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銀馬를 찾아서

百山心論 5강 2장 42산 지리산 반야봉

by 여의강


하늘 무너지고

땅 꺼지며


숨 멎는 고통

옥조였지만


깨어진 하늘 조각

부서진 땅덩어리

까만 어둠 속


더 검은

산 그림자 있어


그 너머 밝아올

한줄기 빛 따라


부서진 영혼

일으켜 세워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지리산 여명


지리산 반야봉(1732m)을 다녀왔습니다.


시인은 '행여 견딜만하면 제발 오지 마라'했고,

사람들은 '지리산이란 다름과 차이를 알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했지요.


몰려왔다 밀려가는 시간

차마 견디기 힘들었기에,

지리(智異)의 뜻 곰새기며

세 번째 지리산을 찾았습니다.

(물론 BAC에 지리산 인증지가 세 곳-천왕봉, 바래봉, 반야봉-인 것이 주 요인이지만)



반야봉 가는길


처음엔 거림에서 세석과 장터목 연하선경 지나

정상인 천왕봉 거쳐 산리로 내렸고,

두 번째는 철쭉 따라 부운치 팔랑치 지나

바래봉 올라 용산리로 내렸고,

이번엔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반야봉 거쳐

삼도봉 지나 뱀사골로 내렸습니다.


이제 지리산 등반로 희미한 윤곽 잡혀갑니다.



1,2,3차 지리산 등정 코스


반야봉은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의 경계지점에

기암괴석의 웅장함과 독특한 식생 간직한

아름다운 산입니다.


반야는 불교 근본 교리 중 하나로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 지혜'를 말하므로,

반야봉은 ‘지혜를 얻는 봉우리’로 해석할 수 있답니다.


반야봉은 천왕봉 이어

지리산 두 번째 높은 봉우리로서

대부분 봉우리와는 달리

주릉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며

천왕봉 서쪽에 위치하고

특유의 엉덩이 모양 쌍봉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여 이원규 시인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에서

지리산 10경을 언급하면서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라고 했지요.



반야봉 한쪽 엉덩이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산으로 말하지만,

굳이 생김새로 구분을 짓자면

천왕봉은 사내로 반야봉은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지리산 산신인 마고는

불도를 닦던 반야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고

결혼한 뒤 천왕봉에서 여덟 딸과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반야가 더 큰 수행을 위해 딸과 처를 두고 반야봉으로 들어가 버렸고

마고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반야를 기다리던 마고는 석상이 되었다는

전설 있지요.(네이버, 경남일보)


대부분 전설에서 남자들은

왜 조신하게 사랑하는 여인 옆에서 알콩달콩 잘 지내지,

모 큰 일 하겠다고 먼 길 떠났다가 돌아오지도 못하고

늘 기다리는 여인을 힘들게 할까 생각하다

자신을 돌아보며 피식 쓴웃음 짓습니다.



반야봉서 바라본 천왕봉


밤 10시 양재,

고교 동기 독수리 5형제

친구 애마 카니발에 올랐습니다.


밤으로 유명한 정안,

괜스레 들뜬

깊은 봄밤


끈끈하고 비릿한

밤꽃 향기

바람에 날리웁니다.



밤꽃 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춘향의 고장 남원,

양반 아들과 기생 딸의 이야기인 '춘향전' 보다는

춘향과 방자의 있음 직한 러브스토리로 비틀어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 '방자전'이

먼저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요.


24시간 영업하는 뼈다귀탕 집 들러

간단한 반주 함께 속을 채웁니다.


산이 열리는 새벽 3시 근처

한숨도 못 이룬 채 도착한 성삼재


이른 시간임에도

하루 한번 서울서 온다는 시외버스며

시간 맞추어 모인 산객들로 어수선합니다.



성삼재 휴게소


성삼재(姓三재, 1102m),

천은사에서 휴게소까지

구례군 위치한 백두 대간 고개인데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그리 부르고

지금은 구불구불 이어진 포장도로 찻길이 닿습니다.


검은 하늘 멀리

노고단 불빛 희미하게 반짝입니다.


완만하고 넓은 길

삼삼오오 나아가며

흔들리는 헤드랜턴


가파르게 오르는 계단

출발 후 한 시간 여

어렵지 않게 노고단 입구 도착합니다.


노고단은 5시에나 문을 여는데

1시간 반이나 기다릴 수 없어

그대로 반야봉 향해 나아갑니다.


'노고(老姑)'란 늙은 할미로 '마고'를 뜻한답니다.



노고단 가는 길


은 숲 서성이는 불빛

온통 어둠뿐인 깊은 산길

칠흑 같은 수중 동굴 유영하듯


숲 내음 새벽 내음 맡으며

산짐승 바람소리 들으며

음미하듯 나아갑니다.



미명의 숲


잘 정비된 등산로

계속 어둠 헤쳐

멧돼지 자주 출현하다는 '돼지령'과

초지대 펑퍼짐한 안부와

파아골 대피소 갈림길 지나

도적 이름서 따온 '임걸령' 닿으니


희미한 여명

산과 하늘의 구분 만들어냅니다.


임걸령 등산로 바로 옆

맑고 깨끗한 샘물

마른 목 적십니다.


반야봉서 흘러나와

능선에서 만나는 귀한 옹달샘

천왕샘과 함께 국내 최고지대 샘물 중 하나랍니다.



임걸령 샘물


반야봉 삼거리

무거운 배낭 한 군데 모아놓고

가파른 1km 암릉길

가벼운 몸으로 오릅니다.


줄지어 뼈마디 드러낸

고사목 된 구상나무

멋지지만 안타까운 모습


천왕봉 제석봉 아스라이 흘러가고

겹겹이 이어진 산그리메

구름 속 무등산 섬처럼 떠있습니다.



천왕봉과 무등산


반야봉 정상

너른 암반

신성한 기운마저 감도는데


구름 속 태양

몇 줄기 빛 내려

천왕봉 밝히고


사방팔방 산산산

새벽 정기받아

구름 사이 퍼져나갑니다.


천왕봉 바라보며

득도(得道)와 두고 온 처자식 사이

오도 가도 못하고 갈등했을

반야의 번뇌 헤아려봅니다.



'정상주 한잔 하이시다,

어라 근데 막걸리를 두고와뿟네 쯧쯧

삶은 달걀이나 까묵어야겠네요,

옴마야 우야노 이거 쌩달걀을 가왔네요~'


산객들 소란에 미소 지으며

삼도봉 향해 나아갑니다.



반야봉 정상 풍경


반야봉 내려 삼도봉 가는 길

이웃집 마실 가듯

멀지도 험하지도 않았습니다.


낫날봉, 날나리봉으로 불리었던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3개 도가 만나는 삼도봉


지척의 반야봉 풍만한 모습 드러내고

아득히 펼쳐진 산 겹겹

흰구름 피어 흘러가는데


구름 사이 떠가는 산들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에

킬킬대며 맛난 점심 나눕니다.



삼도봉에서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와

뱀사골로 좌틀,


빠지지 않고 직진으로 20km 더 가면 천왕봉

가지 않은 그 지난할 길

잠시 더듬어봅니다.


지리산 돌아 내린 물줄기는

북으로 뱀사골, 심원계곡 흘러 경호강, 남강 되고

남으로 흐른 물은 피아골 거쳐 섬진강 합류하지요.



화개재


뱀사골,

장장 12km에 달하는 지리산 계곡으로

뱀과 뱀사(蛇) 두 글자 합쳐졌으니

처갓집, 역전앞 같은 뉘앙스인데

뱀이 죽은 곳이라 하여 뱀사(死)라고도 쓴답니다.


미리 공부하여

예상하고 각오해서 그런지

지루할 정도로 길다는 계곡이

오히려 오밀조밀 아기자기 다가옵니다.


옆에 두고 걸으며

듣보기만 하던 물물물

온몸 땀에 젖어


'에라 모르겠다~'


참지 못하고 풍덩,

한방에 피로가 달아나며

원기 충천 살 것 같습니다.



잠깐 풍덩


원활한 차량 회수와 시간 절약 위해

5명을 1,2진으로 나누었는데

얼떨결에 선발에 끼어

구름 타고 다니는 친구 뒤를

낑낑대며 쫓아갔습니다.


명불허전이라고,

뱀사골 골골이 펼쳐지며

간장소, 제승대, 선인대, 요룡대, 탁용소, 병풍소,

이름 붙이는 대로 명승지가 되는

암반 위로 흐르는 소와 담이 장관입니다.


특히 뱀사골 가을 단풍이

최고 절경이라지요



명불허전 뱀사골


하류로 갈수록

강폭 넓어지며

기암괴석 사이 수량 넘쳐나고


계곡 가득 채운 거대 암반이며

바위에 올라탄 고목이며

기기묘묘 돌과 나무 눈길 끕니다.



뱀사골 풍경


날머리는 관광객과 차량들로 가득하고

특히 경상도 사투리 넘쳐나는데

택시 기사 말 들으니 부산 분들이 많이 오신다는군요.


카니발 세워둔 성삼재 휴게소 닿으니

주차장은 차 한 대 들일 수 없을 정도로 만차 상태,


새벽어둠에 가려져 있던 노고단과 반야봉

밝은 태양 푸른 하늘 아래

초록초록 빛나고 있습니다.



성삼재에서 본 반야봉


동네 주민 소개받은 지리산 흑돼지 집

큰 일한 친구들과 담소 나누며

반주로 마시는 소폭이 꿀보다 달았습니다.



흑돼지구이집


한 발 한 발

어둠 뚫고


저 산만

넘어가면



감춰진 태양

숨겨진 대지

찬란히 빛나고


銀馬 하나

구름 타고

힘차게 달려오겠지요


삼도봉에서


*2022년 6월 20일 전날 밤에 출발하여 친구들과 야간산행으로 올랐으며 화창하고 총명한 날씨였습니다.
*성삼재~돼지령~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화개재~뱀사골~반선, 총 19.2km 8시간 동안 친구들과 잊지 못할 남도 소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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