 이유는 집에서 25분이나 걸어야 하는 버스 정류장까지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다다를 즈음부터 줄곧 10킬로가 떨어진 보건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짧은 시간에 수백 번은 고민을 한 것 같다. 버스를 타야 할지, 자전거를 타야 할지. 버스는 너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기다림의 시간과 강제성이 수반되었고, 자전거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 게 분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냉큼 버스를 집어타고 이동했겠지만, 오늘따라 잔뜩 멋 부린 나무들과 멀끔하게 세수한 태양빛이 나를 꼬드겼다. 결국 나는 곧 나를 데리러 올 버스를 뒤로 하고 자전거로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는 굉장히 힘들었다. 탄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허벅지는 벌써부터 지쳐 고함을 치고 있었고, 겨울을 코 앞에 두고 있음에도 이마에서는 땀이 줄기차게 흘렀다. 사람들을 쏜살같이 지나치며 바람을 느끼는 나는 자유와 고통을 동시에 만끽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버스를 타야 할 것만 같은 이 유혹, 새롭게 선택한 도전의 끝을 맺자는 이성의 단호함, 이 둘은 보건소에 도착하는 내내 내 정신을 지배하고 전쟁을 치렀다.


그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 순식간에 보건소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잠그기 위해 걸어서 이동하며 내 숨이 얼마나 가쁘게 뛰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동자에서 심장 뛰는 게 울릴 정도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몸이 편안함에 안주했었다는 걸 보여주는 생동감이었다. 도전과 선택의 미학이 없이 꽤나 잔잔하게 이어져 온 틀을 깨는 경험은 작지만 그 자체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살아있는 기분, 매일 조금씩 한 자리에서 빨래 마르듯 말라간 나의 육체와 정신이 비라도 맞은 듯 생생하게 날뛰고 있었다.


백신 접종 등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는 출발했을 때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용기가 생겼다. 이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차들과 내가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시간이 내가 듣는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숨이 가쁜 와중에도 절로 노래가 나왔다. 사람들이 왜 저러나 하고 쳐다봤지만 그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 주저하고 정체되어 있던 나의 몸이 내지르는 환호성은 존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덩달아 신이 난 나의 몸은 고통을 잊고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그 감정이 사무치게 흘러들어온 이후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신없던 여정을 마치고 동생과 함께 아까 약속했던 산책까지 다녀온 뒤에야 집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미소는 지어졌다.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물을 마시며 느꼈다. 살아있다고. 모든 것을 씻어내줄 것만 같은 차가움에 몸을 맡기고 나니 피부에는 윤기가 흘렀고 눈동자에는 생명의 힘이 가득 들어찼다. 다시금 살아있게 해 준 시간들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기쁜 마음으로 새 감정들을 잔뜩 끌어안아 내 터전 가운데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그 흐뭇함이 사라지기 전에 노트북을 열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절망스러웠다.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훨씬 편하고 안락한 길이 있는데 왜 결과도 과정도, 그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사고들도 전혀 알 수 없는 모험과 손을 잡기를 택했는지. 그러나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그간의 땀과 눈물을 찬찬히 관찰하고 있으면 그런 감정들은 단번에 씻겨나간다. 오히려 무지몽매했던 지난날의 내가 그때의 시간을 고집하여 반복했다면 지금 어떤 결과 속에 살아가고 있었을지, 그 삶이 내 몸에 어떤 응어리가 되어 나의 숨을 조금씩 거두어갔을지 생각해보게 되며 감사한 마음을 피우게 된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여정에서 우리는 삶을 배우고 우리에 대해 배운다. 가본 적 없는 길이 두렵고 무서운 것은 당연하다. 안전, 평안, 나에게 평화의 감정을 심어주는 이 단어들은 모두 지금 내가 가진 삶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간주한 이 평화가 때로는 나의 생각조차도 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경험들이 주저하기 시작하는 순간 두려움을 가로챈다는 명목 하에 편안함은 잔뜩 멋을 부리고 그 위에 자리를 틀어 앉는다. 평화를 꾸며주는 단어들은 일상의 밖, 저 넓은 세상의 들판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다. 허허벌판이기에 아득한 지평선을 마주하고 달리는 일이 힘에 부치고 떨릴 것이다. 그러나 인내해야 한다. 하나 둘 숨겨진 감정들을 찾아 내 주머니에 담아내기 시작하면 그제야 잊고 있었던 동심의 용기, 본성의 순수함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것이다.


외침을 무시하려 노력했던 지난 과거가 있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돌이켜볼 만큼의 순간들을 경험해야 한다. 내가 꾹꾹 눌러 담아온 내가 원하던 모든 기억들이 차츰 빛에 익숙해져 다시금 부드럽게 내 정신을 유영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걷고, 말을 걸어야 한다. 발걸음들이 세상에 흔적을 남겨 나를 가둬두었던 시간들이 차츰 흐려질 때쯤 새롭게 적힌 기억들이 빛을 발해 나의 앞길을 힘차게 응원해줄 것이다. 지나쳐온 빌딩, 사람들, 풀과 숨소리가 가득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더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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