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빗소리에 우산을 들고 나왔다.
눈앞에 내리는 빗줄기는 안개처럼 흩어져
비가 오는지 가늠도 못 하는데
하나둘 지나는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우산을 펼친다.
오른쪽 어깨에 맨 가방 끈이 흘러내리고
왼손에 여러 개 겹쳐 든 비닐봉지는
한쪽 끈이 찢어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려 한다.
이쯤 되면 쏟아붓지 않는 비에 마음이 상한다.
올 듯 말 듯 내리는 비에 우산을 쓸듯 말 듯.
모두 쓰고 지나치는 바쁜 걸음에 괜히 눈치를 보고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는 짐은 안절부절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그림 속 사람들.
보폭도 다르고 가는 방향도 다르다.
바람도 없이 잔잔히 내리는 여름을 기다리는 비에
가벼운 우중산책이다.
집에 거의 다 와 가는데
메모해 놓고 사지 않은 게 하나 걸린다.
현관 앞이다.
이제 우산을 접어야 한다.
<대문 사진 출처/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