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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오른 산 100산심론 상
수락산,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백산심론(百山心論) 1강 8장 8산 수락산
by
여의강
Mar 3. 2023
'빼앗아도
자빠뜨리진 못한다
자빠져도
무너지진 않는다
무너뜨리려면
숨을 끊어야 할 것이다
숨이 다하면
푸른 바람 되어
하늘에서 지켜보리라'
계유정난 피해
수락산에 몸을 맡긴
매월당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가을 수락산
수락산(637m)을 다녀왔습니다.
젊어 상계동 살 때 출퇴근하며 늘 마주했고,
자주 오르기도 했던 친근한 산이지요.
지난 가을에도 장암역에서 저 유명한 기차 바위 지나 종주산행 했습니다.
당시 산기슭에 피었던 슬픈 전설의 며느리밥풀꽃이며 짙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빛나던 암릉들 눈에 선하네요.
초가을 기차 바위와 암릉
수락산(水落山),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서 물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하고
,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이 떨어지면 바위가 튀어나온다'하여 봄을 상징하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있으며, 서쪽에는 도봉산 남쪽에는 불암산이 위치한 서울의 명산 중 하나이지요.
수락산 봉우리
0630 집을 나섰습니다.
영하 9도의 쨍한 날입니다.
복잡한 일로 골치가 아팠지만, 퍼져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산을 오르며 고민해 보기로 했습니다.
예전 자주 오르던 수락 아파트를 들머리로 하고, 수락산 풍광 넉넉히 볼 수 있다는 초행의 청학골을 하산길로 잡았습니다.
당일 점약 장소인 상계역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요.
0740 수락산역 나와서 예전 살던 곳 지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많이 변해 그때 즐겨 다니던 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건물과 식당들과 거리가 생소했습니다.
들머리 가까이 가니 매월당 김시습의 '수락산의 남은 노을(水落殘照)'이란 시가 돌기둥에 새겨져 있네요.
'한 점 두 점 떨어지는 노을 저 멀리
서너 마리 외로운 따오기 돌아온다~
'
김시습 시비
산자락에는 언제 생겼는지 막걸리 좋아하시던 천상병 시인의 공원도 보입니다.
수락산 근처에서 신혼 생활 하셨다더군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의 '귀천' 한 소절 떠올리며,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행복'이란 시 앞에 한참 섰습니다.
행복
정상 가는 갈림길, 계곡길은 지난번 하산 코스였기에 이번엔 능선길 택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소나무 신갈나무 숲 지나 한참 가다 보니 드디어 전망 트이고 멀리 도봉산 북한산 능선이,
바로 옆의 불암산과 함께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 밑엔 아파트가 참 많기도 하더군요.
가야 할 수락산 정상과 근처 바위 군락도 위엄 자랑하고 있습니다.
능선 오르는 길과 주변 전망
걷다 보니 기억 되살아납니다.
새로 전망대 설치된 바위가 옛날 후배와 막걸리 마시던 장소란 걸 알겠습니다.
즐겨 걷던 능선 위 정겨운 오솔길 지납니다.
따듯한 햇살 길 위에 퍼지며 겨울과 이별 준비하고 있더군요.
능선 오솔길
예전엔 가파른 암릉길이었지만 지금은 계단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 오릅니다.
인공계단이 탐탁지는 않아도 무수한 산객들로 흙과 바워가 여기저기 파이고 깎여나가는 걸 보니 후손들 위해 수긍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옛날 막걸리 마시고 오를 땐 멀게만 느껴졌던 정상가는 길, 이번엔 그리 길어 보이지 않더군요.
오히려 치마바위 코끼리바위 철모바위 같은 기암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 달리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치마바위, 철모바위, 코끼리바위 등
정상 근처 허름한 주막집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인심 좋은 주모가 항아리 휘휘 저어 묵은 김치에 탁배기 한 사발 터억 내놓으며 육자배기라도 한가락 뽑을 듯한 분위기입니다.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잊어 휘휘감돌아 돌거나 헤~'
정상가는 길 주막
암릉 몇 개 더 오르내려 주봉 도착합니다.
정상은 멋진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석은 큰 바위틈에
겨우
낑겨있습니다
.
크고 멋진 정상석은 헬기로 옮기지만 작은 것들은 직접 메고 나른다 하니 지고 왔을 이의 수고가 느껴집니다
.
들머리에서
한
산객이
반대편 기차 바워 등산로 묻길래 길을 가르쳐드렸는데 예서 다시 만났습니다.
반가움에 서로 정상 인증을 해주었지요.
정상석 위로 휘날리는 찢어진 태극기가 맘 아프더군요.
관악산도 그렇고 여러 산의 국기봉 국기들이 잘 관리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정상석과 정상 풍경
하산은 계획대로 청학골로 잡았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입니다.
음지인지라 눈이 가득했고 얼음도 많았지요.
좁고 가파른 산골에 독경소리 가득합니다.
'조선 정조가 대를 이을 세자가 없어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 이곳 스님들이 기원한 결과 왕세자(순조)가 태어났다'는 일화를 가진 내원암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더군요.
눈 덮인 계곡과 내원암
암자 옆 얼어붙은 금류폭포
수직에 가까운 돌계단 내려 올려다보는 모습 장관이더군요.
투둑 투둑 녹은 얼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머
지않은 곳에 은류, 옥류폭포도
이어져
있습니다.
금류폭포
신갈나무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즐비한 길 아기자기 이어집니다.
하나 가득 짐 지고 계단 오르는 분들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
물 많은 여름 풍광 좋을 계곡길로 수십 분 더 내려와 날머리 만났습니다.
겨울을 녹이고 있는 작은 개울 하나 보입니다.
짐진 이와 날머리 개울
산은 수많은 얼굴을 갖고 있지요.
언제 어디로 오르내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치니까요.
계절 따라, 시간 따라, 코스 따라, 날씨 따라, 동행하는 이 따라, 기분 따라,...
그러니 어느 하루 바삐 오르내린 것만으로 함부로 그 산을 다 안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다음엔 또 다를 모습의 산을(에) 잠시 품었(겼)다 온 것뿐이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다 하나의 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행히 시간 맞추어 반가운 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순창 순댓국과 막걸리가, 가까워서 참 좋은 수락산과 함께 일품인 산행이었습니다.
떠날 때의 고민도 많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날머리
안 되는 것
미련 접고
잘하는 것
온 힘 다해
상어는
물속에서
늑대는
산속에서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잘 하자
정상가는 길 낙락장송
*2022년 2월 17일 영하 9도로 쨍했지만 하늘은 맑았습니다.
*수락산역~귀연암~도솔봉~치마바워~코끼리바워~철모바워~정상~내원암~금류폭포~청학골
, 8.7km 3시간 40분으로 정상 근처 암릉이 좀 어렵지만 천천히 오른다면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초중급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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