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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김치

여름 비처럼..

by 봄비가을바람

"김칫거리 절여놨다."

어느 여름날, 학교에 다녀와서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맞이하는 것은 작은 메모였다.

하교 시간에 맞춰 김칫거리를 소금에 절여 놓은 엄마의 메모였다.

한 여름 더위와 장마에 좋은 얼갈이배추를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더위에 억세거나 장마에 짓물러 연하고 좋은 얼갈이배추를 제때에 시장에서 만나기 어렵지만 우리 집에서는 연하고 길이도 적당한 것을 골라 여름 김치를 담갔다.



열무와 함께 섞어도 좋은데 할아버지께서 드시려면 연한 얼갈이김치가 제격이었다,

집에서 따로 먹을 채소를 김을 매고 솎아서 고르게 가꾸는 것은 할아버지의 소일거리였다.

굽은 허리로 밀짚모자를 쓰시고 호미로 한나절을 여름볕에 앉아 계셨다.

하교하고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토마토밭에서 아주 잘 익은 빨간 토마토와 소주 한 잔을 따라서 할아버지를 그늘로 모셨다.

<허허>

웃음 한 번으로 <좋다>는 말을 대신하셨다.

토마토와 소주 한 잔으로 새참을 드신 할아버지 호미를 받아 들고 걸음걸이를 맞춰 할아버지와 집으로 돌아왔다.



절여놓은 얼갈이배추를 손이 많이 가지 않게 살짝 씻어 파, 마늘, 고춧가루, 멸치젓 등을 넣고 풋내 나지 않게 살살 버무렸다.

작은 김치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한쪽에 놓아두었다.

양푼에 남은 양념에 얼갈이김치를 남기고 찬밥을 넣은 후 참기름도 조금 뿌렸다.

그리고 쓱쓱 비벼 양푼 가장자리에 숟가락 세 개를 놓고 물병 하나를 들었다.

여름 새참을 들고 엄마, 아빠한테로 갔다.



어려서 우리 집은 큰 꽃농장을 했다.

꽃을 너무 많이 봐서, 아니 꽃 한 송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꽃 선물은 그리 반기지 않는다.

왠지 내가 가지기에 너무 귀해서.



하루종일 <안전문자>가 울려대고 장대비로 홀딱 젖어 들어온 저녁, 그때 여름날 저녁이 생각났다.

된장찌개에 얼갈이김치가 있는 여름 밥상.

아마도 얼갈이김치가 아니라 그때의 시간과 그 사람들일 것이다.




<대문 사진 출처/우리의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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