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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일에서 오는 간극
꽃 도둑
일에서 오는 간극(間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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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을바람
Jun 12. 2022
몇 년 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마지막 회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이 동료 경찰관 역의 배우들과 함께 파출소 주차장에서 동네 주민들과 가을볕에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한가.
생각해 보면 농촌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의 현실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수확철에 빈번하게 농작물 절도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계에 말리는 고추보다 햇볕에 말린 태양초가 더 인기가 있고 수익에도 도움이 되니 농가 마당이나 자동차의 왕래가 적은 도로변에서 말리다 보니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예 경찰관들이 있는 곳에서 말리면 완전한 철두철미 고추 말리기 작전이 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말하는 "서리"는 어릴 적 재미난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동네 아이들이고 누구네 자식들이며 그 아이들 부모와는 가까운 사이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요즘은
혹시라도 어릴 적 추억 놀이로 치부하여 휴가철에 시골에서 서리를 하다가는 큰일이 난다.
왜냐하면 서리하려는 작물 하나만 피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박 서리를 하면서 조심조심 하나만 따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한밤중에 이리저리 헤치고 뛰어다니느라 넝쿨식물인 수박 줄기까지 밟고 다닌다.
그러면 수박 하나 때문에 그 밭은 몽땅 못 쓰게 된다.
농작물은 매일매일 농부의 손길과 숨결로 가꾸고 또 자라는 것이라 했다.
1년 동안 한 철 풍성한 수확을 위해 피땀을 흘리는데 한순간 엉뚱한 이들의 만행으로 허사가 될 수 있다.
차라리 농장 주인한테 수박 하나만 달라고 하면 크고 맛있는 것으로 선뜻 내줄 것이다.
본인이 잘못하고 시골 인심 운운하는 뻔뻔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졸업식, 입학식 시즌에 맞춰 프리지어가 출하된다.
한겨울에 꽃을 피우지만 봄부터 준비를 한다.
마늘처럼 생긴 알뿌리를 실한 것만 골라 싹을 틔우고 새싹으로 키워 잎과 줄기로 자라 꽃봉오리가 맞힐 때까지 각 과정 하나에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약 한 달 동안 프리지어 향내처럼 달콤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출처/Pixabay, 프리지어>
그런데
프리지어 철이
되면 꽃 도둑들이 기승을 부렸다.
온실 근처에 차를 대놓고 어둑한 달빛에 꽃을 뿌리째 뽑아갔다,
프리지어는 한 뿌리에서 서너 번 개 정도의 꽃가지를 수확할 수 있다.
뿌리째 뽑아버리면 한 번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뽑으면서 다른 줄기는 밟아버려서 한 온실 전체에 피해를 주게 된다.
우리 동네 전체가 화훼단지로 조성되어 있어서 피해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 집은 농장과 집이 가까워서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다른 집은 농장과 멀어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집도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또 공짜로 얻으려고 해도 안 된다.
물론 도둑질을 하면서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는 않
겠지만 세상을 살면서 분명 대가를 치를 일이 생길 것이다.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지금은 아버지도 일을 안 하시고 꽃 향기와 푸른 내가 가득한 그곳은 몇 년 사이에 너무나도 달라져 다른 세상 같다.
여전히 그곳을 지나다니지만 옛 생각을 떠올릴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엄마와 아픈 이별을 한 곳으로 늘 한여름에도 마음은 춥다.
세상 사는 일이, 자신의 업무에서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의 욕심, 혹은 그의 의도로 내 세상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 상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
당한 사람도 그 만행을 요목조목 따져 물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무에 따른 연관성이나 관계의 정도에 따라 후속 조치가 달라진다.
거의 대부분 당한 쪽이 참고 감수하는 것으로 대충 넘어간다.
막말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
혹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도움을 요청해야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진정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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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어요> 출간작가
17년 차 한국어 선생님이며, 등단 시인입니다.. <시간보다 느린 망각>시산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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