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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끊길 듯 이어지는 먼 남녘 능선 따라

백산심론(百山心論) 2강 10장 19+산 가지산, 운문산

by 여의강


2일 5산을 한다고?


그것도 먼 남녘의

1000m 넘는 고봉들을

1일 2산, 1일 3산으로 엮어서

연이틀에 5개나?

하루 14km, 7시간씩이나?


백산 초년생으로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빡센 일정이었습니다만,...


그래 즐겨보자

맘먹습니다



가지산에서 본 전경


가지산(1241m)을 다녀왔습니다.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된 '2일 5산' 쫄깃한 일정 중

첫 번째 관문이었지요.


가파른 비탈과 장엄한 주능선, 험악한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영남알프스' 9개 준령 중 최고봉이며,

동쪽 산기슭 비구니 수련 도량으로 유명한 신라 천년 사찰 석남사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가지산(加智山)은 석남사를 지은 스님의 본산인 호남의 가지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하고 까치의 옛말인 '가치'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여하튼 한자로는 지혜를 더해준다는 뜻인지라 무슨 지혜를 더해갈 수 있으려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지열이 느껴지는 날,

남쪽으로 이어진 운문산(1195m)과 연계 산행을 했습니다.



운문산 가는 길


소문처럼 산들은 높고 높았고, 주변 봉우리들은 크게 크게 이어졌으며, 계곡 역시 깊고 또 깊었습니다.


멀고도 먼 남녘 땅 경남에 위치한지라,

앞서 맞이한 계절로 일찍 영글어가는 꽃나무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산객들의 정겨운 사투리가 푸근하더군요.



가지산의 사계


가지산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남 알프스를 소개해야겠네요.


영남 알프스-

태백산맥 남쪽 끝자락 영남 중심부에 자리한 산악지대로 최고봉인 가지산과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재약산, 천황산, 문복산, 고헌산 등 1000m급 준봉들이 울산과 경북(경주, 청도), 경남(밀양, 양산)의 3개 시도에 걸쳐있고 산정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산상 고원이 이국적인 곳이어서 유럽의 알프스에 빗대어 이름 지어진 곳입니다.



간월재 가는 길

이곳이 최근 핫하게 떠오른 데는 '지역 마케팅'이 일조를 했지요.


수년 전 울주군에서 9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고 인증한 산객에게 6만 5000원 상당의 기념 은화를 주는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지름 38㎜ 은화에 영남 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 그림과 '영남알프스 9봉 완등’ 문구를 새겨 넣었는데, 2021년 한 해 동안 6만 5000여 명이 도전했고, 3만 2012명이 인증을 완료했다 합니다.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완등 기념 은화


100대 명산 도전 등 블랙야크 BAC 캠페인처럼 소비자에게 목표를 주고 체험하며 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주면 그들이 알아서 팬덤을 형성하고 자기들끼리 자가발전하는 것이 최근 마케팅 풍조인데 그와 비슷한 포맷으로 성공한 케이스라 볼 수 있겠지요.


예산 부족과 무리한 등산 경쟁을 이유로 2022년부터는 은화를 은도금 메달로 바꾸고 1일 3봉 이하 등정과 연령 제한을 하는 등 사업을 축소하여 도전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침체된 울주군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합니다.



천황산, 재약산


'들어가는 사람은 보았지만, 나오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할 정도로 오지의 험한 산들을 모아 '영남알프스'라 '이름'을 부르자 비로소 그 산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이유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가지산 능선


0600 당산역


2일 5산 친구들과 합류했습니다.

첫날 가지산과 운문산,

둘째 날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입니다.


이중 가지산과 신불산이 '100대 명산' 명단에 들어있지요.


백산대 졸업생이자 산을 날아다니는 고교 산우회 동기들인지라 너무 뒤처져 일행에 피해는 주지 않을까,

연이틀 2산, 3산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고교 때 못 가본 수학여행이라 생각하고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총 8명이 두 차로 4시간 반 만에 언양시장에 도착,

인심 좋은 아지매들이 솥단지에서 내어주는 푸짐하고 구수한 소머리국밥으로 요기하고

석남사 지나 굽이굽이 산길 따라 들머리 석남터널로 향했습니다.


마침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에 섞여

어수선하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머리국밥집과 들머리 풍경


기온이 20도가 넘어 여름옷차림도 더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부서진 돌길 바위길 한참 이어지며 무리 지어 오르던 산객들의 사이가 벌어지더군요.


철쭉군락에 철쭉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산비탈 여기저기 가녀린 노랑제비꽃들 앙증맞게 바람에 날리고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들이 반겨주었습니다.



진달래와 노랑제비꽃


30분 정도 오르니 아담한 주막이 하나 보이더군요.

모든 산에는 탁배기 한 잔 걸칠 수 있는 저런 주막 한두 개 허가해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잠시 숨 고르고 중봉 향하는 계단과 비탈길 가열차게 오릅니다.


'숨다못정!(숨 쉬고 다리가 가는데 못 오르는 건 정신력 문제)'을 되뇌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지요.



주막집과 오르막


1167m 중봉과 밀양고개 거쳐 마지막 가파른 바위길과 조릿대 길 지나 1시간 40분 만에 너른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닿았습니다.


가지산을 둘러싸고 낙동정맥을 흐르는 봉우리들과 멀리 납작 엎드린 마을들 뒤로 주변 능선들이 장엄하게 파도쳐나가더군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는 정상인데도 인증객들로 붐볐습니다.



가지산 정상


정상 아래 바람 피해 돌담으로 지어진 대피소 겸 식당 지나 구름의 입구 운문산(雲門山)으로 향합니다.


까마득한 절벽 위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져 있는 능선길 따라

초여름이라 해도 좋을 따가운 햇빛 맞으며 유유자적 걸어갑니다.


기암괴석과 기기묘묘 소나무들 아득한 산그리메 배경으로 눈호강 시켜주더군요.


한가로이 넉넉한 남녘의 산 즐기며 붕긋하게 솟아있는 운문산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 가벼웠습니다.



가지산 능선길


갈림길인 아랫재까지 내려와 간식 먹으며 잠시 휴식 가졌습니다.

600m 석남고개에서 1241m 가지산까지 고도를 높였다가 다시 650m 아랫재로 내려와, 1195m의 운문산으로 내려온 만큼을 다시 오르고 또다시 1000m를 내리 꼽아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지요.


시험과목도 아닌 운문산을 올라야 하나 아주 잠시 망설이다 배낭 둘러맵니다.


1시간 10분을 가파르게 오르는 길,

돌아보니 명의 허준의 스승이 제자의 공부를 위해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맡겼다던 밀양 얼음골 품은 천황산과 재약산이 크고 작은 봉우리들 거느리며 뻗어나가는 장관이 연출되더군요.



운문산


산객들은 통상 운문산 정상에서 아랫재로 다시 회귀하여 상양 마을로 날머리 잡지만 우리는 계속 남하하여 석골사로 넘어갔습니다.


정상 아래 상운암의 시원한 약수 한 모금에 원기 충전하고 돌이 많아 석골(石骨)이라는 길을 내려갑니다.


돌뿐 아니라 바위길 흙길 물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산길 다 보여주는 총천연색 파노라마 길이더군요.



석골시 가는 길


돌 틈 사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봄꽃 현호색이 바람에 나부끼며 수십 마리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모습이 슬프도록 아름다웠고,


높고 높은 절벽과 깊고 깊은 계곡 사이 떨어지는 석양에 물들어 반짝이는 진달래 꽃잎이 너무 붉어 서러울 정도였습니다.



현호색과 진달래


비로암 폭포 지나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산길 2시간 여를

구르듯 내려왔습니다.


아담한 밀양 석골사 옆으로

석골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더군요.


운문산 오르는 길이 다소 힘들었고

내일의 3산이 남았지만

해볼 만했던 1일 2산이 저물어 갔습니다.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뒤풀이가

아주 달게 느껴졌습니다.



석골사와 석골 계곡


*2022년 4월 9일 다녀왔습니다. 초여름 날씨로 하늘은 맑고 푸르렀습니다.

*석남터널~중봉~가지산~아랫재~운문산~석골사, 총 14km 7시간의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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