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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는 자리

호박 한 덩이, 가지 몇 개

by 봄비가을바람

시절과 풍경이 지나는 자리는 변하지 않았다.

시골 시댁을 다녀온 동생네에 딸려온 호박 한 덩이, 가지 몇 개, 삶은 옥수수, 껍질땅콩, 햇밤 한 봉지.

여느 추석과 같은 풍경인데 반겨줄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추석 다음 날, 엄마 기일에 알밤을 까서 올리고 나머지는 벌레가 생기기 전에 삶아 놓았다.

가지는 데쳐 가지나물을 했다.

아버지는 몇 젓가락 드셨는데 남동생은 별로 좋아라 하지 않아 나 혼자 한두 번 먹다 치우지 싶다.

호박은 시골 농토에서 빗소리와 햇살에 노곤히 누워 있다가 얼떨결에 따라와서 먹을 시기를 약간 놓친 듯하다.

다행히 반을 갈라 속을 보니 씨가 아직 단단하지 않고 껍질도 제법 물러서 남자 친구 어머님 보내 주신 새우젓으로 간하여 볶았다,

요것도 어찌어찌 냉장고에서 숨어있다가 슬그머니 치워질 것 같아서 서운하다.

엄마가 자주 하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반찬을 해 놓고 추억이 무서워진다.

요 몇 주 집에서 음식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후루룩 후딱 해치운 걸 보면 보고 배운 것 쉬이 없어지지 않나 보다.

더구나 입맛도 길들여진 대로 제 맛을 찾아내니 더욱 지난 자리가 그립다.



시절과 풍경은 그대로인데 곁을 채우는 온기가 달라졌다.

변함없이 함께 할 것 같던 시간은 각자의 길을 따라 흩어졌다.

마음먹기에 달렸고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겠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다.

음식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함께 나눌 이가 없는 지금, 자꾸 지난 시간만 뒤돌아보고 흘낏 추억이 끼어들어 눈물이 될까 조마조마하다.



<대문 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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