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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깨어지고 찢어져도 걷다 보면

백산심론(百山心論) 3강 2장 22산 삼악산

by 여의강


탐욕의

돌부리에

길을 잃었어


발버둥 칠수록

빠져들던

심연의 늪


주저앉아

먼 하늘 바라보며

한숨지었네


깨어진 몸에선

선홍빛 피가 솟고

찢어진 맘에선

검붉은 한(恨)이 넘쳤지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길 없는 길


그저

눈 감아버릴 수 밖엔



삼악산 진달래


삼악산(655.8m)을 다녀왔습니다.


5대 악산 명성에 걸맞게 오르는 길이 서스펜스 스펙터클 쫄깃쫄깃이더군요.


올려다보면 거의 수직의 칼바위 암릉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서있고,

길 아닌 길 찾아 사족보행으로 오르는 맛이 짜릿하면서도 아찔한 묘미 더해줍니다.


뒤에서 늘 푸르게 빛나는 의암호가 힘 돋아주었지요.


하산길의 푸근한 숲이며 계곡과 폭포, 협곡이 초반의 노고 말끔히 씻어주는 고생 끝에 낙이 오는 해피엔딩 영화 같은 산행이었습니다.



삼악산 암릉길과 등선폭포


주봉인 용화봉과 함께 청운봉(546m)·등선봉(632m) 3개의 봉으로 이어져 삼악산이라 불리며 경춘국도 의암댐 바로 서쪽에 붙어있습니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서 능선 곳곳에 삼국시대 이전 맥국(貊國)의 성터 혹은 궁예가 쌓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대궐터의 흔적이 470m 정도 남아 있답니다.


삼악산을 오르며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더군요.


산악회 통해 청량산을 가기로 했는데 지하철 고장으로 친구가 늦는 바람에 버스를 보내야 했습니다.


플랜 B로 택한 것이 삼악산입니다.

고속버스로 춘천, 의암 매표소까지는 택시를 탔습니다.


넘실대는 의암호 물줄기와 싱그러운 바람이 아쉬움을 충분히 설렘으로 바꾸어주더군요.



들머리 의암호


'오히려 잘 되었어, 어차피 여기도 오려했으니'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에도 충분했습니다.


입장료 2천 원 내니 춘천에서 쓸 수 있는

지역 상품권을 내어주더군요.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입니다.



들머리 풍경


조금 오르니 바로 의암호 조망 시원하게 터집니다.


이미 한창인 녹음 사이로 산벚꽃 금낭화 산괴불주머니가 붉고 노란 자태 뽐내며 산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신벚꽃, 금낭화, 산괴불주머니



꽃구경하며 천천히 올라 연등꽃 핀 상원사 거쳐

깊은 계곡 돌투성이 가파른 너덜길 오르니

50여 분만에 깔딱 고개 닿습니다.


상원사와 깔딱고개



지금까진 맛보기에 불과했지요.


매끄럽고 울퉁불퉁하고 칼날 같은 바위들 수직으로 이어지는 악산(岳山)의 암릉길 시작됩니다.


파이프 세우고 쇠줄 잇고 꺽쇠 발판(일명 '호치케스') 박아 길 알려주었지만, 일정한 길은 없는지라 험한 바위와 삶과 죽음이 엉켜있는 나무와 드러난 뿌리 사이로 스스로 등로를 개척해서 올라야 했습니다.


고소공포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안정되기를 기다리며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길 없는 길을 찾아



끊길 듯 끊길 듯 한참을 이어지는 잡을 곳 디딜 곳 없는 암릉,

거친 괴물의 등짝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며 가끔 푸드덕푸드덕 몸을 터는 듯 아찔했습니다.


숨 고르며 뒤돌아보는 절벽 위 노송 사이 푸른 의암호가 그림처럼 다가와 노고를 씻어주었지요.


곳곳에 추락 조심 안내문이 있더니 중간쯤엔 관리원까지 나와 안내해줄 정도였습니다.



오르막 풍경



미친 암릉길 쫄깃쫄깃 올라 칼날 같은 능선길 지나니 정상 지척인 전망대 나오며 용화산 오봉산 구봉산 가리산에 둘러 싸인 소양댐, 의암호와 붕어섬, 춘천시내 한눈에 들어옵니다.


물과 산 굽어보며 바람 속에서

친구와 나누는 점심이 꿀맛이더군요.



전망대에서


진달래 가득한 용화봉에서 인증하고 내려오는 길,

초입의 돌길과 333개 돌계단이 있었지만, 포근하고 아담한 흙길이 오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즈넉하게 이어졌습니다.



용화봉과 하산길



궁예의 전설 서려있는 아담한 흥국사에는 박태기나무가 붉은 꽃을 뿜어내고 있더군요.


절아래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는데

산벚꽃 우수수 떨어지며 '동심초'를 소환합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흥국사



정비 중인 등산로가 끝나갈 무렵,

주렴폭포, 비룡폭포, 옥녀담, 백련폭포, 승학폭포, 등선폭포와 금강굴로 이어지는 깊고 맑은 계곡과 검은 협곡이 삼악산의 대미를 장식하며 피로 씻어주었습니다.


닭갈비와 소주 한잔의 대화에 삼악산을 담았습니다.



등선폭포와 협곡


그때

바람이 불었어


바람 부니

살아야 한다고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고


산이

내밀었지



낙엽 져도

걷다 보니

눈 쌓이고


눈이 와도

걷다 보니

꽃이 피네


바람 불어

살다 보니

해가 뜨네



살아야지

살아야지


눈처럼

꽃처럼


바람처럼



정상 능선


*2022년 4월 21일 다녀왔습니다. 미세먼지가 조금 있었지만 따듯하고 온화한 봄날이었습니다.

*의암매표소~상원사~깔딱고개~용화봉~흥국사~등선폭포 총 4.7km를 놀며 쉬며 6시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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