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매달 생일 파티를 해 주셨다.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 손수 생일 선물을 준비하시고 모두 사탕 하나씩 나누어 먹는 소박했지만 기억에 남는 생일 파티였다.
남녀공학에 갓 부임한 여자 선생님으로서 첫 담임을 맡아 어쩌면 생각보다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언제나 애쓰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워낙 수줍음이 많았는데 또 고집도 셌다.
누구에게도 손 내밀지 않고 혼자 하려고 했다.
3학년 때에도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그리고 3학년 중요한 시기에 엄마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중환자실에 3개월이 넘도록 있는 동안 매일 정규 수업이 끝나고 보충 학습 시간에 병원에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셨다.
선생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2학기말고사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걸 놓고 싶었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무얼 하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반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학생들 중 하나였으니 선생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매달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면 교무실로 호출을 받아도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결국, 선생님이 올라오셨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드디어, 엄마가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모의고사를 본 날이라 조금 일찍 학교 수업이 끝났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내 주시지 않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오늘은 자율학습하고 가라."
"네."
뚱해서 교무실을 나오며 왠지 서운하고 서러웠다.
괜히 울컥한 마음으로 겨우 시간만 때우고 병원으로 갔다.
동생이 먼저 와 있었고 못 보던 과일 통조림도 보였다.
"금방 선생님 오셨다가 가셨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께 잠시나마 서운한 마음을 가진 게 한없이 송구했다.
다음날, 조례가 끝나고 선생님 곁으로 갔다.
"병원에 가신다고 말씀하지요."
"그럼 네가 못 가게 할까 봐 그랬지."
울컥했다.
너무나도 날 잘 알고 계신 선생님께서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고 걱정하셨을 까.
방학 보충 수업 때 복도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도 선생님이 먼저 오셔서 반갑게 팔짱을 끼셨다.
누구보다 힘든 고3을 보내며 단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독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네모 안에 꼭꼭 가두어놓고 그 안에서만 있었다.
둥글게 살아도 되는 것을 지금은 너무 잘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짝사랑하듯 지켜주셨다.
알아서 잘하는 것도 좋지만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먼저 살살거리며 선생님 팔에 매달린 적은 없지만 선생님 성함으로 장난치는 남자 애들 제가 혼내 줬습니다. ^^
<대문 사진 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