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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Dec 14. 2021

찾아오는 인연 중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없다

찾아오는 인연 중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없다


얕게 부는 바람도

흘러가는 전깃줄도

하물며 은연중 던져진 단어들도


자국처럼 새겨진 연이

후에 내 눈동자에 흠뻑 젖어있기를


두드리는 건반을 따라

쏜살같이 달려가는 음표들이


왔다 가고

피고 지기를 반복해도


여전히 모두 내 마음 안이다




전시를 오픈한지도 벌써 1 주일 하고도 이틀째 되는 날이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건 아니지만 소중하게 기억될 인연들이 하나 둘 찾아와 흔적을 남기고 가주어 나에게 너무도 감사한 시간들로 마음에 담기고 있다. 그중에 가장 와닿는 만남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무턱대고 글을 적어본다.


벌써 네 번째 전시를 방문해주는 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대화를 해보지도 못했고, 질문을 드려도 크게 답을 해주지 않아 원래 말수가 적으신 분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냥 그렇게 넘겼었는데, 이번에 또 만났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지난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다. 뭐하시는 분인지, 평소엔 뭘 하고 사는지 등등. 알고 보니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스스로의 힘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배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아주 멋진 사람이었다. 전시장에 피아노가 비치되어 있어 자주 피아노를 치러 오는 것이었다.


그분은 당장 다음 주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걱정이라고 했다. 자신이 최근 가지고 있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 스스로의 모든 것들을 싫어할 자신의 모습에 대한 근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그분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며 이런저런 고민거리들을 늘어놓았고, 나는 음표와 단어들을 따라 내가 살고 있는 생에서 느끼는 점들에 대해서 전달해드렸다. 그분은 내가 한 문장을 이야기할 때마다 피아노 치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다가 "그렇네요."라고 대답했다. 한참을 떠들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전시를 열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가 우연찮게 얻은 기회로 열어낸 전시가 누군가한테는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줄 만큼의 가지를 지니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어딘지 모르게 따뜻해졌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한층 더 높아진 톤으로 질문들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던지던 답변들이 30분쯤 지나자 장문의 답변으로 변했고, 이후에는 역으로 나에게 질문까지 하는 대화로 이어졌다.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의 꿈을 현실화시키는 것에 대한 걱정들이 자신을 지배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에 내가 피아노를 칠 때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드렸다(얼핏 들은 목소리가 좋았다..). 그렇게 반주는 시작됐고 그분은 노래를 했다. 알지 못하는 노래였지만 그분은 자신만의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거기에 가사만 붙여 부르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굉장한 자유로움의 소리였다.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밖으로 나오고자 수도 없이 발버둥 쳤던 그 자유로움이 영혼 속에서부터 탈출한 것 같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나지막이 시작했다가 서너 곡쯤 부를 때쯤에는 건물 전체를 울릴 만큼 강력하고 높은 소리가 되어 이곳저곳 팽창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자신만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담긴 소리들로 전시장을 채웠고 다시금 소강상태에 빠져 조용한 무드 속에서 피아노 반주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침묵을 지킨 채 생각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 그분이 말문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겠어요. 이 만남이 선물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며 "다행이네요."라고 답했을 뿐이다. 거기에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면 멈추지 못할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만남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영감을 찾아 험난한 세상 속에서 방황하던 그분이 모두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내가 내 인생에 가진 책임감에 대해서 실감했다.


항상 누군가 나에게 산다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줄곧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답했고, "그래서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라고 따라붙는 질문에는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사는 거"라고 말했다. 나에게 삶은 책임감을 가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하는 행동, 내가 뱉어내는 말들, 내가 하는 생각들이 주변 나와 연을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넘어 더 넓은 범위의 사회 연결망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내 삶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고통받을까', '생각을 하지 않고 편하게 즐기기만 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매일같이 고심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나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그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것을 지키며 사는 건 정말이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남을 통해 '내가 이런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삶에 몰아붙이듯 자신을 내세웠던 게 아닐까' 깨닫게 되었다. 이건 나와 함께 노래를 해준 그분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잡기 위해 매일같이 전시장에 나와 티비를 틀고 생전 처음 보는 이의 낯선 질문들에 대해서 진심을 다해 대답을 해주었다. 이렇게 두 진심이 만나 불꽃을 일으키며 자유로움을 확인한 순간을 경험했기에 책임에 대한 중요성이 나에게 더 와닿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진심은 모든 이들의 인생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삶에 진심이 아닌 사람은 없다는 것, 그렇기에 고통받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고민하게 되는 우리라는 그 사실이 너무 깊게 내리 꽂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준비된 자에게만 운이 선물처럼 다가온다는 말처럼 삶의 진심인 사람들이 어느 한순간 서로의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느껴 생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 그 단계를 진심으로 맞이하기 위해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떻게 이 글을 끝마쳐야 할지 모르겠다. 벅차오르는 마음에 그냥 부리나케 손을 움직였던 터라 마무리지을 결말을 생각해두지 않았다. 한 가지 적어내고 싶은 건, 우리는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만남과 이별 속에서 상처를 입고 때론 즐겁게, 때론 좌절감에 휩싸이듯 시간을 보내겠지만 이 모든 순간들이 숨을 쉬고 있는 우리들의 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줄 수 있어서 사무치게 감사하다. 행복했으면 한다 모든 이들이.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주저리 주저리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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