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방산, 구름 타고 바람 따라

백산심론(百山心論) 1강 5장 5산 계방산

구비구비 휘돌아서

운두령(雲頭嶺) 마주했네

조는 구름 깨워 타고

계방산 올라보니

사방천지 눈꽃으로

딴 세상 열렸구려

세상은,

그대들 가져가소

이내 몸,

신선되어 여기서 살려하니

새 세상 눈꽃 세상

계방산(1577m)을 다녀왔습니다.

매월 정기적인 과(科) OB등산모임

0710 신사역 3명 산악회 버스 타고

부산서 출발한 31번 국도 만나,

돌고 돌아 닿은 평창과 홍천 잇는 운두령

작은 주차장은 이미 만석

도로까지 겨울 산객 넘쳐났고

강릉 선배가 커피와 한과로 힘 돋아주셨습니다.

운두령

계방산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겨울 명산으로

국내에서 5번째 높은데,

계수나무 계(桂) 자와 향기 방(芳) 자 씁니다.

눈 덮인 계방산 정상

우리가 잘 아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에서,

'계수나무'는 중국 설화에서 유래된 '계수(桂樹 혹은 목서)'이지,

일본에서 넘어온 이파리 둥근 그 '계수나무'가 아니랍니다.

'계수'는 가을에 살구 자두 냄새의 꽃이 피는 나무로

그 달콤한 향이 만리를 간다 하여

만리향 혹은 금목서라고도 부릅니다.

어쨌거나 '계수 향'이란 뜻의 '계방산(桂芳山)에

계수도 계수나무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여,

상상으로 전설의 고향(19금)을 엮어보았는데 글 말미에 소개하겠습니다.

계방산 안내도

들머리 계단 지나 완만한 등산로 이어집니다.

물푸레나무 군락 사이

파란 하늘

흰구름 하나 한가로이 떠가는데

날은 쨍하니 추웠고

오르는 길 멀리 하얀 능선 피어납니다.

들머리, 물푸레나무 군락, 등산로

한 시간 남짓 오르면,

눈꽃 피운 나무들과 상고대

짠~하고 나타납니다.

하늘과 어우러진 겨울나무 흰 가지

딴 세상인듯 봉긋봉긋

몽환적 분위기 취한 산객들

허공 울리는 감탄사

'세상에나, 세상에나,...'

상고대와 눈꽃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했던가요?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신비로움

어디부터가

눈이고 하늘인지

나무이고 구름인지

모든 것 한데 어우러져

눈 닿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으로 서 있습니다.

눈꽃으로 빚어낸

눈부신 겨울 산

이 겨울을

한없이 빛나게 했습니다.

눈 세상

눈이 깊어 쉽지 않은 길이지만

천지사방 반짝이는 겨울왕국 취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발을 옮길 수 있습니다.

좀 더 가파른 고갯길 몇 개 오르면

사방 트인 전망대 나오고,

눈 덮인 계방산 오대산 능선들

주름지어 열병합니다.

전망대 정경

정상이 코앞에 펼쳐졌습니다.

햇볕 좋고 바람자는 곳 자리 잡고

형수가 싸주신 환상의 샌드위치와

겨울 산의 별미 컵라면,

멋진 설경 맛난 음식으로

몸과 마음 따듯했지만,

날씨가 너무 차서 오래 머무를 순 없었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되어

콧물이 얼어붙어 코로는 숨쉬기도 힘든 상황이었으니까요.

능선에서 정상 가는 길

추위를 달래려 발걸음 옮깁니다.

예쁜 눈길 30분 걸어 닿은 정상

사방 불어 치는 매서운 칼바람 가릴 데 없어

몸 하나 가누기 힘들 정도로 어수선했습니다.

도저히 오래 머물 수 있는 분위기 아니기에

서둘러 인증 하고

직빵 하산 코스 잡아 바람 아래로 내려섭니다.

정상 오르는 길, 정상의 고개 숙인 산객들, 정상서 본 풍경

고도를 낮추었지만

차디찬 날씨와 엄청난 눈바람 식지 않아

무릎까지 파고드는 눈길

다시 눈보라에 덮여

러셀(선두에서 눈길을 다지면서 나아가는 일)하는 듯했고

잠시라도 멈추어 설라치면

눈과 함께 쨍하고 얼어붙는 아이젠

내리는 내내 살을 에는 바람,

볼을 후려쳐 오른뺨 얼얼했습니다.

바람과 눈의 하산길

눈과 바람의 하늘길,

그 와중에도 설경과 자연목의 어우러짐

놓치기 아쉬운 정겨운 산길 아기자기 이어집니다.

이런 멋진 능선에 이름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워 맘대로 '꽃바람(花風) 능선'이란 지명 하나 지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위로 사시사철 온갖 바람 그치지 않을 것 헤아린 것이지요.

이름을 부르니 능선은 한층 가까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안내도의 우측이 노동계곡, 가운데가 새로이 명명한 화풍 능선

내친김에 상상력 모아 '계방산'도 그려 보았습니다.

어느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

사랑하는 선남선녀 옥도령과 계향낭자

달구경 차 술과 과일 각기 들고

운두령 지나 산에 올랐습니다.

펑퍼짐 정상 위에서 푸른 달 바라보며

두 손 마주 잡고 정겨운 대화 나누었습니다.

분위기 돋우려 술 한잔 하려 주안상 펼쳤는데,

하필 술잔이며 젓가락이 없었습니다.

이에 도령이,

'무엇을 걱정하시오 낭자,

제가 잔을 만들어 한 잔 드리오리다' 하면서

호리병 들어 입안 가득 술 머금었습니다.

그리고 수줍어 앙다문 낭자 입에 조심스레

반 모금 흘려 넣고 나머지는 본인이 마셨지요.

엉겁결에 술 받아마신 낭자 얼굴 붉히며,

'그러시다면 이번엔 소녀가

저분 만들어 안주 올리겠사옵니다'하며

잘 익은 대추 한 알 입에 동그라니 물어

도령 입에 넣어주니

연인의 입과 몸은 어언 하나가 되었습니다.

달에서 침 삼키며 내려다보던 옥토끼

푸휴후하고 긴 한숨 뿜어내니 그 바람에

달나라 계수 꽃 우두두두 떨어졌습니다.

때마침 쏟아져내린 교교한 달빛 실려

아득한 계수 향 사방에 흩날렸으니

달과 산과 연인은 하나 되어

오래오래 떨어질 줄 몰랐답니다.

이에 후세 사람들이 사랑하는 남녀가

이 산에 올라 달 아래 입술주 마시면

항상 살구 자두 냄새 같은 계수 향이

산 전체에 그윽하게 전해진다 하여

이름을 '계방산'이라 불렀더이다 그려~

한겨울이지만 계수향 휘날리는 듯

긴 내리막이 이어졌습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숲과

이 산에 칡이 없는 이유 설명하는 권대감 바위며

조릿대 가득한 양지머리 지나니

아스라이 높은 두 산사이로 깊게 형성된

눈 덮인 마을과 31번 국도가 보입니다.

눈 구경 바람 구경 실컷 하고

얼큰한 콩나물국, 족발과 소주 앞에 마주 않은

서울에서의 뒤풀이도 뿌듯한 산행이었습니다.

계방산을 떠난 달은

도심 위를 저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산길과 도심의 푸른 달

화풍 능선 바람 따라

나르는 듯 구르는 듯

하얀 눈길 깊은 눈길

구름처럼 거니는데

어디선가 전해오는

살구 자두 계수 내음

바람아,

내 잔에도

넘치도록 따라보소

우리 님

고운 입술

고이고이 품어보게

눈꼿 계방산

*2022년 2월 5일 다녀왔습니다.

정상은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였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지만 하늘은 맑았습니다.

*운두령 1086 고지에서 시작하여 1166봉~1492봉~정상~화풍능선~아래삼거리 총 8.3km 쉬매 놀매 총 5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