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며 경관이 우수한 지역을 인증하는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최소 규모의 국립공원이기도 하지요.
주왕산 소나무
아름다운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본디 '석병산'이라 불렸습니다.
전설에 의해 이름이 주왕산으로 바뀌었다는데 어감은 나쁘지 않지만, 그 내용이 썩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위키백과를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중국 당나라 사람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을 공격했다 패한 후 요동으로 도망쳐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데, 이 사람을 주왕(周王)이라고 한다.
주왕은 반란이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산으로 피신했다. 그는 산 입구의 주방천 협곡에 산성(자하성)을 쌓고 재기를 노린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 그를 잡아달라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 형제를 필두로 진압군을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린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하러 나왔다가 마 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고려 태조 2년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고 주왕굴 앞의 주왕암은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
멀리 이곳까지 도피하였다가
최후를 맞은 주왕이 꿈꾸었을 세상과
그의 참담하고 한둔한 삶이 동정은 가지만,
굳이 '석병산'이란 원래 이름 바꾸어가며
중국인의 이름 따 '주왕산'이라 부를 이유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신라장군의 이름을 따 '일성산'이라 하면 모를까요.
더군다나 최근 '코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보며 편치 않던 마음이 예까지 이어졌지요.
전설의 고향 하나 더 엮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주왕산 기암
10여 년 전 대구 근무 시, 영화에 감동받아 주산지 보러 몇 번 와본 적 있었습니다.
사과단지며 주변 식당가가 늘어선 풍경들이 그때와 크게 바뀌지 않아 보였습니다.
산 입구에서 만나는 단아한 대전사(大典寺)와
그 뒤로 보이는 일곱 봉우리 거대 기암(旗巖)이
한 폭의 정갈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유치환 선생의 '깃발' 연상됩니다.
대전사와 기암
주왕산의 압권은 기암절벽과 폭포, 협곡입니다.
협곡은 내려오며 편안히 만나기 위해 반시계 방향으로 길을 잡습니다.
대전사 지나 우측 '주봉마루길' 따라 '청련등' 거쳐 정상인 '주봉'까지 2.3km 이어지지요.
국립공원답게 등산로는 소나무 군락 사이 나무계단과 아담한 오솔길로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조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서 멀리 혈암과 장군봉과 기암이,
바로 앞에는 연화봉, 병풍바위와 급수대 등 기암괴석의 바위 군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습니다.
주왕산 등산로
영하 2도로 하늘은 맑았지만,
산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세서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습니다.
주봉 가는 길은 가끔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졌고, 잦은 낙뢰로 인한 고사목들이 여기저기 누워있습니다.
송림이 무성해 송이버섯이 많이 자란다지만, 어렵던 시절 송진 채취로 상처 남은 소나무들은 오랜 세월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흔들 아프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봉 오르는 길
정상인 주봉은 동그랗고 아담한 마당 이루고 있습니다.
잠시 인증 하고 바람과 추위 피해 봉우리 아래 자리 폈습니다.
부인들이 바리바리 준비해온 음식들이며
놀랍게도 홍어, 참치회까지 곁들인 풍성한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바닷가에서 육고기는 많이 먹었지만, 산에서 생선회를 먹는다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지요.
겨울산의 따끈한 컵라면은 항상 옳았고, 소주 한잔은 속을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백산 중 반을 부인과 함께 했다는 친구 부부의 예쁘고 화목한 삶이 빛났습니다.
정상 풍경
손이 얼어붙어 맛난 음식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털었습니다.
정상에서 계곡 입구 '후리메기(주왕 군사들이 훈련하던 나무)'까지는 칼날이 아니라 다행인 '칼등 고개'라는 지명의 높고 좁은 능선길 이어집니다.
휘리리링~
허공의 매운바람이 가뭄으로 눈 한 조각 없는 겨울산 속살을 거칠게 헤집어놓습니다.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며 '사창골'이란 다소 야리꾸리한 이름의 좁은 계곡이 시작되고,
얼어붙은 물과 뿌리 드러낸 나무들 스산한 겨울 풍경 한참 이어졌지요.
하산길 계곡
드디어 주왕산 하이라이트 나타납니다.
수만만 년 시간이 빚어낸 절경이지요.
물살에 침식되어 폭포가 점차 뒤로 움직이며 생긴 하식동굴과
그렇다면 지금도 계속 뒤로 밀려나고 있을 용연 폭포 만납니다.
쌍용추 폭포라고도 하는 이곳은 온통 얼어붙은 채 시간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용연폭포
평소 관광객 줄 선다는 '용추 협곡' 시작됩니다.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올라 쿵하고 나타나는 아득히 높고 깊은 협곡,
그 사이로 흐르는 폭포와 물줄기가 원시적 태고로 풍경 돌려놓습니다.
계곡은 얼었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는 물소리는 경쾌했지요.
동심원 이루며 얼어져 나간 폭포수가 아름답습니다.
한참을 취해 계곡 한번 하늘 한번 쳐다봅니다.
주윤발 주연 무협영화 '황후화'에서 자객들 뛰어내리던 검은 계곡과 흡사합니다.
용추협곡
협곡 끝나며 아득이 솟아있는 시루봉, 학소대, 망월대, 급수대 주상절리 감탄 자아냅니다.
대가의 예술작품 감상하듯 천천히 계곡 들러보았지요.
부드러운 무장애 숲길 개울 따라 이어졌고 대전사로 원점 회귀하여, 사과막걸리로 목 축입니다.
기암괴석과 대전사
주왕산 별책부록으로
버드나무 못, 주산지로 향했습니다.
영덕 방향을 차로 10여분 갑니다.
산로 따라 20여분 오르다 보면 산에 둘러싸인 그림 같은 호수 펼쳐지는데,
물밖으로 몸 내민 왕버들나무의 시린 아랫도리가 저수지에 얼어붙어있습니다.
산에 둘러싸인 주산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으로 유명해진 곳이지요.
영화에는 호수 한가운데 암자가 그림처럼 떠 있지만, 주민들의 식수원인지라 철거되었답니다.
물안개 피고 고색창연한 주산지의 사계를 아름답게 보여준 영화이지요.
철없는 동자승이 장난 삼아 주왕산 폭포에서 개구리, 피라미, 뱀에게 돌을 매달며 킬킬대며 장난치던 모습과 업보를 덜기 위해 부처님상을 부여안고 맷돌 등에 달고 얼어붙은 호수 지나 산을 오르는 주인공의 처절한 간구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생각 없는 하찮은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는 생사가 걸린 일이라는 걸, 고행을 통해 하나가 깨달을 때쯤이면 또 얼빵한 중생 하나 태어나 이를 반복하니 세상이 온통 고해 덩어리라는 것이겠지요.
묵직한 울림 주는 주산지였습니다.
영화에서 캡쳐
얼어붙은 주산지
서울 향하는 차에서 다음 산 의논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 놀러 가는 계획 짜는 것이고, 그 보다 재미있는 것은 놀러 가서 다음 놀러 갈 계획 짜는 것이라 했던가요.
그런 대화가 차 안에서 오고 갔습니다.
자주 쓰면 진화하는 건지,
많이 쓰면 퇴화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2일 2산이 견딜만했습니다.
주산지의 일몰
꿈이로구나
꿈이로구나
화산재 끓던 백악기
붉은 피 환생 수달래
심심 협곡
주왕산 돌아보니
거칠 것 없던
질풍노도
귀밑머리 푸른
화양연화
높은 이상
깊은 신념
겁 없던 순간
빛나던 시절
암울한 방황
모두 찰나이고
모두 부질없는
그저
스치는 바람
고운 님 말곤
꿈이었어야 하는
모든 것
정녕
꿈이로구나
꿈이더라
*2022년 2월 6일 하늘은 푸르고 날은 찼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대전사~청련등~주봉~칼등고개~후리메기~용연폭표~용추협곡~대전사 원점회귀 총 10km, 4시간 50분의 산행과 주산지 산책이었습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있는 초중급 코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