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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Dec 08. 2021

달의 노래

달의 노래


아무리 뚫어져라

밤하늘을 들춰봐도

보이는 건 밝게 웃는 미소인지라

그대의 그림자에 사는

어두운 그을림은 보질 못했나 보다


매일같이 올라와

창틀 사이로 인사를 건네고

내일이면 다시 조용히 사라져

침묵을 지켜주는 천사의 모습인지라

그 날개를 매달은 어깨의 짐을

내가 느끼지 못했나 보다


아직 몇 걸음 걷지 못한 바다지만

자그마한 너와 커다란 나의 거리는

닿을 수 없는 간격이 무색해라

매일같이 친구처럼 지내왔었지


단 한 번도

환한 얼굴 뒤에 웅크린

절망 섞인 외침을 보이질 않아

밝음이 당연해라

그게 네가 가진 전부라

그렇게 착각했었지


깎여나가고

가려지고

때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단 한 번도 소리치지 않고

평화롭게 침묵을 지킨

너의 그 모든 의지가

세상이 평가한 반쪽짜리 얼굴보다

훨씬 값지고 기대된다는 것


노래해라

들리지 않겠지만

노래해라


너의 침묵이

작게나마 가까워지고자 하는

창틀 위 걸터앉은 나의 손끝에

축복처럼 내려와 닿을 수 있게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숲을 거닐던 중에도, 하늘을 날던 도중에도 자꾸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꽤나 거슬렸지만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주파수에 적응이 되었는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배경음악으로 제격인 것처럼 느껴질 지경까지 다다르게 됐다. 보폭의 크기나 날갯짓의 각도 등 모든 것들이 그 목소리와 어울리는지를 판가름하여 스스로를 평가하는 행색이 되었고, 나만의 자연스럽던 움직임은 점차 내가 아닌 부자연스러운 무언가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같은 박자에 노니는 나의 발과 날개를 보면 또 언제 그런 생각이 들었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시간 속에 침묵하며 존재할 때에는 나의 존재와 목소리의 존재 사이의 괴리감과 그 거리 사이에서 나오는 닿을 수 없는 연기의 향이 매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막상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무언가를 해낼 때 그 목소리가 들린다면 또다시 고민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평생 동안 달의 앞면밖에 보지 못할 것이다. 앞면? 사실 앞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우리의 시답잖은 의미부여일지도 모르겠다. 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우리가 보는 면이 뒷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 세계관 속 우리는 달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거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면을 우리가 본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달은 어둠 속에 빛을 내린다. 물론 달 자체가 빛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어딘가에서 비치는 빛을 있는 힘껏 끌어 모아 칠흑 같은 어둠이 되었을지도 모를 우리의 밤을 조금이라도 밝게 비추어준다. 우리는 그 덕에 암흑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고, 낮과는 다른 현실 속에서도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득 달의 아픔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늘 자신의 반밖에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진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뇌리에 스쳤다. 아무 조건이나 이유도 없이 그저 우리를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쓰는 달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그 달은 지금껏 우리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외로웠을 것 같다. 자신의 주변으로는 서로 평행하게 달리는 돌덩이들만 즐비할 뿐 정작 자신의 손을 맞잡아 줄 존재는 거의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사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 달이 되어주는 무언가에게 우리는 얼마큼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가. 인간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면서도, 그걸 행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얼마큼의 사랑을 뿜어주고 있는가.


우리 곁을 늘 공전하면서 가끔씩은 직접 찾아와 충돌하기도 하며 자신의 진심을 다하는 인간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로를 향해 충돌하는 횟수가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우리 표면에는 어그러진 상처들이 깊게 파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알 수 없는 중력에 끌려 서로를 돌게 된다. 빠져나올 수 없는 딜레마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달과 달리 우리는 인간이지 않은가. 서로의 상처가 너무 깊어 뼈가 드러날 때가 되면, 나의 정신이 제 걸음으로 걷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의 마음은 손쓸 수 없이 엮여버린 뿌리를 풀어버리는 대신 커다란 도끼로 찍어 단숨에 잘라내려 할 것이다.


밝음은 당연하지 않다. 의도된 것도 꾸며진 것도 아니지만 당연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에 우리 인간은 너무도 교묘하다. 밝음이 밝음 자체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달을 향한 선망과 감사함이 바람에 흩날리더라도 공기 중에 퍼뜨려졌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거울 속에서 본 우리의 모습이 조금도 닮지 않았던 것처럼 내면에서 우러나온 향의 잔상도 너무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내가 애정하는 유리잔처럼. 우리는 마치 핸드폰 액정처럼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곤 한다. 처음 나의 품에 안겼을 때는 혹 떨어트릴라 노심초사하며 애지중지 사랑을 나눠주지만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모델들이 나오고 내 핸드폰에 대한 감흥이 사라졌을 때 무심코 바닥에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지금 내가 가진 이 아이가 없다면 아마 세상과의 감정선에서 길을 잃고 말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 소중해야 한다. 우리의 존재는. 그들의 존재와 나의 존재는 온전해야 하고 소중해야 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성숙하지 못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사람을 유혹하고 개인으로서 세상을 연명하는 게 현명하다고 꼬드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거짓 수작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어주는 빛의 조각이 있기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에 잠식당하기 이전에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길 기다리는. 그러면서도 발을 들어 자신이 밟아온 길의 흔적을 살피려 하지 않는. 그렇기에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늘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씩 떼어 나눠줄 수 있게.


자연히 발생하는 일이라 착각했던 과거의 날들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앞으로의 시간 동안에 나에게 빛을 비춰주고자 할 행성의 달에게 소원을 빌어볼 뿐이다. 깨달음이라고 하기에 나는 너무 무지했다. 성장이라고 하기에 상처가 깊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자 했던 나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배움이라는 것을 얻는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죽음과 조금도 가깝지 않은 곳에서 주저앉아 안정적으로 숨을 쉬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죄책감은 오늘의 초승달이 멀어질 때 같이 떠나보내려 한다. 결국 그게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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