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야산, 기다림이 찬란함으로 피어나는

백산심론(百山心論) 2강 1장 11산 가야산

by 여의강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다려라


기회는 올지니

세는 바뀔지니


어설피 실망말고

함부로 분노말고


때를 기다리며

한발씩 나아가며

힘을 모아라


저어하라

저어하라

저어하라



해인사 연등


합천 가야산(1433m)을 다녀왔습니다.


검은 시간 속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붉은 태양이

기어코 떠오르듯이,


긴 겨울 한가운데선 전혀 잡히지 않을 듯한

찬란한 봄이

언뜻 다가오듯이,


오랜 기다림 중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던

황홀한 시간을

드디어 조우하듯이,


끝없는 오솔길에선 도저히 연상될 수 없었던

멋진 기암 봉우리를

문득 알현하게 되는


그런 산이었습니다.



봉천대


가야산은 경남 합천군 ·거창군과 경북 성주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흔히 가야산은 해인사,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져 있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가야산의 명칭은 합천과 고령 지방이 대가야국에서 최고(最高)의 산이었기 때문에 ‘가야의 산’으로 불렸다는 설과, 인도의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Buddhagaya)에 있는 신성한 산인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도 가야산 정상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나라의 가야산은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 우두산(牛頭山)으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불교 범어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는데 가야산은 불교 성지란 의미를 갖는다지요.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의 상왕은 모든 부처를 뜻한답니다.


가야산은 예부터 해동의 10 승지 또는 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종찰 해인사로 잘 알려진 산이지요.



가야산 해인사


0630 양재역,

4명이 친구의 애마 카니발로 출발

일요일이지만 새벽 고속도로는 한산했습니다.


참외의 고장 성주 지나 가야산 장엄한 봉우리들 바라보며 합천 해인사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는 찬바람에 몸이 시렸지만 곧 적응이 되었습니다.



새벽 고속도로와 가야산 능선


해인사 극락교 지나 등산 1코스로 접어들었습니다.


봄이 깨어 흐르는 토신골 끼고 조릿대 무성한 산길 걷습니다. 혼자 생각하며, 친구와 대화하며 혹은 연인과 속삭이며 걷기 좋은 오붓한 길이 이어지더군요.


초봄 따듯한 햇살이 조릿대 이파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지만, 전날 월악산 다녀온지라 몸이 아직 풀리지 않아 오르는 발걸음은 좀 무거웠지요.



등산로 초입


조릿대,

벼과에 속하는 키 작은 대나무로 '조리 만드는 대나무'라는 뜻으로 산죽(山竹)이라고도 부르지요.

청정 고결한 선비정신과 유사하며 '약초 이야기'에 따르면, 항암 살균 해독 이뇨 작용 등을 가진 약용식물로 그 효능이 산삼에 버금간다고 하니 흔하지만 귀한 식물이며, 대나무처럼 수년만에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지상부는 시들어 죽고 만답니다.


기다림과 인내의 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릿대


그런 조릿대 한없이 이어진 길 걷습니다.


때론 발목까지 오고 따론 머리까지 자란 조릿대 잎이 싱그럽습니다. 조릿대가 오솔길에 만들어 놓은 그림자가 봄의 전령처럼 아지랑이로 아른거립니다.


초입에서 친구가 가져온 수육과 과메기 펼쳐 놓고 안전산행 위한 약식 시산제를 했습니다.

그렇게 놀며 먹으며 상춘곡 부르며 완만한 경사 2시간 오르니 제법 가파른 돌길과 계단길 이어지고 거대한 암릉의 중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육산과는 전혀 다른 바위 산으로 풍경이 휙 바뀝니다.



조릿대 길과 그 끝의 암릉길


영화 '금지된 장난'의 주제곡 '로망스'가 생각납니다.


전쟁의 비참함을 군인들의 전투 장면 한 번 보여주지 않고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조망한, 한때 잘생긴 남자의 대명사이던 알랑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로'로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명장 르네 끄레망 감독의 반전 영화이지요.


'금지된 장난'에 저 유명한 OST인 '로망스'는 전편을 통해 몇 번 나오지 않습니다. 참고 참고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지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고아이자 5살 여주인공인 볼레트가 남자 친구 미셀을 부르며 울부짖으며 역(驛)를 뛰쳐나갈 때 나르시소스 예뻬소의 기타 연주가 제대로 한 번 쏟아져 나오지요.


자주 울다 보면 슬픔이 감면되듯이, 이 깨물며 참았다가 한 번에 쏟아내는 눈물이 정말 슬픈 것 아닐까요. 깊은 어둠 뒤에 맞는 새벽이 더욱 찬란한 것 아닐까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절정이 더욱 황홀한 것 아닐까요.


이런 생각으로 암릉을 대합니다.



기인 흙긹 끝 기암괴석


가야산이 그런 산인 것 같습니다.


기인 기다림 같은, 길고 완만한 조릿대 가득한 오솔길 돌길을 참고 참고 참으며 걷다 보면, 정적을 깨고 쏟아지는 로망스의 기타 선율처럼 갑자기 전혀 새로운 경관이 두둥 열리니까요.


바위 투성이 돌길 오르며, 아무 일 없어 지루하기까지 했던 그 온화한 지나온 길들이,

평화이며 아름다운 시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지나온 시간도 맞이할 시간들도 지금처럼 모두 소중하다는 깨우침이라고 해야겠지요.



조닛대길과 암릉길


중봉에서 상왕봉 가는 길,


기암괴석들 산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가야산 봉우리들과 멀리 덕유산과 지리산 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기우제 지내던 봉천대 서니 겹겹이 산그리메 주름 주름 이어집니다.


거대 암릉 타고 마지막 바위길 릿지와 계단 오르면 사방이 트이면서 드디어 상왕봉과 칠불봉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봉천대와 상왕봉 오르는 길


합천에서는 소머리처럼 생겨 우두봉이라고도 불리는 상왕봉(1430m)을, 성주에선 실측을 통해 3m 더 높은 칠불봉(1433m)을 주봉(主峰)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군의 관할에 있는 봉우리가 주봉이라는 주장이지요.


가까이 마주 보는 두 봉우리 사이 쉬 해결되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는 논쟁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왕봉과 칠불봉


암릉 가득한 상왕봉과 바로 앞 칠불봉, 만물상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가야산 능선 한껏 즐깁니다.


정상 옆에 사철 마르지 않으며 그 물이 우두봉 콧구멍 속으로 통한다는 '우비정' 만났습니다.

개구리가 살던 바위 가운데 신비의 연못은 하얗게 얼어있더군요.


중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친구들과 맛난 음식과 재밌는 대화 나누다 천천히 하산합니다.



상왕봉서 본 성주군, 우비정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띄더군요.


기암 사이로 간신히 모습 드러낸 산줄기며 햇살에 반짝이는 조릿대 이파리가 정겨웠으며, 봄을 녹이고 흐르는 토신골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간질였습니다.



기암과 토신골계곡


하산하여 홍류동 지나 예전 기억 아련한 해인사 둘러보았습니다.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602년 창건하였는데, '해인(印)'이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자 영원한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는군요.


천 년 이상 절과 함께 지내온 고목과 소원나무, 석등과 다층석탑 지나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기록유산이기도 한 팔만대장경 앞에 섭니다.


팔만대장경과 장경각은 고려 때 몽고의 침입에 따른 국난 극복을 기원하고 부처의 힘으로 몽고를 물리치기 위해 16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경판의 나무는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 등으로 바닷물에 3년간 담갔다가 소금물에 삶아 그늘에 말려 양각했다더군요.


나라 지키고자 했던 그 간절함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과학성에 다시 한번 숙연해지며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고목, 소원나무, 석탑,팔만대장경


해인사 떠나는 길 왼편으로 다시 한번 가야산의 장엄한 봉우리들이 한참을 따라왔습니다.


80산 친구에게 등산에 관한 조언 들으며 동해 산불을 걱정하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금방 수지에 도착하였고, 푸짐한 순댓국에 소주 한잔으로 마무리합니다.


친구와 함께한 산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가야산 능선


기다림이 익으면

잔란함으로

피어나리라


기다리며

저어하며

한발씩 걷다보면


기다림은

언뜻

찬란한 빛이 되리라



기다림


*2022년 3월 5일 바람이 약간 불었지만 따듯한 봄날이었습니다.

*해인사~극락교~토신골~중봉~봉천대~상왕봉~원점회귀, 7.8km 약 5시간의 봄소풍이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이 오른 山, 100산심론(百山心論) 1강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