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사실 전날 잔뜩 취해버리는 바람에
옷을 반쯤 벗고 반쯤 걸친 상태로 잠에 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눈이 빨리 떠져
꽤나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폭풍 전 바다는 고요하다고 했던가
이상하게 피부에 소름이 돋고
폐에는 쓸데없는 공기가 가득 들어찬 듯 갑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계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의 시간을 한참 지나
주정 부리는 나의 모습을 피식대며 비웃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물 한잔 마시지 못한 채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하늘은 흐리게 젖어있었다
바닥은 습기를 머금고 차가움을 짙게 깔고 있었고
산 중턱을 넘나드는 나의 발목은
길지 않은 양말 탓에 시린 듯 떨고 있었다
급한 마음이 두개골을 지배하기라도 했는지
그 어떤 생각도 머릿속을 타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저 빠른 걸음과 헉헉대는 숨소리
그것 외에 나를 채우는 건
어딘가 불편한 고민들과
잔뜩 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정신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다림에 지치기도 전에 이미
나약함과의 정시에 지쳐 싸움은 무의미해진 상태다
움직이는 손가락도 맹목적이며
그 안에 영혼 따위는 담지 않는 채로 달리고 있다)
한참을 얼이 빠진 채 달려
있어야 할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웬걸
나의 도착이나 지나온 두 시간이 무의미해라
나를 기다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적 속에서 인내하는 것에 질려 떠나간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나만의 망상과 미래에 대한 기대였던가
내려치고 싶지만 마땅히 분노할 언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불편한 나의 마음이 웅얼대기라도 하듯
피부 곳곳이 쓰리고 간지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