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심론(百山心論) 2강 11장 20+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새벽 내음 맡으며
소망 가득한 배내봉
벼랑 끝 이어진 길
인적 끊긴 비탈 오르니
푸른 달빛 젖어있는
간월산
하늘 닿은 황금 억새
바람의 언덕
무심히 쏟아지는 햇살
꿈같은 산정 평원 나아가니
신선들 노닐던 신성한
신불산
한번
더하니
독수리 날갯짓하는
영축산
모두
하나로 이어진
산산산
신불산(1209m)을 다녀왔습니다.
간월산(1083m), 영축산(1081m)과 연계하여 1일 3산 했으니 전날 가지산, 운문산 더하면 이틀에 영남알프스 9봉 중 5산이나 완등 한 거지요.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 신선한 새벽 공기, 아스라이 인적 드문 산길이 등산의 묘미를 더 해주었습니다.
높은 산 사이 이어지는 광활한 억새 군락이며 하늘에 닿은 듯 펼쳐진 산정 대평원이 이국적 풍경 연출하며 영남 알프스라는 명칭에 전혀 손색이 없게 만들더군요.
먼저 잠드는 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친구들의 3중주
코 고는 소리를 밤새 감상해야 했습니다.
혼미한 몸 이끌고 해장국 한 그릇씩 했지요.
0645 다시 석남사 지나 구불구불, 기러기처럼 떠도는 장꾼들 모이던 곳, '배내고개'에 닿습니다.
여기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서쪽에는 천황산과 재약산 오르는 들머리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가지산과 운문산이 이어져 있더군요.
고개 주차장이 어쩐지 낯익다 하여 자세히 보니
20여 년 전 대구 근무할 때 석남사 들러 한번 와보았던 곳입니다.
사람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지요.
그때 '영남알프스'라는 단어를 언듯 들어본 기억이 났지만, 훗날 여기를 다시와 산을 오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요.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이 이리도 차이가 있구나란 생각도 들더군요.
잘 모르고 띄엄띄엄 세상사 그리 지나친 풍경과 사건과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뒤돌아보았습니다.
영남알프스의 우마고도라 하는 '달오름길' 따라
우선 간월산 향해 나아갑니다.
새벽 숲 내음 짙게 배어나는 산길은 나지막한 목재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더군요.
떠오르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오르는 길이
왠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30분 정도 오르니 시야 트이며 햇살에 반짝이는 산맥들 아득하게 주름지어 나가고 곧이어 소원석들 쌓여있는 넓은 공터인 배내봉,
그 뒤로는 멀리 간월산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절벽에 외로이 피어있는 진달래와 평화로이 산아래 누워있는 마을들, 푸근하게 이어지는 새벽 능선길이 간월산 향하는 발길 상쾌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길만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천질 바위', 협곡 건너뛰던 표범이 살던 '범골', 등짐 진채로 쉰다는 하늘에 걸린 사다리 같은 길인 '선짐이질등'으로 이름 지어질 정도로 험준한 비탈길 지나니 하늘이 열리며, 북쪽에 가지산 두고 서쪽으로 재약산 바라보며 남쪽에는 신불산과 맞닿아 있는 바위더미 쌓인 간월산 정상 나타납니다.
'간월산이 먼 뜻이고?'
'글쎄, 3산하기 전에 간 한번 본다는 거 아이가?'
산객들의 대화가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간월산은 달을 본다는 뜻의 간월(看月) 혹은 산골물에 담긴 달을 뜻하는 간월(澗月)로 불렀지만 지금은 마음의 달을 뜻하는 간월(肝月)로 바뀌었는데, '물소리 들으며 마음의 달 바라보는 산'이라 홀로 풀어보았습니다.
신불(神佛)과 함께 신성하다는 뜻이 있다 하네요.
잠시 바람 쐬며 땀 식히고 관목 군락과 억새숲 너머 멀리 간월재와 신불산 오르는 뱀처럼 휘어진 길 향해 내처 나아갑니다.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이어주는 곳이자 하늘 억새길의 관문으로 각종 편의시설 마련하여 산객들 쉬어가게 해 주었습니다.
가을이면 사람 키만큼 자랄 억새숲이 햇살 받아 황금물결 되어 출렁이고 있더군요.
목장길 울타리와 목재 계단 길고 완만하게 이어진 등산로 올라 굽이치는 산맥들 바라보며 하늘길 바람길 한참 걸어 신불산 정상 닿습니다.
신불산은 영남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고 태화강 지류가 시작되는 곳으로 간월산과 더불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신성한 산입니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영축산 향해 나아갑니다만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 않습니다.
한창 피크 때는 줄 서서 걷는다는 하늘 억새길, 휴일이라 산객들 붐비지만 않는다면 정말 쾌적하고 멋진 길이라 생각되더군요.
무엇 찾아가는지 작은 실뱀 하나 바삐 기어가고
억새밭, 돌밭 지나 경치에 취해 한참을 오르니
어느덧 정상에 서더군요.
영축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인도의 산에서 이름을 따왔다는데 독수리 축(鷲)을 취(就) 자와 조(鳥) 자의 합자로 된 취(鷲)로 혼동하여 취서산(鷲栖山)으로도 불리었답니다.
여기서 신불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리는 길 역시 평지와 절벽과 계곡이 섞인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이더군요.
중간에 따듯한 햇살 쪼이며 계곡에 앉아 발까지 담그는 호사 누리고 한참을 내려와 날머리에 닿습니다.
계곡을 끼고 걷는 친구들 머리 위로
하나 가득 산벚꽃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끝까지 투혼을 보여준
맛난 음식을 무거울 배낭 가득 담아 온
소중한 경험을 친절히 나누어주는
참석도 못하면서 선뜻 찬조를 해준
단톡방으로 계속 성원을 보내준
묵묵히 함께 걸으며 힘이 되어준
자신을 희생하여
차량을 제공하고 장시간 운전하며
늘 앞서 길을 만들고
모든 귀찮은 일 도맡아 해 준
그리고
잘난 친구는 많아도 잘난척하는 친구는 없는
못난 친구라도 모라 하는 친구는 없는
무례와 막말과 무관심이 아닌
존중과 배려와 믿음이
소통임을 깨달은
무엇보다
산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여
즐겁고 멋진
수학여행 같은 산행이었습니다.
*2022년 4월 10일 올랐습니다. 새벽에는 쌀쌀하고 바람 불었지만 따듯한 봄날이었습니다.
*배내고개~달오름길~간월산~간월재~신불산~하늘억새길~영축산~청수골 신불산 자연휴양림 13.8km 7시간으로 2일 5산의 두 번째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