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꿈

수녀가 되고 싶었다.

by 봄비가을바람


소녀의 꿈



검은 단발머리 나풀나풀

흰 블라우스 남색 치마

흰 운동화 흰 양말

큰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바람결에 머릿결을 맡기고

종종 하굣길에 마주쳤다.

작은 성 안 고운 수녀님

검은 머리카락 고이고이 감추고

두 손 가슴에 모아 높은 곳에

소원을 올렸다.

눈에 익어 인사 나누고

마음에 담아 꿈을 꾸었다.


by 봄비가을바람





수녀가 되고 싶었다.

등하교 길에 늘 지나던 작은 수녀원을 동경했고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좋아했다.

<글을 쓰는 수녀>라는 꿈을 마음속에 키우다가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시간에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며 처음 밖으로 꺼내 놓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넌 꼭 수녀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성당에 다니는데도 생각도 못 했는데 너 대단하다.>

<수녀원에 언제 들어가?>

마치 정말 수녀가 되는 과정을 밟을 것처럼 쉬는 시간에 반 친구 전체가 주위로 모여들었다.

꿈 이야기 한 번으로 제대로 인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꿈 이야기를 내놓고 덜컥 겁이 났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이러다가 정말 수녀가 되는 것인가.

누구나 꾸는 소녀의 꿈이 아니었나.

그리고 그 후, 단 한 번도 수녀가 되고 싶은 꿈을 말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며 또 다른 소녀의 꿈 대상자가 생겼다.

<빨간 머리 앤>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책 등.

다양한 장르 속 앤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성격과 모습, 그리고 앤의 꿈.

어렵고 외로운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앤이 빛난 이유는 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상상과 공상 속에서 자신을 넓은 세상에 띄워놓고 마음껏 날 수 있는 앤의 생각과 글솜씨가 부러웠다.

<나도 앤처럼 글을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마도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이었을까.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

<시인이 된 한국어 선생님>.

지금 나의 모습이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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