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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보이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뜨끈한 순댓국

by 봄비가을바람


바닥을 보이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봄은 가까워 온 동네에 봄빛인데

몸속은 비고 춥다.

뚝배기 온기를 손안에 모으고

뜨끈한 국물의 유혹을 받았다.

더도 덜도 말고 꼭 제 입에 맞게

간을 맞추고 흰 밥 한 그릇을 말아

후루룩 입 안에 새 집을 짓었다.

처음 만난 날, 설렘은 익숙한 낯으로

웃어도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내 속에 있는 순간 하나하나에

사연이 달리고 눈물로 작별했다.

한 숟가락 국물이 마지막 한 입에

포만감으로 만족했을 때

바닥이 보였다.

바닥을 보이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그것이 내 것인지, 네 것인지

어디에 큰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슬픔은 배가 된다.

돌아서 아무 일 없던 일이라

다짐을 해도

빈 공간을 시간이 어떻게 채울 것인가.



by 봄비가을바람




<대문 사진 포함 by 봄비가을바람>




모처럼 남동생이 새로 생긴 식당을 봐 두었다고 밖에서 먹자고 했다.

<순댓국>

다른 것이면 다음이라는 기약 없는 승낙으로 넘겼을 텐데 순댓국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순댓국을 좋아한다.

아마도 첫 번째 외식이 순댓국이었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밖에 나가 먹는 것이 순댓국이라니 전혀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좋았다.

밖에 나가 먹는 것도 좋았고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도 먹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어린 시절에 순댓국은 어른 음식이라 아이들이 근접할 수 없는 마성의 음식쯤으로 여겼다.



우리 가족의 소올푸드는 순댓국이다.

아빠 따라 처음 먹은 순댓국은 만만한 외식 메뉴이며 그리움과 추억의 음식이다.

예전에 엄마는 순댓국을 포장해 올 때 집에 있는 냄비를 가져갔다.

순댓국을 가득 담아 집에 오자마자 한번 더 끓여 아빠와 뜨끈한 순댓국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너 엄마가 점심에 시장 갔다가 순댓국 사 왔다.>

<우리는?>

그 시간 집에 없었던 것이 아쉬움이 서러움으로 몰려왔다.

가끔 어디 시장 순대골목에서 유명한 순댓국집으로 엄마, 아빠를 따라가 꿉꿉한 돼지고기 국물이 가득한 식당에서 뚝배기에 델까 호호 뜨끈한 순댓국을 먹었다.



한참 김이 나던 뚝배기가 손을 댈 정도로 만만하면 배는 빵빵하고 바닥이 보인다.

배부르게 먹어놓고 눈앞에 바닥이 슬프다.

또 한 번의 엄마, 아빠 따라 순댓국 외식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가 동생들의 눈총을 피하는 건 잠시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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