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에 있다.

by 봄비가을바람


나, 여기에 있다.



천둥벌거숭이 복숭아빛 살갗에

보송보송 솜털도 나기도 전

고택의 처마 끝 풍경 소리에

귀가 먼저 열려 먼 하늘을 나는

작은 새 날갯짓에도 흠칫했다.

온갖 세상 것에 이름이 붙어

제 할 일 바빠 도란도란 말 한번 붙이지 못해도

어두운 밤 더듬어 전등에 불 깃들었으면 되었다.

동구 밖 천 년 은행니무 그늘 아래

노란 눈이 쌓이면 한 잎 두 잎 수를 세어

다시 천 년을 기원했다.

눈 다 녹기 전 후두둑 빗소리에 미끄럼 타고

졸졸 흐르는 농로로 마실을 갔다.

들녘 새벽잠 깨워 하루를 재촉하고

햇살 기울기 전 이슬 따라 무릎이 젖었다.

스치는 들꽃도, 소스라치는 풀벌레도

또 한 문이 열렸다.

세상에 나온 이유가 저마다 있을진대

내 이유 역시 있지 않겠는가.









<출처/Pixabay>








keyword
이전 22화마음 걸음을 멈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