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이지.
비가 오는 날에는 짬뽕이지.
매혹적인 빨간 원피스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수줍은 볼 빨간 그 여인이
눈앞에 아른아른 지난밤 꿈보다
뜨거운 국물에 얼큰한 내가
몇 백 배 더 매혹적이다.
흰 가닥마다 바다향을 머금고
후루룩 입천장이 데도록
격렬한 만남이 아찔하다.
적당히 후두둑 빗소리가 장단 맞추고
빨간 국물 한 그릇으로 속까지 데우면
지금 이 자리가 꿈 속이다.
by 봄비가을바람
짜장면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짬뽕이 좋아졌다.
지역 내 짬뽕이 유명한 집을 찾아 맛을 보기도 하며 나름 짬뽕 평가를 한다.
무엇이든 처음 경험한 것을 잊지 못한다.
어른으로서의 명분이 생기는 주민등록증 발급이 그렇고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 때가 그렇다.
짬뽕의 처음은 엄마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할 때였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
셋이 근교 병원을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수술과 재활, 후유증까지 엄마도 고생이지만 아빠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좋았다.
함께 있었으니.
병원 순례를 하며 점심을 위해 들른 중국집이 있었다.
병원 앞 2층 상가에 자리 잡은 식당은 좁은 층계를 올라가야 했다.
내가 앞서고 아빠가 엄마 뒤를 받치고 들어선 식당 홀의 둥근 식탁이 새로웠다.
중국어가 식당과 홀을 오고 가는 전형적인 옛날 중국집이었다.
짬뽕을 세 개 주문하자 단무지와 짜차이가 우리 앞에 놓였다.
무짠지를 무쳐 놓은 것 같은 짜차이를 긴 젓가락으로 조심히 집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맛이 싫지는 않았다.
이윽고 짬뽕이 나오고 빨간 국물에서 불향과 달큼한 향내가 올라왔다.
후후 불어 국물 한 숟가락을 먹으니 매콤하면서도 감칠맛과 다양한 맛있는 맛이 났다.
"뜨겁다. 천천히 먹어라."
엄마의 말에도 후루룩후루룩 잘도 먹었다.
그리고 먹은 티를 확실히 내고 말았다.
새로 산 리본 달린 노란 블라우스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짬뽕을 좋아한다.
처음 짬뽕 맛을 찾아서 맛있는 짬뽕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 앞 그 상가가 재개발되며 사라진 것처럼 같은 맛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와 함께 한 병원 순례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것처럼..
<대문 사진 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