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with My father

아버지와의 하교

by 봄비가을바람


Dance with My father


Back when I was a child

Before life removed

all the innocence

My father would lift me high

And dance with my mother and me

And then

Spin me around til' l fell asleep

Then up the stairs he would carry me

And I knew for sure I was loved

If I could get another chance

Another walk another dance with him

I'd play a song

that would naver navet end

How I'd love love love

To dance with my father again

Oooh

When I and my mother

would disagreed

To get my way I would run

from her to him

He'd make me laugh just to comfort me

Yeah Yeah

Than finally make me to

just what my momma said

Later that night when

I was asleep

He left a dollar under my sheet

.

.

.

I play for her even more than me

I play for her even more than me

I know I'm praying for much

too much

But could you send back

The only man she loved

I know you don't do it usually

But dear Loved she's dying

To dance with my father again

Every night I fall asleep

and this is all I ever dream


<노래/Luther Vandross>




http://kko.to/g5r03WzxH

<출처/멜론, Luther Vandross 채널>



우연히 영상채널 속 프로그램에서 흐르는 배경 음악이 왠지 익숙해서 반가웠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반가움보다는 마음속이 울렁울렁하도록 눈물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것 같습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어느 순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내편이 아닙니다.

산문 <아버지의 뒷모습, 주쯔칭(朱自淸) 1898 ~ 1948>에서 기차역까지 배웅하는 아버지가 아들은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가족 모두 힘든 것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의 마음은 모른 채 아들 먹이겠다고 귤을 품고 무거운 몸을 뒤뚱뒤뚱 움직여 철로를 넘어 귤을 쥐어주고 다시 건너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들도 울음을 쏟아내고 읽는 이도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왜 떠난 후에 그 큰 마음을 알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 노래는 곁에 계시지만 젊은 날의 아버지, 아빠를 그립니다.

이제는 오랜 노환과 쇠한 몸이 힘들지만 항상 아침마다 배웅하는 목소리에 힘이 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잘하고 와라."

아버지는 "잘 갔다 와라."가 아니라 "잘하고 와라."라고 하십니다.



고교 때 야자, 야간 자율학습은 더 이상 자율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학교 생활 중 하나입니다.

1, 2학년 때에는 동네 언니와 야자가 끝나고 함께 도란도란 수다에 시간도 무서움도 잊고 집으로 오는 길이 좋았습니다.

그 언니가 졸업하고 나니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오는 30분이 두려웠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야자가 끝나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지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아빠가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일 끝내고 힘드실 텐데 고3이 되고서는 거의 매일 아빠와 안전한 밤 산책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시는 아빠를 보면 손전등을 비춰서 그런가 무척 밝고 환했습니다.

"가방, 다오."

"저녁 드셨어요?"

"오냐. 어서 가자."

가방을 건네드리면 한걸음 앞서 손전등을 비추며 걸으셨습니다.

책가방은 아빠 드리고 신발주머니, 도시락 가방, 사전 가방을 들고 부지런히 좇아 걸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집에 도착하는 30분 동안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내리는 문에서 밖을 내다보며 두근두근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엄마도 같이 나온 겁니다.

"엄마!"

폴짝 뛰어 엄마한테 매달렸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방, 다오."

아빠는 먼저 앞서 걸으시고 엄마한테 매달려 조잘조잘 재잘재잘.

4남매 중 꼭대기라 늘 엄마 주위만 맴돌다 30분 동안이지만 온통 내 차지라 신이 났습니다.

"아빠한테도 이러면 얼마나 좋노."

"히히, 그런데 잘 안 돼."

"셋째는 잘하잖아."

"아빠가 예뻐하잖아."

"잘하니까 그렇지. 말도 예쁘게 하고."

"그런가."

사실, 애교는 눈을 씻고 귀를 닦아도 없고 말도 똑 부러지게 바른말만 하니 예쁜 구석이 덜 하기도 했습니다.

꿈같은 30분의 밤 나들이가 마냥 좋은데 앞서 걷는 아빠는 좀 쓸쓸해 보였습니다.



노래처럼 후회할 일은 아직 없지만 바른말이 이제 잔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거 너무 드시면 안 돼요."

"자꾸 다리 꼬고 앉으시면 허리 더 아파요."

"화장실 가실 때 천천히 일어서세요."

매일 똑같은 말이니 당연한 걸 또 하고 또 하는 잔소리가 됩니다.

이제는 하나하나 살펴드려야 하는 아버지가 곁에 계신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잘하고 와라."

아버지의 배웅을 아직 한참 더 받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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