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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Apr 19. 2022

콩국수 커밍아웃

아버지는 콩국수가 싫다고 하셨다.


 추억을 꺼내어 보면 좋은 풍경, 좋은 사람, 좋은 일,   그리고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 등 관계 속에서도 음식 이야기가 있다.

맛있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이면 하교 시간이 더 기다려졌다.

엄마하고 시장에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 집에 와서는 엄마부터 찾았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찾아다니다가 엄아와 쿵 마주치면 더욱 신이 났다.

 버스에 올라 엄마 앞에 앉아 연신 뒤돌아 엄마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엄마가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출처/Pixabay >



 시장 앞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쿵쿵거리는 마음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다.

버스에서와는 달리 엄마와는 점점 멀어지는데도 눈 돌린 곳이 너무 많다.

엄마는 이것저것 찬거리를 장바구니 가득 담고 발걸음이 느려지면 식당으로 향했다.



 엄마는 콩국수 두 그릇을 시켰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엄마와는 달리 콩국수 위에 올려진 수박이나 토마토와 콩국물만 홀짝홀짝거렸다.

 그렇게 여름날 시장 나들이는 나 말고 동생들에게도 신나는 날이었다.

넷이 돌아가면서 시장에 갈 때마다 따라나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실 때에는 여름이면 콩을 갈아서 콩국수를 했었다.

어른들은 너무나  맛있는 그 음식이 우리는 맛을 몰랐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찾아 먹지도 않는다.

또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래도 가끔은 아버지가 드시고 싶으실까 봐 콩물을 사다가 국수를 삶아 드린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러셨다.

 "나, 사실은 콩국수 안 좋아한다."

 엄마하고 그렇게 맛있게 드셨는데 안 좋아하신다니.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우리 넷까지 대가족이 있는 집에서 좋아하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 하는 엄마를 위해 늘 그렇게 맛있게 드신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시장에 가는 건 좋아했지만 콩국수는 싫어했다.



 한 번이라도 같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혼자 콩국수를 먹으면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러시는 것 같다.

한 그릇 달게 드시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는 여름날 콩국수 한 그릇이 최고의 밥상이었을 텐데 한 번을 마음 편하게 드시게 못 했다.

 곧 여름이 온다.

못된 딸이 지금이라도 맘껏 콩국수를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해 드릴 텐데 엄마는 우리 곁에 없다.

그저 송구하고 또 송구하다.

후일, 언젠가 구수한 콩국수 그릇 마주 놓고 시원하게 여름날을 이야기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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