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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걸음으로 치유되는 길

백산심론(百山心論) 3강 6장 한라산 전야 제주올레 15b

by 여의강



몸과 맘은 지쳤지만

일정은 제주를 향합니다.


갑자기

한라산을 오르게 되었던 거지요.


오랜만에 타보는 비행기인지라

김포서 어리바리하다 보니 제주입니다.



늘 좋은 제주 바다


노후를 꿈꾸며

젊어 자주 드나들던 마음의 고향 제주였지만

언제부턴가 적조했지요.


달리 갈 곳이 많아서이기도 했고

천박한 상업도시로 변해가는 모습이 싫어서이기도 하고

감히 비행기 탈 염두가 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요.



제주공항 돌하르방


고교 100주년 기념행사로 총동산악회에서

히말라야와 지리산 한라산을 동시 중계하는 이벤트에

동기 9명 포함 13명의 동문이 참여했습니다.


다음 날 한라산 등반 앞두고

동기들은 몸풀기 올레길을 걷기로 했지만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리 지친 몸으로 걸을 수 있을까?

올레길보다는 호텔서 쉬면서 꿈길 걷는 게

한라산 등정에 더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과 관계없이

숙소에서 택시로 한참을 달려

올레길 15b 들머리에 닿습니다.


제주 북서 한림항에서

해녀학교와 곽지, 애월 지나

고내포구까지 이어지는

13km 바닷길입니다.



올레길 15b


해변에서 마을로

들길에서 밭길로 이어지는 길은

리본과 화살표가 잘 되어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더군요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바다

실구름 떠가는 코발트색 하늘

기름진 벌판과 한적한 마을

걷다 보니


몸에서 피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또 걷다 보니

마음의 걱정도 방울방울 증발되었습니다.


'그래, 그깢게 다 모시라꼬'



가끔 마주치는 이국적 카페

길모퉁이 오롯이 피어있는

민들레와 무꽃이 나그네를 반겨줍니다.


카페, 민들레와 무꽃


물질 가르치는 해녀학교 식당서

지리탕에 소주 한잔 곁들입니다.

방파제 한켠 차지한 조사들 모습이 한가롭습니다.



해녀학교


멀리 이어도 거쳐

서귀포 앞 지귀도 문섬 새끼섬 섭섬 범섬 숲섬

돌고 돌아왔을 쪽빛 바다

푸른 바람 따라 일렁입니다.



쪽빛 바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원하는 것도 없다

나는 자유인이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가 떠오릅니다.



자유를 향하여


걷는 내내 제주에선 흔히 보기 쉽지 않은

한라산이 뚜렷이 산세를 드러내고 있더군요.


담벼락 장식한 붉은 송엽국과

막 피어난 등대꽃이 이쁜 것은 알겠는데

가시 돋은 선인장마저

주변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요?



송엽국과 등대꽃


하얀 백사장

원시의 바다

함부로 부는 바람맞으며


친구들과, 혼자서

떠들며 생각하며

4시간 여 걷다 보니


어느새

몸과 마음

한껏 힐링되었습니다.



걷다 보니 힐링


몸 구석구석 날개 돋아

당장이라도 한라산을

단숨에 오를 기세였지요.



흑돼지에 소주잔 기울이다 보니

제주의 밤이 깊었습니다.




*5월 1일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상쾌했습니다.

*제주올레 15b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13.5km, 4시간 여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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