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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흰 구름 따라 한잔 술 따라

백산심론(百山心論) 2강 8장 17산 백운산(동강)

by 여의강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꺽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에 거적 덮어 주리어 메어가나

유소 보장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더욱새 덥가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곳 갈작시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솔히 바람 불제

뉘 한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 우에

잔나비 파람 불제 뉘우친들 어쩌리


-송강 정철, 장진주사(將進酒辭)



정상 흰구름


동강 백운산(883.5m)을 다녀왔습니다.


동강 줄기 아스라이 내려보며

푸른 하늘 떠가는 흰구름 만끽하였습니다.


한 산의 감흥이 깨기도 전에 2차 가듯 오른 백운산은

또 다른 감동을 내주었습니다.


봄 백운산의 상징인 할미꽃은 보지 못했지만,

끝없이 가파른 등산길이 오히려 매력적이었고

흘러가는 구름과 강줄기, 노오란 생강나무 꽃과 얼크러진 다래덩굴,

멋진 친구들이 함께 하여 즐거운 산이었습니다.



절벽 아래 동강


백운산은 강원 정선과 평창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흰구름이 끼여 있다고 하여 백운산이고 지역 주민들은 '배비랑산' 또는 '배구랑산'이라고도 부른다지요.


정선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동강(東江)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한 급경사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네이버 지식백과)



동강


덕항산을 출발, 길가 식당에서 강원도 특산인 옹심이로 간단 요기를 했습니다.

태백을 출발한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아리랑과 물의 고장 정선을 지나더군요.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정선 아리랑을 정말 맛깔나게 불러주던 후배가 생각났습니다


깊은 오지이던 정선은 멀리서 보기에 예와 달리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식당과 정선읍


방태산을 시작으로 주왕산과 가야산에 이어 이번 산행까지 벌써 5산을 같이 한 친구들은 모두 수십 년 만에 만난 고교동기들입니다.


이미 백산 대학 80개 전후를 마친 대선배들로 백산 초보인 저로서는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고 있지요.


성큼성큼 산을 오르며 길을 잡아주고 망가진 스틱을 고쳐주는 바른생활 사나이 '맥가이버 정'과 맛나고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고 등산 전중후를 한잔 술과 함께하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이자 웃음과 여유가 넘치는 '풍류 박', 차량을 제공하고 전체 일정을 무리 없이 조율하는 조용하면서도 유머 있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캡틴 배'(친구들, 무단 작명을 용서하시게~)


친구와 함께 하면 늘 즐겁고 마음이 놓이는 산행이 됩니다.



늘 좋은 친구들


좁은 산길로 접어들면서 출렁이는 동강 찬 물결이 나타납니다.

예서 영월까지 래프팅 하던 생각에 몸이 시려오더군요.


강을 따라 들어갈수록 굽이치는 물줄기가 멀리 산봉우리들과 어울려 베트남이나 중국 오지 마을처럼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동강과 백운산 줄기


1330,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백운산 들머리 문희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오후라 주차장은 썰렁했고 서울 회귀를 준비하는 산악회 버스 한 대만 덩그러니 서있더군요.


백운산이란 동명 이산은 전국에 여럿 있지요.

흰구름 쉬어가는 산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까요?


이곳 동강 백운산은 봄철 할미꽃이 유명하고

산세가 험하기로도 소문난 곳입니다.


등산 안내판에서 '급경사'로 올라 '완경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경관이 수려하다는 칠족령길은 자칫 늦어져 날이 어두워질까 최단로로 의견을 모은 것이지요.


잘 조경된 펜션 지나 조금 오르니 급경사, 완경사 갈림길 나옵니다.



동강 할미꽃(네이버)
들머리


그리고 예고편도 없이 곧바로 쫄깃쫄깃한 급경사가 시작되더군요.


무채색 나무들이 성글어있는 겨울 숲 사이 가파른 흙길 돌길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양지바른 돌 틈에 숨어 핀다는 할미꽃을 찾았지만

최근 무분별한 채취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좋다는 소문 때문이겠지요.

백운산에 있어 아름다운 꽃을 굳이 자기 소관으로 가두려는 인간들의 심보가 미워지더군요.


대신 산비탈에 곱게 핀 노란색 생강나무 꽃이

험한 산길 힘들어하는 산객을 방긋 위로해 줍니다.


돌아보니 동강 굽은 물줄기가 아스라이 산 발치 돌아나가며 푸른 등근육 꿈틀댑니다.



급경사길 전경과 생강나무꽃


'숨이 쉬어지고 다리가 움직이면 갈 수 있는 거다. 여기서 멈추는 건 정신력의 문제야.'


스스로 최면을 걸어 쉬고 싶은 마음 다독입니다.


그렇게 깎아지른 산길을 1시간 여 오르니 능선길 만나고, 가파른 절벽길 400m를 흔들리며 올라가니 뭉게구름 걸린 정상이 펼쳐지더군요.


산바람 강바람이 푸른 하늘 흰구름을 한가로이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능선 정상가는 길, 정상 흰구름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무심히 무상히 흩어지는 구름 바라보노라니,

박종화 선생의 대하소설 '자고 가는 저 구름아'에서 송강을 사모한 여인 강아가 그의 무덤 앞에서 목놓아 불렀다던 '장진주사'가 떠오르더군요.


산을 휘감아나가는 동강 줄기와 떠가는 구름을

여인의 노래에 담아

한잔 술 불러봅니다.



정상서 바라본 풍경


인증하고 완경사로 하산길 잡으며 '완경사로'라는 이정표를 보니, 그래선 안되지만 참았던 지적(指摘) 본능이 올라오더군요.


'이 멋진 산길을 겨우 <급경사, 완경사>로 밋밋하게 부르는 것이 좀 아쉽네.

<생강나무길, 다래넝쿨길 혹은 흰구름길>이라 하고 괄호에 경사도를 넣어주면 훨씬 정감이 갈 텐데.'


바람을 피해 능선 아래 따듯한 곳에 한 상 차렸습니다.

이제 두 번째 산의 하산길이니 급한 마음 내려놓고, 오히려 허전한 마음에 '풍류 박'이 준비한 골뱅이, 육포, 현미 주먹밥과 빨간딱지로 장진주사에 화답합니다.



빨간딱지와


기기묘묘한 나무들 간신히 기대어 있는 동강 절벽길 지나 완경사 하산길 접어듭니다.


올라오던 급경사로 비해 큰 차이 없이 가파른 길이고 오히려 눈이 녹아 미끄럽기까지 하더군요.


낙엽 가득 쌓인 길 지나니 아름드리나무들 쓰러져 있고 덩굴나무가 큰 나무를 칭칭 감아 오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몸을 몇 번이나 꼬며 말아 올린 다래 넝쿨이 산길에 누워있습니다.

얼마나 좋으면 저리도 온몸을 비틀어 둘 사이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부비부비 하고 있을까요.



기기묘묘 나무들


여기저기 둥근 혹이 생긴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소나무나 참나무류, 단풍나무에서 많이 나타난다지요.

세균으로 인해 나무에 암이 걸린 것이라고도 하고 반기생성식물인 겨우살이가 나무의 양분을 빨아먹어 생긴 병이라고도 하더군요.


목공예가들은 그 희귀한 모양을 '부엉이 방귀'라 부르며 귀한 작품 소재로 사용한답니다.



나무 혹


인적 드문 내리막 길 한참 걸어 삼거리 닿습니다.


오를 땐 못 보았던 히어리가 햇살에 반짝이며

작은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동강의 물결 감상하며

차에 오르니 5시,


정확히 예상 출발시간이었습니다.



산어귀 히어리


차가 막혀도

친구와 함께하니

금방이었고


서편 하늘

붉은 태양이

산행의 뿌듯함

물들입니다


늦은 저녁

한잔 소주와 동태찌개가

흰구름 되어 피어났습니다.


귀경길


*2022년 3월 27일 덕항산에 이어 1일 2산으로 다녀왔습니다.

*동강 문희마을~급경사길~백운산 정상~완경사길~원점회귀로 6km, 3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친구들과 하루를 함께한 즐거운 봄소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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