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에서 잠시 주변 조망 후 백제 양식으로 고려 때 만들었다는 남매탑 있는 상원암으로 향합니다.
이 높은 산 중턱에 저리 큰 탑을 어찌 두 개나 쌓았을까 놀랍더군요.
두탑사이 걸린 맑은달이 계룡 8경 중 하나라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왕족 하나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고 있을 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주었더니, 호랑이는 며칠 뒤 예쁜 처녀 하나를 업어왔고. 왕족은 처녀를 고이 돌려보냈으나, 그 부모가 딸을 다른 데로 시집보낼 수 없다 하고 다시 왕족에게로 보냈으니. 왕족은 하는 수 없이 누이로 맞이하여 남매가 함께 수도하여 마침내 성도 하였고. 그들이 죽은 뒤 몸에서 많은 사리가 나와 사람들이 이 탑을 세워 오누이를 공양하였다'합니다.
아무리 전설이지만,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더군요.
상원암과 남매탑
선배 형수님의 명품 곶감으로 원기 충전하여 세 부처님 모양을 한 삼불봉 향해 가파른 길 오릅니다.
만만치 않은 계단길이었지만 한숨에 오르려 호흡 가다듬고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숨다못정!(숨이 쉬어지고 다리가 가는데 못 오르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이다)'
자작 사자성어(?)로 주문 외며 힘 돋웁니다.
삼불봉 가는 길
설경이 장관이라는 삼불봉에 서니 조망이 열립니다.
멀리 최고봉인 천황봉과 쌀개봉, 연천봉, 관음봉을 비롯한 봉봉들이 '계룡(鷄龍)'이란 산 이름처럼 한껏 몸을 키운 성난 싸움닭의 벼슬 같은 형상을 하고 연이어 용솟음쳐 꿈틀꿈틀 펼쳐져 있더군요.
반대편으론 까마득히 계룡호가 기름진 벌판 적시며 푸르게 빛나고 있습니다.
삼불봉에서
삼불봉 수직 하강하여 시작된 '자연성릉'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깊은 계곡 둘러싼 높은 봉우리들 바라보며 절벽길 따라 암릉 오르내리는 재미가 아슬아슬하면서도 쏠쏠합니다.
자연성릉에서
그러다 마주친 관음봉 오르는 길,
멀리서 봐도 절벽에 걸린 계단이 심상치 않더니
허공 딛고 하늘 떠가는 기분입니다.
까마득한 계단 수백 개 오르니 관음정으로 멋을 낸 봉우리가 나타나더군요.
푸른 하늘 아래 탁 트인 벌판과 호수가 상쾌합니다.
여기 관음정 누워 한가로이 오가는 구름 바라보면 세상사 한낱 물거품으로 보인다기에 '계악한운(鷄嶽閑雲)'이라 하여 계룡 4경으로 친다더군요.
하늘이 맑아 떠가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인지라 가슴이 뻥 뚫리며 오히려 젊은 날 호연지기가 꿈틀거렸습니다.
관음봉에서
전망 좋고양지바른 절벽 찾아 시그니쳐 샌드위치와 소시지, 컵라면, 사과로 배 채웁니다.
산에선 지방을 태우는 불쏘시개용으로 반드시 탄수화물을 먹어주어야 한다더군요.
군사시설로 출입 통제된 최고봉인 천황봉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멀리 포근히 산자락에 둘러싸인 산사를 향해 바로 동학골 깊은 계곡으로 접어듭니다.
심하게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 테크와 험준한 돌길이 이어지더군요.
젊음을 장비 삼아 무리 지어 낑낑대며 오르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습니다.
'꺄르르르 꺄르르르~'
천황봉과 동학사
큰 나무 아래 정말로 '노래하는 종달새' 닮은 푸른빛 '현호색'이 앙증맞게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신기해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묘한 형상의 괴목들도 자주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호색과 고목
수직으로 내리 꼽는 나무계단 너머 천황봉과 황적봉이 우뚝 섰습니다.
지나온 상원암과 삼불봉도 보입니다.
소나무 푸른 절벽 옆 가뭄에도 불구하고 계룡 8경 중 하나인 은선폭포가 긴 물줄기 떨구고 있더군요.
황적봉, 은선폭포
동학골 햇살 좋은 언덕엔 진달래 만개했습니다.
햇살에반짝이는짙은분홍들이
'죽어도아니눈물흘리오리다'던
소월의 역설적 서정 소환합니다.
진달래
소리 내어 흐르는 계곡물 모습 드러내며 드디어 편안한 길 나타나더군요.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가 있다면,
'동'학사는 '단'모퉁이 바로 돌면 있으려나?
아재 개그 생각하며 피식 웃어봅니다.
'동학사 구경하고 가까?'
'얘, 우린 입장료도 안 내고 위에서 내려왔으니 무단출입 하문 안되잖아, 그냥 가자,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