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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오른 산 100산심론 상
오대산, 눈 덮인 아침 숲 걷노라면
백산심론(百山心論) 1강 7장 7산 오대산 노인봉
by
여의강
Mar 3. 2023
눈비 온다,
견뎌야겠다
바람 분다,
살아야겠다
눈물 난다,
웃어야겠다
山이다
안아야겠다
횟집서 본 동해바다
오대산 노인봉(1338m)을 다녀왔습니다.
전날 주문진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고교 때 만나 수십 년 지내온 친구들입니다.
강릉에 둥지 튼 친구의 안내로 주문진의 술맛 나는 바닷가 횟집에 모였습니다.
좋은 안주, 기막힌 분위기, 막역한 친구들과
무한정 들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산행 생각해 자제했지요.
늦도록 얘기하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새벽입니다.
아쉽게도 산타는 친구들 없어 혼자 출발합니다.
주문진
0630 오대산으로 향하는 길,
백미러로 동해의 검붉은 태양이 기지개 켜며 따라왔습니다.
전면의 검푸른 하늘에는 더 검은 산줄기가 능선을 드러내고 있더군요.
구불구불 차를 몰아
산길
오릅니다.
검푸른 하늘, 검은 능선
0720 들머리 진고개 정상 휴게소 도착했습니다.
영하 9도의 이른 시간, 주차장은 텅 비어있습니다.
차디찬 겨울바람만이 빈 광장 지나 힘겹게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없는 들머리는 처음 경험합니다.
갑자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앞서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몰려오더군요.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미끄러져 혼자 다치기라도 하면,...'
어지러운 생각 떨치며 심호흡 하고, 용기 내 짐 꾸렸습니다.
텅 빈 진고개와 들머리
오대산은 전형적인 육산입니다.
서쪽의 비로봉(1565m)과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 및 그 일대의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 오대산지구'와 동쪽의 노인봉 일대 '강릉 소금강지구'로 나뉩니다.
두 곳 모두 블야 백산에 포함되어있습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을 거쳐 소금강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겨울철에는 위험하고 차량 회수도 문제가 있어 통상 정상 왕복하는 코스 많이 이용합니다.
오대산 안내도
길이 '질어서' 혹은 '길어서' 진고개라 불리지요.
이곳 등산로 입구 계단 올라서면, 침식작용 받은 평탄면이 융기하여 높은 고도에 위치한 '고위평탄면' 시작됩니다.
드높은 산 중턱에 거대한 평원 펼쳐지고, 그 사이 외로운 길 하나 한가로이 흘러갑니다.
고위평탄면
삼림 속으로 목재 계단이 끝없이 올라갑니다.
잠시 쉼터 만나 아이젠 착용하고 가파른 오르막 지나 산허리 만나니 완만한 능선길 이어집니다
.
멧돼지 한 마리
툭
튀어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계단을 올라 능선길
신갈나무 소나무 가득한 숲 사이로 호젓한 눈길 나타납니다.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가는 산새 날갯짓 소리와 눈 밟히는 소리, 숨소리 외에는 정적만이 깃들어 있는 경건하기까지 한 신비의 아침 숲길이더군요.
눈에 드리운 겨울나무 그림자가 고즈넉한 풍경 만들어냈습니다.
오랜만에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뽀드드득 뽀드드득' 눈 밟는 소리에
'또옥 또옥똑' 앞서가는
'빨간 구두 아가씨'가 보일 듯도 했고요.
눈덮인 아침 숲
위로 갈수록 볕이 잘 들어 오히려 포근했습니다.
정상 앞두고 나올 법한 깔딱 고개도 없이 산등성이 돌아 돌아 유순한 산길 이어지다 소금강 삼거리 만납니다.
노인봉 향하는 양지바른 오르막에는 여기저기 철쭉들이 작은 봉오리 피워내고 있더군요.
노인봉 오르는 길
정상에 바위 군락 나타납니다.
멀리서 보면 이 모습이 백발노인 같다 해서 노인봉(老人峰)이라 부른다지요.
남동으론 황병산 능선과 가려진 소금강 계곡 그리고 저 멀리 경포대가 아련히 떠오릅니다.
반대로는 비로봉을 비롯한 오대산 봉우리들 장쾌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황병산 능선과 오대산 봉우리, 노인봉 정상
아스라이 산그리메 바라보다 인증하고 하산합니다.
한참을 내려가서야 올라오는 산객들 띄엄띄엄 마주치더군요.
자작나무 군락이며 짐승 발자국이며 오를 때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자작나무 군락
다시 고위평탄면에 내려섰습니다.
눈 덮인 산 향해 평화롭고 한가로이 이어진 시골길이 나그네 마음 따듯하게 해 주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엔 각시취가 수줍은 모습으로 겨울을 견디고 있었고 주차장에는 제법 차들이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한 호젓한 산행이었습니다.
고위평탄면, 각시취 군락, 진고개 휴게소
견디다 보면
살다 보면
눈물 젖어
웃다 보면,
한 山
한 山
품다 보면
꿈꾸던 날
하루는
만나겠지요.
겨울 각시취
*2022년 2월 10일 날은 찼지만 하늘은 맑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봄날 같았습니다.
*진고개~고위평탄면~계단오르막~쉼터~오르막능선~소금강삼거리~노인봉~원점회귀 8.1km 3시간 남짓으로 한두 군데 오르막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하여 초보자에게도 좋은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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