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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Nov 26. 2021

결박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설산에 전나무는 잔뜩 추위를 머금고 있었다 


탕 

소란스러웠다 

새들은 이내 둥지를 떠나 

허공으로 비행했고 

지나가던 바람도 멈추어 

소리에 놀란 듯 생각에 잠겼다 


소리에 홀려 부리나케 달려간 그곳에는 

총을 든 사내아이가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움츠러든 사슴 한 마리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탕 

죽었나 

아이의 그림자에서 한 걸음 옆으로 벗어나 

사슴을 보려 했다 


빗맞았다 

아, 

사내아이는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있었다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발굽 소리와 

구멍이 뚫린 머리를 하고 피 흘리는 아이 


희한하게도 아이는 미소 짓고 있었다 

중력이 들러붙어 인형처럼 움직이던 

수동적이던 정신의 발악이었다 


세상을 향한 외침 

이것이 세상에 줄 영향이라고 자신한 듯 

고통받고 있었다는 눈물이 울부짖음 

나는 나를 죽임으로써 다시 나를 증명한다는 

최후의 선택 속 새로운 탄생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피 흘리는 아이에게 

사슴은 다시 돌아왔다 


이미 차가워진 볼을 핥으며 

그동안 시달려온 마음을 녹이기로 하듯 

최선을 다해 온기를 전달했다 




오랜만에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흘러나오는 모든 것들을 감상하며 잠시나마 살아있음을 느꼈다. 지금껏 살아있다고 주장해온 나의 영혼이 세상의 중력에 잠식당해 제대로 살아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많은 회의감을 느꼈다. 온갖 환멸감과 좌절감이 정신을 감쌌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살아본 잠시간의 시간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던 건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처절한 외침. 아마 관심을 바라는 절박한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살고, 그렇게 이용당하며 살아왔다. 나의 이득을 쫓는 자들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나의 능력을 내세우는 자들,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그렇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그때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관계들에 사무치게 감사하면서 동시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과대망상인지 현실에 대한 자각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의 정신이 나의 컨트롤 밖으로 사라졌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최근 나를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사람, 나의 장점이나 단점 내가 줄 수 있는 이득에 상관하지 않고 눈물 흘리는 사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내가 한때 사랑했던 것들과 지금도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한 열정을 되살려준 사람들을 만났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짓던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이었다는 건, 그러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차갑고 냉혹하며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할 만큼 난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나를 잃어갔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나의 수명을 조금씩 떼어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은 점점 나를 지배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내가 진짜 '나'인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사명감과 책임감은 삶이 아니라 세상적 발전과 무의미한 성장에 초점을 두었고 그것들에 집착을 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오히려 다치게 할 수 있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과제의 분리는 예전에 버린 듯 이제 나는 다른 이들의 삶에 너무 많이 녹아들어 있었다.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 했고, 모든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나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이들에게도 이런 소유욕은 계속됐고 멈출 수 없이 커진 유해한 감정들이 이제는 나까지 집어삼켰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겼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어 내 분노의 실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연필 같은 인생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헝클어진 망가진 마리오네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나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냥하려던 사슴은 일찌감치 도망갔지만 내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측은했는지 다시 찾아왔다. 아마 그게 내가 바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사람, 세상을 위해 능동적인 무언가를 할 힘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처절하게 절규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건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거절할 용기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것과 여전히 함께이고 싶을지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며 이기적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를 생각하지 않는 그런 괴상한 형체를 하고 나는 걸어 다녔다. 무엇을 위해. 나답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게 이렇게 어려웠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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