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비탈과 장엄한 주능선, 험악한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 9개 준령 중 최고봉이며,
동쪽 산기슭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유명한 신라 천년 사찰 석남사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가지산(加智山)은 석남사를 지은 스님의 본산인 호남의 가지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하고 까치의 옛말인 '가치'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여하튼 한자로는 지혜를 더해준다는 뜻인지라 무슨 지혜를 더해갈 수 있으려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지열이 느껴지는 날,
남쪽으로 이어진 운문산(1195m)과 연계 산행을 했습니다.
운문산 가는 길
소문처럼 산들은 높고 높았고, 주변 봉우리들은 크게 크게 이어졌으며, 계곡 역시 깊고 또 깊었습니다.
멀고도 먼 남녘 땅 경남에 위치한지라,
앞서 맞이한 계절로 일찍 영글어가는 꽃나무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산객들의 정겨운 사투리가 푸근하더군요.
가지산의 사계
가지산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남 알프스를 소개해야겠네요.
영남 알프스-
태백산맥 남쪽 끝자락 영남 중심부에 자리한 산악지대로 최고봉인 가지산과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천황산, 문복산, 고헌산 등 1000m급 준봉들이 울산과 경북(경주, 청도), 경남(밀양, 양산)의 3개 시도에 걸쳐있고 산정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산상 고원이 이국적인 곳이어서 유럽의 알프스에 빗대어 이름 지어진 곳입니다.
간월재 가는 길
이곳이 최근 핫하게 떠오른 데는 '지역 마케팅'이 일조를 했지요.
수년 전 울주군에서 9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고 인증한 산객에게 6만 5000원 상당의 기념 은화를 주는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지름 38㎜ 은화에 영남 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 그림과 '영남알프스 9봉 완등’ 문구를 새겨 넣었는데, 2021년 한 해 동안 6만 5000여 명이 도전했고, 3만 2012명이 인증을 완료했다 합니다.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완등 기념 은화
100대 명산 도전 등 블랙야크 BAC 캠페인처럼 소비자에게 목표를 주고 체험하며 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그들이 알아서 팬덤을 형성하고 자기들끼리 자가발전하는 것이 최근 마케팅 풍조인데 그와 비슷한 포맷으로 성공한 케이스라 볼 수 있겠지요.
예산 부족과 무리한 등산 경쟁을 이유로 2022년부터는 은화를 은도금 메달로 바꾸고 1일 3봉 이하 등정과 연령 제한을 하는 등 사업을 축소하여 도전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침체된 울주군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합니다.
천황산, 재약산
'들어가는 사람은 보았지만, 나오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할 정도로 오지의 험한 산들을 모아 '영남알프스'라 '이름'을 부르자비로소 그 산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이유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가지산 능선
0600 당산역
2일 5산 친구들과 합류했습니다.
첫날 가지산과 운문산,
둘째 날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입니다.
이중 가지산과 신불산이 '100대 명산' 명단에 들어있지요.
백산대 졸업생이자 산을 날아다니는 고교 산우회 동기들인지라 너무 뒤처져 일행에 피해는 주지 않을까,
연이틀 2산, 3산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고교 때 못 가본 수학여행이라 생각하고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총 8명이 두 차로 4시간 반 만에 언양시장에 도착,
인심 좋은 아지매들이 솥단지에서 내어주는 푸짐하고 구수한 소머리국밥으로 요기하고
석남사 지나 굽이굽이 산길 따라 들머리 석남터널로 향했습니다.
마침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에 섞여
어수선하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머리국밥집과 들머리 풍경
기온이 20도가 넘어 여름옷차림도 더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부서진 돌길 바위길 한참 이어지며 무리 지어 오르던 산객들의 사이가 벌어지더군요.
철쭉군락에 철쭉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산비탈 여기저기 가녀린 노랑제비꽃들 앙증맞게 바람에 날리고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들이 반겨주었습니다.
진달래와 노랑제비꽃
30분 정도 오르니 아담한 주막이 하나 보이더군요.
모든 산에는 탁배기 한 잔 걸칠 수 있는 저런 주막 한두 개 허가해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잠시 숨 고르고 중봉 향하는 계단과 비탈길 가열차게 오릅니다.
'숨다못정!(숨 쉬고 다리가 가는데 못 오르는 건 정신력 문제)'을 되뇌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지요.
주막집과 오르막
1167m 중봉과 밀양고개 거쳐 마지막 가파른 바위길과 조릿대 길 지나 1시간 40분 만에 너른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닿았습니다.
가지산을 둘러싸고 낙동정맥을 흐르는 봉우리들과 멀리 납작 엎드린 마을들 뒤로 주변 능선들이 장엄하게 파도쳐나가더군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는 정상인데도 인증객들로 붐볐습니다.
가지산 정상
정상 아래 바람 피해 돌담으로 지어진 대피소 겸 식당 지나 구름의 입구 운문산(雲門山)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